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된 시간들
공무원 조직 분위기는 마치 학창 시절 또래 집단 같았다.
혼자 다니던 아이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던 그 시절의 분위기가 다시 느껴졌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대학 시절부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몰려다니는 것이 기본값인 곳에서, 혼자라는 건 이유 없는 어색함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혼자는 선택이 아니라 실패가 된다.
# 함께 걷지만 혼자인, 점심산책 모임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가면, 팀원들은 나를 데려가긴 하지만 어쩐지 내가 말을 하면 미묘하게 분위기가 싸해지고, 몇 분의 정적이 흐른 후 급하게 대화 화제가 바뀐다.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지며, 산책모임을 지속할수록 오히려 거리감은 늘어난다. 산책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점심시간을 혼자 보내겠노라 마이웨이를 선언하면 영원히 그 무리에서 멀어질 것 같은 불안감... 점심시간이 점점 힘들어진다.
# 점심시간에도 계속되는, 공문 찾아보세요
점심산책 중 동료들이 내가 모르는 업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슬쩍 물어봤다. 그런데 한 동료가 갑자기 웃음기를 빼고 말한다.
"공람 찾아보세요."... 물어볼 수도 있지, 좀 알려줄 수도 있지 않나? 업무시간도 아니고, 사적인 점심시간 산책모임이었는데... 그렇게 정색할 일이었을까...?
# 혼자가 된 점심시간
갑작스럽게 인사이동 발령이 났다. 이동하게 될 팀의 직원 한 명이 메신저로 계속해서 환영의 말을 전했다. 새로운 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지만, 환대에 마음이 놓인다.
인사이동 후 맞이한 첫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돌아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만 남기고 사무실 모두가 자리를 비웠다.
세상에, 그렇게 허망한 순간은 처음이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내가 인사이동 와서 너무 좋다던 동료의 메신저 채팅은 뭐였을까? 말이나 하지말지.
이날을 전환점으로, 불편했지만 그나마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산책 모임은 사라져 버렸다.
# 혼자 점심 산책을 나서보았지만...
그날 이후, 지옥 같은 점심시간 삼십 분 버티기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나만 빼고 모두 나가버릴까, 불안한 마음으로 눈치를 본다.
가끔 같이 나가자고 권하는 동료가 있어 따라나선다. 또 어색한 웃음만 지으며 끌려다니듯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를 껴주는 건 아주 가끔뿐이다.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큰맘 먹고 혼자 산책을 나간다. 무리 지어 웃고 떠드는 직원들과 수없이 마주치게 된다.
그럴 때마다 혼자인 내 모습이 처량해진다. 홀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혼자서 다수를 수없이 마주쳐야 하는 그 순간들이 힘들어 결국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다.
# 나 홀로 사무실에서 점심시간 버텨보기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으면, 또 홀로 남겨졌다는 비참함이 온몸을 짓누른다.
어느 날은 차 안으로 피신을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차창 밖에서 비치는 초라한 내 모습 누군가 본다면... 상상하니 도저히 계속 있기 힘들었다.
결국 '피곤한 척'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한다. 정신은 또렷한데 서글픔이 몰려온다. 점심을 먹은 직후라 속도 더부룩하다. 그래도 눈을 감고 버텨본다. '나는 피곤하다, 그러니 나는 사무실에 혼자 있는 게 정당하다'며 스스로를 세뇌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무실 저너머에서 하하 호호 모여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는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온다...
#비상근무, 우연 속에 느껴진 서운함
봄철 산불근무 명단편성이 내가 연가인날 내려왔다. 각자 가능한 날짜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우연이겠지만 세상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같은 날로 변경한 것이었다.
물론 일부러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일정이 그렇게 맞아떨어졌겠지.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서운했다.
#축제근무, 나만 모르는 작지만 중요한 일들
입직 후 첫 축제 근무, 같은 팀 공무원들은 대부분 오전 반에 배치된 반면, 나는 홀로 공무직들과 함께 오후 근무를 맡았다.
축제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일에 몰두했는데, 문득 서명부가 떠올랐다.
물어보니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서명을 이미 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식권을 하나씩 들고 있었지만... 나만 없었다.
혼자인 나는 이런 정보조차 공유할 사람이 없었다.
#교육... 혼자서는 안돼? 안돼!
시청에서 며칠에 걸쳐 전 직원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 공지가 나왔다.
쪽지가 뿌려지자마자 여기저기서 전화와 메신저가 불이 났다.
다들 짝을 맞춰서 가려는 것이다. 혼자 가면 안 된다는 공지라도 있었나?
오기가 생겼다. 혼자 가보자.
외청에서 본청으로 버스를 타고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
창밖으로는 모두 삼삼오오... 교육장 안에서도 삼삼오오...
그날 나는 객기를 부렸던 걸 후회했다.
뻘쭘했다. 모두가 몰려다니는 분위기에서 혼자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함께 걷지만, 끝끝내 함께이지 않았던 시간들.
혼자는 틀린 것이 아닐 텐데, 왜 틀린 것처럼 느껴질까.
누군가는 '사소한 일'이라며 웃어넘기겠지만,
나는 그 사소함에 무너졌다. 반복되는 점심시간의 침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