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2021년 5월 17일 (월) / 35일 차 (2)

by 곤잘레스 파파

오늘도 어김없이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나갈 채비를 마치자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기 시작했다.

숲에 갈까, 바다에 갈까 고민하다가

비가 많이 오면 볼 수 있다는 집 근처

엉또폭포에 가기로 했다.

전 날 비가 많이 내리면 폭포가 생기는 간헐적 폭포다.


엉또폭포 앞에서

머피의 법칙은 어긋나는 법이 없다.

밤새 폭우가 내렸으니 충분히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폭포에는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힘겹게 올랐으나 경치 좋은 산세만 보고 왔다.

폭포로 들어가는 길목은 울창한 포레스트였다.

살아 숨 쉬는 원시림 같다고 해야 할까.

무척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다.


멋진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폭포 절벽 앞으로

밀감나무 한 그루가 아슬아슬 서 있다.

풍성한 제주 밀감이 탐스럽게 열렸다.

폭포를 못 봐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무인카페가 있다.

주인은 없는데 안에 있는 간식들을

돈을 내고 가져갈 수 있는 곳.

시원한 감귤주스를 하나 사서 마셨는데

맛이 굉장히 시큼하다.


첨가물 하나 없이

감귤즙을 그대로 짠맛이다.

흐드러지게 핀 길가의 수국과

맑게 갠 하늘은 오전의 허물을 잊게 만든다.


날씨가 사람 마음을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한라산 중산간 지대를 건너

금오름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짙은 구름 안개가 다시 드리워지기 시작하더니

당장 비가 쏟아질 기세처럼 먹구름이 몰려든다.

흐린 날씨에도 금오름 등반길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한 달간 피로가 조금 몰려왔는지

아이들은 깊게 잠들었고,

인근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성이시돌 목장에 우유부단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아이스크림이 맛나데~ 한 번 가보자”

추운 날씨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고팠던 우리는

목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역시나. 머피의 법칙은 또 다가온다.

카페는 목장에 있는 디저트 가게여서

유제품이나 우유 아이스크림만 팔았다.

우리의 모닝커피는 꽝 다음 기회로...



아이들이 잠든 사이 목장을 한 바퀴 돌았다.

드넓은 초원에 안개 낀 목장이 몽환적이었고,

한가로이 소들은 풀을 뜯고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된 테쉬폰이라는

독특한 건축물이 분위기를 돋우었다.

여기는 소문난 스냅 촬영지로

많은 커플들이 셀카를 담아내느라 분주하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부러운 젊음이다.


목장에서 직접 짠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농도는

굉장히 진하고 부드러웠다.

안개가 자욱한 농장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할까.

잘 어울리는 우유부단의 맛이다.

아침에 싸 온 주먹밥으로 아이들 점심을 먹이고

우리는 산방산 근처에 있는 햄버거 집에 갔다.


산방산 버거로 유명한 햄버거는

검은 현무암과 산방산 모양의

이미지 마케팅은 좋았으나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끝없는 머피의 법칙 ㅠㅠ


현무암과 산방산을 닮은 산방산 버거


오늘은 유독 코스가 길다.

산방산에 도착하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푸르렀다.

따사로운 봄날씨 같다.

산방산 중턱의 주차장은

늘 거센 바람이 불어 내려서

걷기조차 힘든 곳인데

오늘은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산방산 주차장에 내려

용머리 해안 방향으로 내려가는 산책길은

유독 경관이 멋졌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은 늘 옳다.

아이들도 마음을 연다.

반면, 용머리 해안으로 향하는 길은

오늘도 굳게 닫혔다. 머피의 법칙은 끝이 없다.

용머리 해안의 마음은 이번 살이에서 열어보지 못해서,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다시 두드려봐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산방산 수호신

산방산 수호신은 오늘도 근무 중 이상무!

변덕스러운 제주의 날씨에 하루 목적지만

세 번 바꿨지만 이제 대충 볕 드는 곳을

찾는 노하우도 생겼다.

구름길 따라가다 보면.


거의 60도 이상 올라가는 산방산 바이킹은

그동안 타 본 그 어떤 바이킹보다

가장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3천 원의 행복이랄까.

바이킹 타는 내내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고 모든 풍경을 담았다.


그리운 마라도는 저 멀리 안녕..

가끔 들르며 경탄을 금치 못했던

산방산 드라이브 코스도 이제 세이 굿바이.

하루하루 들르는 모든 곳들에 정과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 서른 다섯 날이 마치 꿈만 같았다.



같은 곳을 보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관심도에 따라

제각기 다른 판단을 내린다.


제주살이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에 오기 전 타인의 제주살이 글들을 많이 보면서

맞춤형 계획을 짜보기도 하고,

개인적인 관심도에 맞춰 지도를 보며 코스를 연구했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니 다른 것들이 보인다.

사실 이곳에서 내가 노동을 통해 근로소득을

얻어보지도 않았으며, 이곳에 적응하며

좌충우돌 살아보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이곳을 보는 시각은

단순한 여행과 육아 이상의 시야로 접근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이곳에서

단 한 번도 난관에 봉착할 기회를 접하지 못했다.

아이가 아파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사고로 경찰서에 가거나,

그 어떤 재난을 겪으며 그 난관을 극복해가는

긴급한 요소들이 전혀 없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구직활동을 하는 고생이

내겐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단순히 가진 자금 안에서

다양한 경험과 관광을 하며 한 달을 보냈다.

그래서 단순히 제주살이라는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한 달간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의 방방곡곡을 다니며 느낀 점들.

복잡한 서울생활과 다른 이곳에서의 여유로운 생활.

인구밀도가 적다 보니 어딜 가나 숨 쉬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제주에서 살아봤다는 감사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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