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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Dec 15. 2021

[마흔에세이 2]  채울수록 잃어가는 것들

상대평가가 되어버린 격차의 굴레

"어차피 사람 많은데 뭐 굳이..."

"쟤는 왜 성격이 저럴까. 같이 상종하지 말자"

"어차피 적자생존이라, 내 것부터 챙겨야지"


나는 사회화가 될수록, 지켜야 될 것들이 많아질수록,

타인과의 경계점을 찾고 내 이익의 우선순위를 가려가며 삶의 잣대를 만들었다.


한때는 절대 떨어지지 말자며 우정을 맹세했던 친구도,

한때는 다시 안 볼 것처럼 갈라섰던 인연도..

때로는 이해관계에 따라 멀어지기도,

가까워지기도 하는 게 인생사기에.


그래서, 종종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산다.

연말연시면 주변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나눔 행사를 하고, 기부 문화를 홍보하지만.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하면서

힘든 이웃들을 면하기 십상이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것들


스물아홉 입사 후,

입사의 결정적 계기였던 프로그램 <울지마 톤즈>를 보고,

고 이태석 신부의 발자취를 찾는 프로그램 제작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

그래서 회사에서 받은 첫 월급을 전부 봉사단체에 기부하고,

네팔 지진 취재차 찾은 현장에서 집도 가족도 잃고,

모든 걸 잃은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월급과 출장비를 보태 2천 달러를 현지 주민에게 쥐어주기도 했던

나름 좋은 일에 대한 호기가 넘쳤던 삼십대 초반의 시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게 많았던 시절


그땐 가진 게 많지 않았다.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부채세대라서

회사 들어와 빚을 갚고, 조금씩 조금씩 돈을 모아

작은 전세자금 4천만 원을 다 갚았을 때 느꼈던 희열.

이제부터 결혼하려면 종잣돈이라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쓰는 게 술 몇 잔 마시는 거 말곤 없는지라

써도 써도 월급이 참 많게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내 나이 삼십대 초반까지는.





욕망 덩어리


그랬던 내가 참 많이 바뀌었다.

가질수록 가볍고, 채울수록 아쉽더라.

채워도 남들보다 못해 보이고,

자꾸만 줄줄 비워지는 것 같은 기분.

삼십대 후반부터 느껴지는 빈궁함이랄까.


좋은 인연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예쁜 두 딸을 낳고, 네 명의 가족공동체가 완성되고,

작지만 서울에 내 집 하나도 장만했다.

집값 폭등 시기에 구입해 30년 만기로 영끌한 담보대출로

월 200 가량이 원리금으로 나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30대 초반에 마음가짐은 그랬던 것 같다.

서울에 내 집 한 채가 굳이 뭐가 필요하겠냐며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있는 침대가 있는 방,

삼시세끼 만들 수 있는 주방 하나, 화장실 하나.

짐도 많지 않아 방 두 칸짜리 빌라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생기면서 회사 근처로 옮기기 시작하면서

15평짜리 전세를 구하려고 내 생애 억대 대출을 처음 시도했고,

갚아도 끝이 없는 전세대출에 갈수록 전세는 씨가 마르거나, 가격이 올라가고

언제든 방을 빼 달라고 하면 짐을 다 빼야 하는 불안정한 거처에

결국 애 둘 딸린 결혼 5년 차에 손을 들고,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서울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했는데

왜 죄인이 된 기분일까.

매월 월급의 반을 원리금으로 내고 있는데

갚아도 갚아도 밑 빠진 독 마냥 변동 없는 대출 잔금에

한숨만 푹푹 내쉬고

술값 외식값 줄여서 팍팍하게 생활비를 아껴가며

애둘의 책들도 당근마켓에서 사거나 지인들로부터 얻어 쓰면서

참, 삶이 팍팍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욕심이라는 게

갖기 시작하면 한이 없더라.

무주택 세대주였을 때는

집값이 떨어지기를 한없이 바라다가,

영끌해 집을 사니

집값 떨어질까봐 전전긍긍이다.


미친 아파트의 도시


서울의 미친 아파트값을 설명하면 끝이 없지만  

단적으로, 내가 속한 여섯동 600세대의 집값만 합쳐도

평수가 제일 작은 우리 집부터 넓은 집의 평균을 구했을 때

대략 1조 원이 약간 못 미칠 정도다.

6동밖에 안 되고, 마포구 일대에서 제일 저렴하다는 단지가 이 정도니

세대당 평균 20억 원을 호가하는 30층짜리 마포 래XX의 경우

수십 동을 넘어가는 대단지에 세대수만 수천 세대를 육박하니  

몇 조원은 우스워보일지도.

2021년 12월, 서울의 부동산값은 천정부지 고공행진 중이다!


올해 나라 예산이 550조 원이고,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400조 원가량이니,

부동산 인플레이션 규모는 말 다했지...


미친 현실을 설명하자니,

조금 멀리 돌아왔다.


나름,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이라 가능했던 영끌대출.

갚아도 갚아도 변동 없는 잔금임에도

회사 임금은 10년째 거의 동결 수준이다.  


어떻게 해야 돈을 조금이라도 더 갚고 모을까

젊은 세대들이 갖는 팍팍한 경제적 현실의 유일한 도피처가

주식과 코인이라는 도박판이 됐으니

유튜브에는 한탕을 꿈꾸는 시정잡배가 넘쳐난다.


욕망이 넘치는 도시




채울수록 잃어가는 것들

 

삼십대,

돌이켜보면

채워지는 게 많았다.


좋아하는 일자리도 생겼고,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고,

예쁜 자녀들도 생겼고,

그 힘들다는 내 집도 생겼고,

10년째 10만 KM도 타지 않은 작은 차도 있고,

평범하게 내 인생에 많은 것들이 채워졌지만

허기는 더 넘친다.


왜 이렇게 나는 못 가졌을까.

왜 우리 아이들은 좋고 비싼 장난감 하나 못 사줄까.

왜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못할까.

왜 남들처럼 호캉스, 골프 이런 걸 할 여유가 없을까.


상대평가가 되어버린 내 삶에

팍팍해진 정신은 내 심신을 오염시키고 있다.


연말연시 기부도 남일처럼 느껴지고,

좀 더 경제적 자유를 누리면 하겠다는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해버리는.

주변의 좋은 인간관계들도 하나둘 떠나버리고,

먼저 선뜻 연락하는 것조차 데면데면해져 버린.

저장된 수많은 연락처에 맘 편히 손이 가는 번호가 없어졌다.


코로나로 더 만남과 연락이 뜸해진 계기도 있겠지만

팍팍한 삶에 여유가 많이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혼자였다면? 만일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됐다면?

가족이라는 핑계를 대본다 해도.

아마 크게 마흔의 나는 지금과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본다.


사회화와 욕망이란 굴레가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나오는 수많은 삶의 단상들처럼

내게도 덧 씌워져 있기에.


채울수록 더 많이 잃어가는

가난한 40대를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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