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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Mar 07. 2022

[8] 도가니탕 라면과 불닭볶음면

대한민국 라면시장을 바꾼 2대 사건!

1970년 6~7월쯤이었을 것이다. 회의 도중 회장님께서 ‘교남동 도가니탕 맛이 좋은데 이런 맛이 나는 라면을 개발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직원들은 교남동 도가니탕 집에 가서 시식을 하고 주인의 눈치를 살펴가며 소고기, 뼈 등을 넣고 푹 삶은 큰 가마솥 안을 들여다보았다. 회사로 돌아온 직원들은 즉시 큰 가마솥에다 소고기, 뼈, 양념 등을 넣고 거의 온종일 고은 후, 그 농축액에 소금을 섞어 스프베이스를 만들어 건조시켰다.


- 전 롯데공업(현 농심) 연구원 신재익 회고록 中


위 회고록은 최초의 라면史가 아니다. 삼양식품보다 후발주자로 인스턴트 라면 사업에 뛰어든 롯데공업(현 농심)의 이야기다.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도입만큼 '한국 라면史'를 만든 획기적인 이벤트는 바로 라면 국물의 베이스를 닭고기에서 소고기로 바꾼 작업이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소고기 국물의 깊은 맛의 유래는 바로 '교남동 도가니탕'이었다.


1969년 말,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설 정도로 경영난을 겪은 농심은 삼양식품에 라면 설비를 매각하려고 했다. 당시 연구원으로 재직했던 신재익 씨는 회사가 어려워 자신도 직접 라면을 팔러 영업을 뛰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1970년 '소고기라면'의 탄생은 그에게도 농심에게도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소고기라면'으로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10%에서 22.7%로 급증했다. 그때 삼양식품에 설비를 매각했다면 오늘날의 <한국인을 울리는 신라면>도 빛을 보지 못했을 테다. 1980년대 사발면,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로 라면시장의 판도가 뒤바뀐다. 그리고 마침내 1986년, 농심은 대한민국 대표라면인 '신라면'을 출시한다.


신라면은 1986년 처음 시장에 나와 2021년 상반기까지 누적 판매량 346억 개, 누적 매출 14조 8000억 원을 기록했다. 1991년 라면시장 1위에 오른 이후 30년간 선두를 굳건히 지켰다.


 

한국 라면역사의 판도를 바꾼 <농심 소고기라면>



업계 1위를 빼앗긴 서러움을 안고 있는 삼양식품은 1963년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즉석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당시 출시된 삼양라면은 일본의 라멘을 베낀 닭고기 베이스의 '치킨라멘'이었다. 하지만 초창기 라면은 한국인들에게 낯설었고,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꼬불꼬불한 면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라면'이라는 이름이 옷감을 연상시켰고, 무엇보다 쌀밥 위주의 식생활이었기에 라면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게 이유였다.


당시 삼양식품 대표였던 전종윤 회장은 직접 거리로 나가 '무료 시식' 을 열고, '우리의 식생활을 해결한 즉석 국수'라며 대대적인 판촉 활동을 벌였다. 여기에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식용유 수입으로 공급량이 늘었고, 결정적인 정부의 지원책이 라면 대중화의 시발점이었다.


“1966년 가을 어느 날, 전중윤 회장은 의외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온 곳은 청와대였다. 직접 전화를 준 박정희 대통령은 라면의 생산과 판촉으로 정부의 분식장려정책에 협조하고 있는 전중윤 회장을 격려한 뒤 자신이 시식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라면에 고춧가루를 좀 넣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권유했다. 그 이유는 한국인의 식성은 아무래도 국물 맛이 얼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삼양식품 30년史 중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에 힘입어 인스턴트 라면은 폭발적으로 소비가 증가했고, 도시화와 산업화로 간편식을 찾는 사회 분위기가 더해져 라면은 국민음식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1970년 삼양라면은 “라면은 제2의 쌀입니다!”라는 광고를 통해서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부유층들은 결혼식에 온 하객들에게 삼양라면을 답례품으로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삼양라면>


한 때, 라면업계 부동의 1위였던 삼양식품이 농심에 자리를 내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식품 업계를 뒤흔든 1989년 '우지 파동'이었다. 1989년, '공업용 우지로 라면을 튀긴다'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전해지면서, 미국에서 우지를 수입한 삼양식품, 오뚜기 등 5개 기업의 대표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뒤늦게나마 한국식품과학회가 우지를 사용한 라면이 무해하다는 발표를 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았고, 우지 파동에 휘말린 기업들은 다수가 문을 닫았다. 삼양식품의 경우에도 무려 1,00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이 사건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 사건은 1997년에 가서야 무죄 선고를 받는다.


뒤늦게 무죄 선고를 받았다고 한들, 불량식품으로 전락한 기업 이미지는 쉽게 회복이 불가능했다. 삼양식품은 결국 IMF 위기에 직격탄을 맞았고,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데... 결국 공장 부지와 시설, 개인 자산을 처분하는 등 갖은 노력 끝에 6년여 만에 채무를 해결했다. 결국 삼양식품은  2011년 나가사끼 짬뽕을, 2012년 불닭볶음면을 개발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정말 이런 극적인 기사회생이 따로 없다. 불닭볶음면의 누적 매출액은 1조 2,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라면史를 바꾼 대표적인 제품은 농심의 '소고기라면'과 삼양의 '불닭볶음면'이라고 본다. 물론, 한국인의 매운맛인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도 맛볼 수 있는 '신라면'은 30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지만, 국내 라면업계를 대표하는 농심과 삼양식품을 살린 제품이 바로 요 두 제품이기 때문이다. 불닭볶음면 먹방은 유튜브에 찾아보면 엄청나다. 맛의 변주도 다양하고, 한 인기 유튜버의 단순 먹방은 무려 6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인에게 빼놓을 수 없게 된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는 물론 안도 모모호쿠의 일본이다. 하지만 그 역사를 발전시켜 세계시장에 당당히 경쟁력을 갖춘 건 전종윤 회장, 신재익 연구원 등 다양한 라면계의 대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생충의 성공으로 <채끝 짜파구리>가 세계인들에게 인기를 끌며 뉴욕 식당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짜파게티를 제조한 농심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고, 짜파구리가 인기를 끌자마자 11개국으로 조리법을 번역했다고 한다.


2019년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무려 75.1개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연간 소비되는 라면 개수만 무려 39억 개라고 한다니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지나치지 않다. 간편식을 넘어 미식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라면 역사는 재밌고도 슬프다. 쌀이 없어서 강제로 '무미일'까지 만들었던 정부 덕에 밀가루로 만든 인스턴트 라면은 급성장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라면 맛>도 다양하게 개발 중이다. 심지어 라면에서 건면, 짜장면과 비빔면까지 그 용도도 다양하게 변주된다. 스프가 먼저냐, 면이 먼저냐는 해묵은 논쟁도 여전히 회자된다.


라면 변주의 신세계


한국인의 맛을 공부하다 보면, 간혹 어떤 게 한식인지 정의 짓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런 글을 계속 담는 이유다. 개항 이후 한국인의 맛은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우리가 한식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음식들이 실제로는 반 세기가 채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물론 이전 사료에 존재했더라도 재료와 조리법이 제각각 다르기도 하다. 다음에 치킨 편을 적겠지만.. 치킨, 라면, 피자, 햄버거, 짜장면이 과연 한식이냐 아니냐? 는 이제 해묵은 주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 입맛에 맞고, 우리가 많이 접하고, 우리 대중들의 식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음식이라면 한식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때론, 구수한 된장찌개 한 그릇도. 느끼한 치즈 볶음밥 한 접시도 우리 입맛에 맞게 변주되면 나는 한식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불편한 역사도 우리 역사다. 우리는 불편한 역사를 끄집어내고 싶지 않아 민족주의를 수단화했고, 그 중심에 식문화가 있었다. 한식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물들었다. 이제 짜파구리 한 접시가 김치만큼 한식이라고 생각하는 세계인들이 많다. 경제 성장으로 공급이 많아지면서, 힘든 시절 배고픈 시절 먹었던 음식이 미식의 영역으로 넘어오듯, 음식에 부여되는 문화적 의미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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