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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Jan 10. 2022

나의 군대 이야기

'멸공'과 '친북'의 이념논쟁이 싫은 이유

나는 장교였다.


소위 계급장을 달고

처음 발령받았던 부임지는

경기도 연천 최전방의 GOP였다.


GOP대대 OP근무에서

사단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짧은 전방 경험이었지만

강렬했다.


부임받은 한겨울의 GOP 경계근무는

영하 10도 정도야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서운 한파를 막을 곳이 없었다.


계단 하나에 족히 40cm는 됐고,

오르락내리락 십여 개 초소를 돌다 보면

무릎 연골이 닳는 것은 기본에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간밤이 훌쩍 지나간다.


GOP에 근무하는 간부든 병사든

한 번 들어가면

족히 6개월 가까이를

이곳에서 추위와 더위와 벌레들,

그리고 언제 일어날지 모를 적의 위험에 노출돼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경계근무를 선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일 년 365일이 영원 같았다.


GP 근무를 다녀와 : 이것도 군대의 추억이랄까


새삼스레 군대 얘기를 꺼내는 건 조심스럽지만

군에 있을 때 별별일들이 다 있었기에

몇몇 셀럽들이 떠드는

'멸공'이나 '평화'나

내겐 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그냥 한 몸성히

아무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는 게

유일한 목적이었다랄까.


혹여나 전방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거나

핵위협이 있거나

천안함 사건이 터지거나

북한 도발이 발생하면

군장 싸고 군화 신고

잠자리에 들만큼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멸공'에 대한 괜한 갈등보다

허황된 '평화' 기조가

한결 나았는지도 모르겠다.


열악했던 환경, 2007-2009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2년 6개월을 경기도 연천에서 보냈다.

 

사단 문화공보장교로 부임받고

사단장님보다 더 많은

장병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부대 행사며

부대 정신교육이며

부대 공보 상황조치까지

꽤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자살사고나 사망사고 류의

불행한 일들도 꽤나 많았다.


장병의 실수로

민간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장례식장에 가서

군인이라는 이유로

총알받이를 받아야 할 일도.


수색대원보다 몸은 덜 힘들었을지라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꽤나 큰 일이었다.

군인이라면 일단

부정적인 선입견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내가 원해서 군대에 간 것도 아닌데도.

우리나라의 군대에 대한 인식은

최하 수준이었다.




우리의 국방비 예산은

전체 예산 중 지출이 가장 큰 범위 중 하나다.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방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

미군이 주둔하면서 책임져야 할 비용까지

상당 부분이 매년 군비로 흘러간다.


화전양면이라고

정신교육을 하면서 강조했던 부분이지만

북한을 믿지 않는다.


앞에서는 평화를 외치지만

뒤에서는 핵개발과 도발을 일삼는 게

너무나 반복적인 일이라서

이젠 평화를 외치고

두 정상이 만난다 해도

남들처럼 가슴 뛰는 일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판문점 선언도

내겐 그리 극적이진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멀어질 게 뻔하니깐.


지금 와서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현 정부의 가장 실패한 정책 중 하나가

대북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대북정책은

절대로 끌려다녀선 안 된다.

국방력 강화는 기본으로

어느 선에서

미국이나 중국이나

우방을 확보해야 하고

6자 회담을 통해

우회로를 터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반공 기조도 옳지 않다.

'멸공'이라는 이유로

지난 50년 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군부의 탄압에

희생됐는가.


왜곡된 멸공 의식이

국민들 간의 분열을 낳았고,

북한을 이야기하면

새빨갛게 보는

마녀사냥식 매카시즘을 낳았다.



우리는 전쟁 이후로

너무나 다른 정치체제 하에서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왔다.


한 순간에 그들을 바꾸려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영원히 적으로 둬서도 안 된다.


적당히 상호 체제를 인정해주고

적당히 어려운 점을 포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DJ의 포용식 햇볕정책이

틀리진 않았다고 본다.


중간에 정권이 바뀌었더라도

오락가락 대북정책만 아녔으면

김정일 체제 하에서도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는 '멸공'이든 '친북'이든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싫다.


왜 그런지 요즘

한 재벌 인스타의 '멸공'이

화제가 되고

또 이에 대한 반발 피드백들이

화제가 되고

쓸데없는 이념주의에

갈등만 커져간다.


그동안

표면화되어 나타나진 않았지만

정부에 대한 재벌들의 반발감도

어느 정도 느껴지고


한 번 터지면

도화선처럼 불붙을

잠재적인 갈등과 혐오도

엄청나다.


괜한 매카시즘이

70년대도 아닌 2020년대에

상호 헐뜯기 논쟁으로

일파만파 확산될까

두렵다.


적어도

SNS에서 말장난하는 당신들이

군대에서 경계근무 서진 않잖아.

오늘도 당신들 한 마디에

전방의 추위 속 경계근무는

더 빡세 질지도 모른다.


다시 군대 간 첫날밤 꿈을 꿀까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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