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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Feb 22. 2022

[4] 누가 공깃밥 양을 규정지었나?

지름 10.5cm, 높이 6cm의 역설

아이들을 데리고

음식점에 가면 늘 빠짐없이

주문하는 메뉴가 있다!


"공깃밥 하나 추가요!"


신기하게도 공깃밥 하나는

아이들 두 입에 딱 맞을 양이다.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고!!!


이런 마법 같은 정량을 누가 설계한 걸까?



COREE, Bon appetit! (1890년대 프랑스에서 유통되던 사진 엽서)


이 한 장의 사진.

불과 12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의 밥상이다!

고봉밥 한 사발 양이 어마어마하다.


지금 우리가 먹는 공깃밥 양이 210g이 채 안 된다면,

저 때 밥사발 양은 무려 680g에 달한다고 한다.

120년 사이에 우리가 먹는 한 끼의 밥양은

무려 3분의 1토막이 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밥의 양은

왜 이렇게 줄어든 걸까?


보관도 양 조절도 편한

스테인리스 용기는 누가 개발한 걸까?

이 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결국 밥양이 줄어든 건 보릿고개 영향이었던 것!


조선시대에도 흉년이 오면

쌀을 통제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도

전방의 군인들에게 쌀을 제공하기 위해

후방의 국민들에게 대용식을 권유했다.


쌀 대신 감자,

쌀 대신 나물,

심지어 참외까지....

대용식으로 먹자는 운동이 나올 정도였다.

  

쌀 생산량이 줄어들면 쌀 소비를 줄이는 게

당연한 선택인데

한국인은 밥심이라 불릴 만큼

밥의 정량 조절에는 보수적인

한국인들에게 밥의 양을 정부에서 규정한다는 게

굉장히 어불성설이다.



연대별 공깃밥 양의 변화 (출처 : 주방369)


연대별로 공깃밥 양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도표라 가져왔다.  


발단은 1973년 1월 양택식 서울시장이 제정한

표준식단이었다.


웃픈 사실은 지자체에서 행정명령까지 발동해

음식점마다 돌솥밥 판매를 금지하고

스테인리스 공기에만 밥을 담아 팔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1974년 처음 제정한 공기 크기는

지름 11.5cm, 높이 7.5cm였다.

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공깃밥 양이 적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여론을 무시하고 음식점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1976년 서울시는 공깃밥 단속을 강화한다.


지름 10.5cm, 높이 6cm.

그릇의 80%만 밥을 담아야 된다.

어기면 1회 위반에 영업 정지,

2회 위반에 허가 취소였으니...

정부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듯.


쌀을 아끼기 위해 아예 쌀밥을 못 먹는 날도 정했다.

일명 '무미일(無米日)'이라고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은 일과 중에는

밀가루 음식만 팔아야 했다.


공깃밥 담는 모습 (국가기록원, 1970년대)




정부가 정한 공깃밥 규격!!!

워낙 통제가 많았던 시대라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밥의 정량까지 엄격하게 통제하는 시대는

기본권이란 게 있었을까 싶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분식이 장려받는 시대였다.


식품학자나 영양학자, 심지어 부녀회 조직까지

요리강습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분식 장려운동을 펼쳤다.

한국영양학회지에는 쥐 실험까지 등장했다.

쌀만 먹인 쥐가 성장이 불량하고 지방간이 높다고.


초중고 학생들의 도시락에 혼식을 했는지 검열하고,

정부기관, 공공기관, 학교 구내식당에서는

국수와 빵만 팔았다.


심지어 탕류에 국수를 넣어 판매하라는

행정명령도 내려져

설렁탕이나 곰탕에 국수 넣어서 파는 게

이때부터 시작된 역사였다.


설렁탕에 국수, 깍두기


서울시 표준식단제에 따르면

반찬 가짓수도 조정했고,

추가 반찬 요구 시 별도 비용을

내야 했다.


특히 설렁탕, 곰탕, 육개장을 판매하는

대중음식점에서는 김치류, 나물류

두 가지 반찬만 내야 하는 룰이 생겼다.


별 걸 다 규정하는 사회다!




우리의 흔한 식습관에는  

1970~80년대 정부의 통제 하에

시작된 문화가 상당히 많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별식으로

짜장면이 나온다.


공공기관에서 강제로 분식을 하게 했던

오랜 정책이 아직 살아 숨 쉬는 것.


지금은 개인의 선택이 중시되는

미식의 시대라서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


먼 훗날 후손들이,

식당에 들어오는 인원,

식당을 영업하는 시간까지 통제하는

코로나 시국의 거리두기 정책을 공부하며

그 시기 또한 엄격한 정부였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


여하튼 공깃밥 규격이 1976년 정해진 양보다

지름, 높이가 1cm는 더 줄었다고 하니

우리 밥심도 많이 줄었구나 싶다.


"더 먹고 가"


오랜 선조들의 넉넉하고 후한

고봉밥 문화가 그리운 저녁이다.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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