첫 번째 인사교류 시도
비연고지 지역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답답한 공직 문화 속에서,
매일 새로운 업무가 생기지만 제대로 일을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동기도, 무리도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했고,
집단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소외감을 느꼈다.
만 3년을 채우고 연고지로 전출을 가고자 했지만,
그 시간을 채울 자신이 없었다.
당장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에 부친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다...
# 지방직 ↔ 국가직은 전출 제한 기간 없이 교류가 가능하다고? 이거다!
국가직으로 인사교류는 3년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바로 연고지에 근무할만한 국가직 부처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 후 나라일터를 통해 교류자를 금세 찾을 수 있었고,
신청접수를 하자 곧 상대 기관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인사기록카드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인사팀끼리 주고받으면 좋겠건만, 직접 제출해야 한단다.
인사팀 담당자에게 조심스럽게 쪽지를 보냈다.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떨려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업무 요청을 할 때마다 돌아오는 차가운 시선과 말 없는 질책 속에 위축되고, 상처는 쌓여갔다.
이젠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겁이 났다.
하다못해 인사교류를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지...
하지만 내 우려와 달리 쿨하게 인사기록카드가 담긴 답장이 왔다.
"아, 이게 내 인사기록카드구나."
차세대 인사랑 시스템의 인사요약카드와 비슷했지만, 좀 더 상세했다.
이메일로 상대 기관 인사팀에 인사기록카드를 제출하고
나부터 면접 일정을 잡았다.
# 인사교류 면접
인터넷을 뒤져보니 인사교류 면접은
차 한잔 나누며 편하게 묻는 곳도 있는 반면,
기관 업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경우도 있다 한다.
나는 후자일 경우를 대비해 정장도 대여하고, 답변도 최대한 철저히 준비해 갔다.
면접은 평일 오후, 하루 반차를 내고 다녀왔다.
면접관은 세 명.
받은 질문들:
-이 기관을 지원한 이유
-거주지
-현재 맡고 있는 업무
-입직 전 경력 사항
마지막 질문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6년간 네 번의 이직이 있었다.
그중 한 군데에서 5년을 근무한 반면,
나머지 1년의 경력은 세 군데 회사에서 몇 개월 다니다 맞지 않아 퇴사한 경력들이었다.
기술직렬이라 입직 전 경력이 모두 인정되기에 잠시 스쳐갔던 회사의 조각경력도 전부 제출하였는데, 이것이 집중적인 질문 세례로 이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집중포화를 맞으니
머릿속이 점점 하얘졌고, 말도 더듬기 시작했다.
압박 면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무것도 보여주기 전인데,
"이곳에 와서 적응을 못할 것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한 면접관은 비웃고 깎아내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나를 몰아세웠고,
또 한 명은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으며,
다른 한 명은 계속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을’이 된 기분이었다.
그들에게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도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받고 있지만
그래도 맡은 업무를 해내며 버티고 있는데...
내가 왜 이런 대접까지 받아야 하나 싶었다.
20분 남짓한 면접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불합격 통보
일주일쯤 지나 상대 기관 인사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역시나 불합격.
그런데...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집요한 상대 교류자
상대 교류자와는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주고받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상대는 분명 신분이 확실한 공무원이고, 교류까지 추진할 사람이라
처음엔 나도 나라일터 쪽지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오픈채팅방을 개설하여 기관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대면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문제는 면접 후였다.
불합격 통보가 난 뒤에도 상대 교류자의 연락은 집요했다.
면접관 중 한 명(안타까워했던 분)과 연줄이 있다며 다시 시도해 보자고 했다.
"안 되면 소송을 생각하고 있다"고까지 말하는
그 집착이 점점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왜 탈락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자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는 연줄을 내세워 편법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그리고, 너무나 불쾌했다.
시청 입직 후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그 ‘연줄’로 인한 박탈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적 인맥을 이용해 일을 키우려는 모습에 점점 더 거부감이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연락에 치가 떨렸다.
며칠 후, 결국 나는 장문의 답장을 보내고 그를 차단했다.
"결과를 받아들였으니, 여기까지 하자."
#3년을 채워 연고지 지자체로 이동을 기약하며
연고지에는 더 이상 국가직으로 이동할 부처가 없었다.
이제 남은 길은, 만 3년을 채워 지방직 간 전출을 도모하는 것.
면접을 봤던 그 국가직 기관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한동안 그 근처를 지날 때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면접 때 좀 더 잘 말했어야 했나... 그랬다면 지금쯤 연고지에서 근무하고 있었을까?"
하지만 면접 당시 느낀 굴욕감과 비참함을 떠올리면
그 기관에 가서 더 큰 시련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결국 부질없는 상상일 뿐이다.
지금은 그 길을 지나며 아무 생각 없이 웃는다.
그저, 인연이 아니었을 뿐.
첫 번째 인사교류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뜻밖에도 지금 있는 곳의 장점을 발견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지금 이곳에서는 내가 맡은 일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분명하잖아.
은근한 따돌림과 소외감이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대놓고 모욕당하는 일도 없고.
그래, 다시 한번 여기서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