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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무원, 부딪히고 혼나며 혼자서 헤쳐가는...

업무 인수인계가 없어!

by 공쩌리


물려받은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신입인 나는 빈 의자에 앉자마자 곧장 실전에 내던져졌다.



# 전임자 · 업무 인수인계가 없(는 경우가 있)다.

입직 6개월 만에 인사이동이 되었다. 보통 전임자가 다른 부서로 옮기더라도 반나절 정도 인계를 해주는 경우가 많고, 바쁠 땐 주말에 만나 인수인계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휴직 중에도 나와서 인계해 주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하드코어였나. 전임자는 병원에 입원하여 병가 중이었고, 공석인 채로 내가 그 자리에 배치되었다. 주무팀이라 업무는 쉴 틈 없는데, 인수인계는 업무분장을 나열한 엑셀파일 한 장이 고작이었다.


자리를 옮겼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알 수 없는 공문은 쌓여가고, 여기저기서 업무처리를 해달라는 연락이 쏟아졌지만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사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공무원에 입직하기 전 다녔던 회사들은 대부분 두세 달 동안 사수가 곁에서 일을 가르쳐주는 기간이 있었다. 독립한 뒤에도 모르는 게 생기면 언제든 물어볼 수 있었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은 달랐다. 반나절 정도의 간단한 인수인계가 끝나면, 곧바로 혼자서 모든 업무를 맡아야 한다. 사수는 없다. 그 이유는 민원대처럼 몇몇 예외적인 부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직원이 각자 고유한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내 일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는 구조다.


물론, 가끔 예전에 해당 업무를 맡아본 주사님이 같은 팀에 있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럼 팀장님께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팀장님도 내 업무를 맡아본 경험이 없다면 모른다. 결국 모든 걸 혼자서 헤쳐나가야 했다.


#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암묵적인 룰...


1. 연차는 과장님께 구두로 보고해야 해

첫 연가를 쓸 때, 같은 팀 동료나 팀장님께는 부재 시 업무에 영향이 있을 수 있기에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과장님은 사무실도 달랐고, 업무적으로 거의 연락할 일이 없기에 전자결재만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팀 동료가 “내일 연가를 쓸 거라 과장님께 보고 드리고 오겠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서야 두 보고 절차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뭔가 중요한 걸 모르고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괜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2. 알아도 다시 한번, 꾸벅 인사

재택근무 기간, 팀장님께 질책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팀장님께서 갑자기 오후반차를 쓰셔서 직전에 인사를 못 드리고 왔던 것이다. 래도 점심시간 내일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나눴고, 이미 전자결재까지 완료했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제야 알게 됐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예의를 갖췄어야 했던 거다. 단지 몰라서 하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버릇없는 사람처럼 혼나고 있었다.


3. 연차, 교육 등 결재는 전날 올려라

한 달 후 갈 교육의 전자결재를 받았다. 잠시 뒤 팀장님께서 다급히 나를 부르시는 것이다. "무심코 결재하긴 했는데... 한 달 후 교육을 벌써 결재 올린 거야? 과장님께 가서 설명드리세요." 알고 보니 뭐든 하루 전에 결재 올리는 게 관행이라고 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앞으로 따르면 될 것을, 이미 결재까지 난 것을 뭐가 문제여서 과장님께 해명까지 해야 하는지... 하지만 팀장님의 불호령 앞에서 딴말을 할 수는 없었다.


4. 장기간 부재 시 팀장님께 안부 전화를

3주간 신규자 교육 기간,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 차 연락을 주셨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여기는 인사치레가 중요한 조직이었다. 아무리 업무상 당연한 교육이라 해도, 내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했다. 몰라서 챙기지 못한 일인데도, 무심했다는 이유만으로 또다시 내가 뭔가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 두 달간 한 푼도 못 받은 출장비... 내 몫도 내가 챙겨야 한다...

두 달간 스무 번이 넘는 출장을 다녔다. 문득 출장비가 궁금하여 월급 내역서에서 확인해 보니 내역이 없는 것이었다. 알아보니 타 지자체는 출장비를 서무가 일괄 신청해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 시는 각자가 알아서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신청해보려 했지만, 2주가 지나 접수는 불가하단다. 출장은 늘 두세 명이 함께 다녔지만, 동료들은 각자 자신의 출장비만 신청했고, 신규 직원인 나에게는 그런 절차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열심히 하고자 출장을 위해 중고차까지 구매한 나였다. 다른 일도 아니고 돈과 관련된 건데, 누구라도 출장비 신청에 대해 단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빨간 목장갑

어느 날, 불용품을 정리하는 작업이 있어 막내인 내가 지원을 했다.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하겠다고 하였는데 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것이 몇십 년 된 가구와 가전제품을 폐기하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건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천장까지 닿은 큰 가구들은 무겁고, 군데군데 낡아 날카로운 나무 조각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다들 빨간 목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나는 처음이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맨손으로 나섰다.


겨울날 차가운 날씨 속에서 손은 점점 건조해지고, 가구들의 거친 표면에 스칠 때마다 따끔거렸다. 서랍장을 옮길 때는 서랍이 덜컹거리며 열리고 닫혀 손을 찧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이 메말라 가는 게 느껴졌다.


이번 가구는 특히 무거운 것이라 사람들이 몇 명 더 올 때까지 잠시 대기하던 중, 앞에 있던 공익요원이 잠시 주춤하고 내 손을 몇 초간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이유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 맨손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불용품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내게, 지원근무를 하러 혼자 나가는데 장갑이라도 챙겨가라고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을까. 다들 끼고 왔는데. 왜 모든 것을 혼자 겪으며 알게 되고, 혼자 깨우쳐야만 할까.


나는 모든 순간을 그저 부딪히며, 혼나며, 외롭게 하나씩 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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