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과 실적의 압박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반복 업무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직 후 생각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서류 작업을 넘어,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실적을 달성하는 일이었다...
#공무원도 창의적인 일을 한다.
담당사업 중 하나는 실체가 없는 신규 사업이었다. 추상적인 사업 이름만 있어 어떻게 구체화해야 할지 막막했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구현할지 그 방향을 정하고 실행하는 일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했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생각을 거듭해야 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하얘져 괴로웠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그 와중에 매달 사업의 진행율을 조사하는 공문이 올 때면 조급함과 초조함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 성과와 실적에 시달리는 공무원도 있다? 나는야 영업직 공무원?
신규 사업은 관내 초, 중학생 대상 사업이었다.
일단 관내 모든 초등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답이 없다. 전화를 돌렸다. 한 학교에서 관심을 보여 곧장 출장을 떠났다.
꼭 성사돼야 하기에 굽신, 굽신 모드... 앗... 담임선생님은 호의적이지만 담임, 교감 선생님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일'이 하나 더 추가되며, 이 사업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솔직하게 반색을 표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필을 해본다. 아아... 그런데 점점 분위기가... 담임선생님마저 반대 여론에 어쩔 수 없어하신다... 마지막으로 사정을 해본다... 아... 불성사가 되었다.
학교 선정 보고가 바로 며칠 뒤인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학교에는 공문 없이 전화부터 돌린다.
한 학교의 선생님 두 분과 각각 한 시간이 넘는 설득 통화 끝에 간신히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사업 중에도 우리는 '을' 중에 '을'이었다. 학교에서 해주어야 하는 문서작업도 학교선생님들은 수업을 핑계로 나에게 넘겼다. 이 학교가 아니면 안 되는 나로서는 학교의 요구는 무엇이든 맞춰줘야 했다.
# 공무원, 시청 사업을 당근 하다?
다른 사업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건 참여율이 낮아 홍보라는 모든 홍보는 총 동원 하였다. 시 소식지, 홍보문자, 거리 현수막, 포스터 게시...
그럼에도 참여가 저조하다. 위에서는 압박이 내려온다. 도저히 안 되겠다.
'당근마켓' 동네소식에 마치 내가 이 사업 참여자처럼 위장(?)을 하고 시청의 사업이 너무 좋다며 홍보글을 올린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다행히 효과가 좋아서 몇 주 만에 바로 실적을 달성했다.
역시 홍보는 진짜 시민들이 모이는 곳에 해야 한다...
당근에 올린 홍보가 잘못된 행동이 아닌가 싶어 내심 노심초사 했던 나는 훗날 업무 관련 교육을 가서 문제없음을 확인을 받고 나서야 겨우 안도했다. 굳이 시민처럼 위장 안 하고, 그냥 대놓고 해도 되는 홍보였다...
기획은 창의적으로 해야 한다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그저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를 쥐어짜야 하는 끝없는 압박의 연속이었다.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은 점점 더 거세졌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무력감은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여갔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내가 유능하지 못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도 못하는 걸까 하는 자책에 빠지곤 했다.
내가 생각한 공무원의 업무는 명확한 경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 업무는 그런 기대와 달랐고, 그로 인한 괴리감의 무게는 너무나 버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