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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무원, 일을 배우러 구걸 다니다?

인맥과 일의 상관관계

by 공쩌리
책꽂이의 각종 지침과 메뉴얼, 그리고 내돈내산 예산회계책. 분명 도움이 되지만 방대한 업무전반을 담기엔 한계가 있다. 실제 업무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예외가 가득하다는 점!


공무원 업무는 상호의존성이 크기 때문에, 혼자 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인맥이 있으면 그만큼 업무가 수월하다. 하지만 인맥이 없다면...


# 지침도 매뉴얼도 없는 업무는? 닥치면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물어봐가며

일례로 기간제 근로자 관리는 인건비 지출까지 모든 것을 직접 처리해야 했다.

각종 수당, 병가, 연가 관리, 퇴직금, 연말정산 보험료 환급 등 어렵고 까다로운 노무 관련 사항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닥치면 찾아가며 해결해야 했다.


특히 힘들었던 것은 급여 지급 후 코로나 병가를 사용하면서 복잡한 환수 절차를 처리해야 했던 일과, 내년 인건비 예산을 수립할 때 보험료율 인상률 등 필요한 사항에 대한 정확한 공지가 없어, 같은 업무를 맡고 있는 주사님께 주먹구구식으로 물어보며 업무를 처리해 갔던 기억이다.


이렇게 매번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업무의 불확실성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 나는 발 동동, 전전긍긍... 그러나 누군가에겐 한큐에 해결?

작년 사업비 정산을 하던 중 이자 계산이 계속 맞지 않았다. 전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명을 몇 번을 들어도 이해가 안 돼, 정말 죄송하지만 자리에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대면하여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됐다. 계속 전임자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고, 나 자신에게 이해력 부족이 아닐까 싶어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했다.


이후 각종 공문 및 매뉴얼, 예산회계 관련 카페를 찾아보며 고심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제출기한이 다가오는데 답답함과 초조함이 몰려왔다. 울기 직전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다행히 한 주사님이 도와주겠다며 전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거셨다. 통화 후 계산이 맞지 않는 이유는 작년 지출과목 관련하여 예산 사용에 문제가 있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 답을 처음부터 명쾌하게 알려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질문했을 때는 왜 답을 해주지 않으셨을까? 종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간장을 태운 게 허탈했다.


# 일 잘하는 법, 사람을 아는 것부터

그날 이후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들 모르는 일이 생기면 전화를 걸어 "어 난데,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해?" 혹은 "주사님, ~아시죠? 그분한테 이거 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또는 "제가 ~랑 친한데 물어봐 줄까요?"...


이 조직은 마이웨이로 내 길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모든 일과 직원들이 얽히고설켜 있어, 한 명이라도 더 알아둬야 업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친분이 없다면 잘 알려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모두가 바쁘니까 다른 사람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


하지만 친분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꺼이 도와준다. 이런 구조 속에서 관계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 '모르면 물어봐라'는 말, 하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모르면 물어보라."


그래서 바쁜 선배님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눈치를 보며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돌아오는 건 차가운 반응이다. 마치 "이것도 모르냐"는 눈빛과 깊은 한숨. 그리고 이어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애매하고 불친절한 설명.


한번 정도는 더 용기를 내 추가 질문을 한다. 표정과 말투에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싫은 티가 역력히 드러난다. 그리고 돌아오는 "공문 찾아보세요"...


더 이상은 묻지 못하고, 결국 또 다른 직원에게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물론 다른 직원들도 똑같다. 이렇게 몇 번을 돌고 돌아야 겨우 하나의 업무가 처리된다.


사실 알고 나면 별일도 아닌 일들도 있다. 그런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쉬운 일도 힘들게 배운다.


본인들도 힘들게 배웠으니 너도 힘들게 배워봐라인가? 오죽했으면 '일을 가지고 권력화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럼 지침이나 매뉴얼을 찾아보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조직에는 문서로 남아 있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져야만 알 수 있는 일들도 있다.


# 인맥이 없어서, 일을 배우기 위해 구걸하다

매일 되풀이되는 이 과정은 일을 하러 직장에 오는 게 아니라, 일 배우는 법을 구걸하러 다니는 기분이었다. 인맥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쉽게 풀리는 일이, 이 조직의 외톨이인 나에겐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찾아가 질문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도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나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이런 방식이 더욱 힘들었다. 질문을 할 때마다 정신적으로 지치고, 눈치를 보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하루가 끝나면 업무보다 사람과의 상호작용 때문에 녹초가 되고, 탈진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최대한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다. 초과근무도 하고, 주말출근도 하며 문서와 자료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 알아서 일을 하다 보면, 작은 실수라도 나오는 순간 다시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모르면 무조건 물어보고 해라"


그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물어보면 싫어하고, 스스로 해결하면 물어보고 하라고 한다.

도대체 '물어보라'와 '찾아보라'의 적절한 접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점점 더는 견디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며 언젠가부터 나는 항상 99% 차올라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해결이 불가능한 업무가 떨어지는 순간, 1%가 차올라 터져버리고 말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화장실에 달려가 울고 오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부터 매일 울게 되었다.


그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게 되었다.


점점 고장 난 수도꼭지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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