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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공무원, 힘들면 SOS

심리상담을 시작하다

by 공쩌리


그 당시 나의 목표는 "1년만 채우고 그만두자"였다.


사실 당장이라도 사직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이곳에서 보낸 애쓴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비록 짧더라도, 1년이라는 경력으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이 위기와 고비의 연속이었다.

그 ‘1년’을 채우기 위해 남은 다섯 달을 버티는 일은, 간절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언제고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업무 포털을 넘기다 ‘OO시 공무원 심리상담 지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일 년을 채우기 위해...


도움을 받고 싶었다.


1. 시청 직원 대상 심리상담 지원 – 연 5회기 제공

총무과에 별도 연락할 필요 없이, 위탁기관에 직접 신청하면

원하는 상담 장소와 일정을 조율할 수 있다.

다만 연말에는 예산이 조기 소진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첫 번째 상담사 – “더 노력해 보셨나요?”


첫 상담예약일은 때마침 ‘눈물의 동료 결혼식’ 당일,

내가 스스로 왕따라고 처음 자각한 날이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른 상태로 그동안 눌러왔던 일들과 감정을 쏟아냈다.


하지만 돌아온 상담사의 반응은 냉담했다.

혹시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더 해보셨나요?


그 말은 모든 상황을 내 탓으로 돌리는 듯 들렸다.

공감 않는 상담사의 태도에 상처를 받은 나는 상담 기관을 바꾸었다.


#두 번째 상담사 –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새롭게 만난 상담사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할 수 있는 만큼 하셨으니, 이제는 상황을 관망하세요.

늪에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 말은 나에게 발상의 전환이었다.


견디기 힘든 상황에 더해,

'내가 부족해서 이런 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직전 상담사 역시 나의 ‘노력 부족’을 지적했기에,

나는 늘 ‘더 노력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상담사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는 다르게 살아봐야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물론 이 상담사님에게도 아쉬움은 있었다.

상담사님의 개인이야기가 과하게 많았고,

TCI(성격 및 기질 검사) 결과를 나의 단점으로 단정 지으며

마치 그것이 모두 내 책임인 듯 느껴지게 했다.


또 상담사를 바꾸기엔 주어진 5회기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 이분과 끝까지 상담을 이어가기로 했고,

그 시간 속에서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한 문장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신은 이미 최선을 다했습니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2. 인사혁신처 ‘마음건강센터’ – 10회기 무료 상담 지원

어느 날, 업무포털 중간에 ‘마음건강센터’ 탭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눌러보았고, 이메일 신청을 통해 상담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로 공무원 마음건강센터는 전국 10개소(서울, 세종, 과천, 인천, 춘천, 대전, 대구, 광주, 제주, 경남) 운영 중이다.


#세 번째 상담사 – 힘들었던 시간 버틸 수 있었던 힘, 나를 지지해 준 ‘진짜 상담’


공무원 전용 상담센터여서 그런지,

상담사님은 조직의 분위기와 구조를 잘 알고 계셨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말속에 담긴 맥락을 자연스레 이해해 주셨다.


이번 상담은 내가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해 줬다.


아무리 힘든 시간 속에도 '이건 다음 상담에서 이야기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지난 상담에서 받은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제삼자의 지지.

그건 또 다른 힘이었다.


이전 상담사에게 질책처럼 들렸던 TCI 검사 결과도,

이번 상담사님은 나의 성장 배경과 연결하여 설명해 주셨다.

그 결과는 오히려 나에 대한 이해를 도왔고,

단점 같았던 기질 속에서 살릴 수 있는 강점을 짚어주셨다.


지막 회기가 다가오며 상담사님은 내 상태를 고려해 상담 연장을 신청하셨지만

윗선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10회기 상담을 마친 날.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집으로 향했겠지만

그날만큼은 시원섭섭한 마음에 정부청사 일대의 경복궁과 광화문을 천천히 걸었다.


그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상담사님 개인 연락처는 공유하지 않기에, 마음건강센터 대표 번호로 온 문자였다.


“그동안 상담받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의 날들을 응원합니다.

비록 상담 연장은 되지 않았지만...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입니다.

너무 힘들 땐 언제든 연락 주세요.


잠시 걸음을 멈추어 주변을 바라보았다.

밤 8시이지만 해는 이제 막 지고 있어 하늘은 아직 밝았다.

광장 앞에 펼쳐진 여름 저녁 평화로운 풍경.


나를 지지해 준 상담사님,

그곳에서 채워간 단단한 마음.


두 달 반 동안의 10회기 상담을 마치고 나니,
간절히 바라던 ‘입사 1년’이 어느덧 2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단연, 상담의 힘이었다.


살살 불어오는 기분 좋은 여름밤의 바람처럼,

내 마음도 상쾌하고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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