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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Dec 29. 2021

[마흔에세이 3] 매운맛에 대한 단상

비빔국수 애호가가 생각하는 매운맛의 연결고리

비빔국수 애호가 아빠를 둔 불쌍한 아이들




나는 비빔국수를 사랑한다.

월마다 한 번은 집에서 무려 8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연천에 간다.

군대를 연천 전방에서 보내며 그 맛이 그리워

찾는 까닭도 있지만

계절이 바뀌면 한 번씩 그 맛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회사 근처인 여의도를 비롯해

서울 곳곳에 체인점이 있긴 하지만

본점의 맛은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게도

비빔국수 맛이 그리워

연천을 일부러 찾는 집착을 부린다.




비빔국수를 먹을 수 없을 때면

시중에 파는 열무 비빔면을 쟁여 끓여 먹곤 한다.

거의 내 삶의 필수 먹거리다.


그런데, 어느 날.

비빔면이 너무 먹고 싶은 그런 날이었는데

바깥에는 눈이 흠뻑 내리고,

길은 미끄러워 편의점에 갈 엄두는 안 나고,

그렇다고 비빔면 하나 먹자고 편의점에 간다는

아내의 타박도 듣고 싶지 않아서

문득 라면으로 비빔면을 만들어 먹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했다.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다행히 열라면 몇 봉지가 찬장에 존재했고,

나는 급히 유튜브에서

<라면으로 비빔면을 만드는 법>을 찾으니

백종원 레시피부터 해서 수십 가지의 레시피들이

역시나(!) 검색됐다.


단, 단점은 일반 라면과 비빔면의 면발이 다르다는 것!

끓이는 정도와 찬물에 식히는 정도를 잘 구분해

면발의 질감이나 끊김 정도를 잘 맞춰야

얼추 비슷한 비빔면의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올해 들어 유독 음식 만드는 취미가 생겼지만,

아직까지 섬세한 면이 부족해

그럭저럭 맛 내는 건 성공을 해도

재료를 손질하는 건 여전히 자신이 없다.


결국, 비빔면을 만들기 위해 여러 재료를 꺼냈다가

자신감 부족으로 그냥 라볶이로 메뉴를 바꿨다.


얼추 그럴듯한 라볶이의 형태




라볶이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분말스프에 설탕과 고추장을 풀어

센 불에 한창 푹 끓여 국물을 졸인 다음

면사리와 대파를 넣고

끓이면 완성!!!


고추장과 스프의 오묘한 조합과

설탕이 가미된 단짠단짠 효과랄까.

위 사진과 달리 맛은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물론, 비빔국수나 비빔면의 대용이 되긴 힘들었지만.

비빔면이 먹고 싶은 날, 그럭저럭 보완은 됐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이렇게 매운맛에 환장(?)하게 된 건..?


한 번은

몸살이 났을 때

얼큰한 라면 국물에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땀을 쫙~ 빼면 감기몸살이 사라지는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를 느낀 경험이 있어

똑같이 했다가


결국, 그게 감기몸살이 아닌 장염으로 인한 몸살이라

2박 3일을 배를 잡고 방바닥에 찐하게 뒹굴었던

눈물겨운 에피소드도 있다.


새로 기획하는 음식 프로그램을 위해

음식사를 공부하다보니

이렇게 매운맛에 열광하기 시작한 건

6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17C 고추가 들어온 이후

매운맛을 알기 시작했고

(물론 지금처럼 맵진 않았을 테지만)


지금 우리가 먹는

양념김치나 라면, 떡볶이, 마라탕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는 생각보다 굉장히 짧았다.


근대화 이후

도시화, 산업화의 영향이라는

전문가의 분석도 많았다.




아이들이 매운 김치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는 건

늦으면 6살 이후부터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혓바늘은

성인의 매운맛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건 좀 더 연구해봐야겠지만.

어떻게 매운맛이 커가며 길들여지는지의

과학적인 연구도 궁금하긴 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뽀로로 백김치 종류들이 늘 잘 팔리곤 한다.


요리를 직접 하기 시작하면서

재료의 가격을 알기 시작하고,

고춧가루 200g 1봉지의 가격이

생각 이상으로 비싸다는 사실에 놀라며

왜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게 고추를 사다 말리고 방앗간에 가서

고춧가루를 빻아오는 수고를 하는지 새삼 이해가 됐다.


요리를 하다 보니

고춧가루가 간장 이상으로 쓰이는 일이 많더라.


모든 요리의 중심인 '고춧가루'



우리는 흔히

'매운맛'을 한 번 보여줘야지

라는 농을 던지곤 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매운맛이란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는 "아픈 감정노동"이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건,

매운맛이란 생각보다 우리네 성인들이

좋아하는 맛인데 왜 그렇게 사용되는 걸까?


아주 강한 자극은

혀에도 강한 통증이 전달되기 때문일까.


여하튼, 생각의 꼬리잡기를 이어가면

내 추억 속의 매운맛은

돈 없고 힘들었던 추운 겨울날

포장마차에서 값싼 소주 일병에

얼큰한 콩나물국 한 그릇 안주 삼아 마시던

젊은 날의 초상화 같은 맛이다.


그래서 매운맛이 그렇게

아련하면서도 달달하다!




비빔국수를 그렇게 사랑하는 이유도

힘든 군 시절을 맵고 단 맛으로 이겨냈던

아니 잊어보려 했던 아련한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흔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매운맛이 더 당긴다.


삶은 생각 이상으로

점점 더 팍팍해지고,

아이들을 키워야 되는 책임감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그 무게감을 이겨내기 위해

소주 한 잔에 담아낼 수 있는

매운맛이 점점 더 그리워지는 것 같다.


한국인들도 그렇지 않을까?

아플 때 땀을 흘리며 싹 이겨내야겠다는

플라시보 효과의 그 매운맛처럼.

팍팍한 현실을 어떻게든

매운맛으로 이겨내 보려고 하는

그 절박함.


그 절박함이 매운맛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지

매운맛에 대한 두서없는 단상을 적어 본다.




오늘도 비빔국수가 당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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