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곤잘레스 파파 Jan 14. 2022

[마흔에세이 8] "좋아요"와 "싫어요"

니가 뭔데 왜 내 감정을 규정짓니?

오랜만에 SNS에 올라온

오래된 친구의 글에

반가운 마음으로 댓글을 남겼다.


한참 뒤에

"댓글에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늘 그렇듯 SNS의 새 댓글 알림은

내가 올린 댓글의 댓글이 아니더라도

계속 알림이 울린다.


뭐라고 남겼지?

반가운 마음에

궁금해 알림을 누르면

내 댓글에 대한 댓글은 물론

댓글에 "좋아요"도 없었다.


올라온 수십 개의 댓글에는

모든 대댓글이 달렸고,

"좋아요"가 눌렸는데

내 인사글은 못 보고 지나친 걸까?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뜬금없이

댓글을 남겨 잊어버린 걸까?

나한테 서운한 감정이 있나?


아무것도 아닌

작은 온라인 피드백 하나에

온갖 감정들이 스쳐간다.


결국, 친구에 대한

서운한 마음으로 창을 접었다.


"구독" "팔로우" "좋아요" 세상




옛날 같으면

그 소식이 궁금하면

연락처를 찾거나

메일을 뒤적였을텐데.


형식적인 댓글도 관심이라고

이전보다 확실히

연락을 위한 노동력이

"좋아요"나 "이모티콘"으로

확 줄기는 했다.


내 소식이 궁금하면

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 팔로우하세요.

싸이월드 방명록을 대신하는

인스타 댓글에

100만 팔로어 유명인도

옆집 친구처럼 가까워진 기분도 든다.

설령, 그 유명인이 내 댓글에

피드백을 올려준다면 더더욱.




적어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은 SNS에 쓰지 않을까?


관종의 시대!


내가 한창 SNS 중독 의심 증세에

빠졌을 때는 하루에 거의 2시간 이상을

SNS를 보고, 남기고, 피드백을 즐기느라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기 어려웠던 적이 있다.


잠자리에 들 때도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스마트폰은 베개 가장 가까운 곳에 둔다.


그리고

일어나는 꼴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SNS를 확인하는 일이 되어버린 

심각한 SNS 중독자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SNS를 활용하는 빈도가 줄었지만

(약간의 귀차니즘도 동반돼)

여전히 새 글을 올리고 나면  

그 피드백이 궁금해

잦은 빈도로 드나들곤 한다.


내가 올린 글에 대한

소셜 지인들의 감정은 다양할지언데

그저 "좋아요" "멋져요" 등으로

단순화시켜 내 감정을 소비한다.


:좋아요 가 적거나

댓글의 피드백이 적으면

내가 올린 글에 대해

문제 인식을 갖고

자아를 성찰하기까지 하니...


뭐, SNS가 내 사생활과 인간관계와

감정 소비까지 모든 걸

좌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SNS에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걸 싫어하는 지인들도

꽤 많다.


오히려 매일 글을 올리는

내 부지런함에 엄지척할만큼

SNS를 수단으로 인식하는

지인들도 많다.


그런데 젊은 세대로 갈수록

SNS와 자아를 동일시하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진다.

(한때 나처럼)


거기에 더 나아가

메타버스까지

새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SNS는 메타버스의

2차원적 그림이라고 봐도 될 만큼

이제 현실세계의 자아와

가상세계의 자아가

각자의 정체성을 가질 만큼

매트릭스 세계가 현실화되고 있는 듯.




나는 이런 변화가

정말 무섭다.


자아 분열과 감정 소비,

악플에 따른 우울과 비관,

현실세계 못지않은

가상세계의 돌팔매질, 이지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기에.


단지 "팔로우"와 "좋아요"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알고리즘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지인의 지인,

내가 알 수도 있는 지인,

내 관심사의 관심사,

내가 봤던 것, 소비한 것, 찾는 것 모두가

그 알고리즘의 알고리즘으로

모든 정체성 구분짓기를

실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


결국 내가 나를 규정짓는 게 아닌

보여지는 내 모습의 나를 규정하는

가상세계의 정체성이 현실세계보다

더 명확해지는 딜레마.

그 간극에서 오는 혼란이 어쩌면

사회의 비극을 불러올지도 모르겠다.


 


 

SNS의 무서움을 실감한

최근의 이슈가 있다.


바로 한 재벌의 인스타가

쏘아 올린 '멸공' 논쟁.


70년대도 아닌 지금 시대에

멸공이라는 해묵은 화두가

왜 갑자기?라는 뜬금없는 느낌이지만

젊은 세대, 남성들 사이에서

꽤나 많은 지지와 호응을 끌었던 것 같다.


물론 나와 다른

수십만 팔로어를 지니고

이름만 대도 알만한 공인에

한 기업의 대표니

그의 피드에 올리는 글은

나의 피드에 올리는 글의 무게와

확고히 다르겠지만...


피드의 자유가

이젠 어떤 갈등으로 초래할 수 있는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그게 또 하나의 정치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던 사건이다.


멸공 해프닝


그는 '공산당을 싫어한다'며

확고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혔다.

그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또 정치적으로 받는 불필요한 확산.

대선 정국을 앞둔 사회의 분열과 혼란.

SNS라는 오픈 소스가 남긴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이젠, 빠져나와야겠다.

중독의 늪에서.

가끔 소식이나 올리고

타인의 소식을 듣고

내 일상을 올려

나름 추억을 소환하는

알콩달콩한 공간으로 활용하려고 했는데

불필요한 시간 낭비와

불필요한 감정 소비가 많다.


서두에 쓴 경험은

오래지 않은 최근의 에피소드다.


서운했던 감정은

며칠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구차하게 이유를 묻거나

또 댓글을 남기고 싶진 않다.


혹여나

먼 훗날 언젠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넌지시 물어봐야겠다.


그럴 인연이라면... :)


이렇게 묻는 것도 구차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에세이 7] 흑백과 컬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