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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자매 동맹, 결혼 말고 아파트

집 사고 평생 함께 살기로한 자매

by 고은집

<언니가 씀>

엄마, 아빠의 육아 철학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알아서 해라'.


참 깔끔하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뭐든지 알아서 그럭저럭 해결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아직까지도 부모님께 크게 혼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예외 상황이 있었다. 바로 동생과 다툴 때다. 자매가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아빠는 불같이 화를 냈다. 부모가 없으면 세상에 둘 뿐인데, 형제끼리 싸워선 안 된다는 지론이었다. 그러한 가르침 아래 3살 터울 자매는 아주 사소한 다툼에서 티격태격하던 앙숙 관계를 지나 이제는 세상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잉꼬 자매가 되었다.


20살,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하여 3년을 혼자 살았다. 동생도 자연스럽게 나의 자취방에 합류하며 10년을 더불어 살았다. 동생은 올해 한국 나이 30살. 우리는 영락없는 30대 2인 가구가 됐다. 30대에 접어들면, 많은 사람이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지만, 우리 자매는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둘이 함께 삶을 꾸려나가자는 동맹을 맺었다. 그리하여 올해, 서울 아파트 등기를 쳤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주변인들은 공통적으로 반응한다. 비혼 여성 주택 구매 자체도 신기한데, 자매가 평생 같이 살겠다고 각자의 전재산을 합쳐 집을 샀다니? 둘 중 하나라도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할 건데? 라며 궁금해한다. 우리가 그렇게 희귀한가? 잘 모르겠다. 어릴 때 같이 자랐던 사람이랑, 커서도 같이 살뿐인데, 자매 동거가 뭐가 그리 힘들겠나?


혼자도 살아보고, 동생과 함께 살아본 사람으로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매끼리 동거를 특별하다고 여기지만, 솔직히 남이랑 사는 것보다 더 '만만하다'. 혼자 살기 외롭고 어려움을 느끼는 여성이라면, 또 자매라면, 대안으로 선택해 볼 법한 삶의 형태다.


자매. 가족인 동시에 친구보다 가까운 관계. 알고 지낸 지 오래된 만큼 생활 속 갈등은 거의 없다. 있더라도 불같이 화르륵 쏟아내고 금세 화해할 수 있는 존재. 재정/집안일 분담에 더 유연해 동거 초반 발생할 수 있는 감정 노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 어차피 비혼의 삶을 결정했다면, 1인 가구로 살아가기보다 비혼 동맹 자매로 사는 게 훨씬 장점이 많다.



첫째, 재정적 협력이다. 우리는 주택 구매 자금을 온전히 저축과 대출로 마련했다. 부모님 지원은 없었다. 내 집 마련, 솔직히 동생과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동생보다 나이는 많지만, 늦게 취업한 터라 모아둔 돈이 적었다. 집을 사기로 결정하고 서로 벌이와 재산을 공유하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모아둔 대견한 내 동생! 그녀 없이 서울 아파트 계약은 절대 꿈도 못 꿨다.


반면 동생의 상황도 비슷했다고 한다. 언젠가 서울에 집을 사고 싶었지만 언제 행동해야 할지 몰랐단다. 자기가 아는 서울 아파트 단지들은 다 너무 비싸니 빌라나 오피스텔이라도 매수할 요량으로 덮어두고 돈을 모았다고 한다. 동상이몽이든 뭐든 간에 동생이 돈을 충분히 모아둔 덕분에 우리의 내 집 마련이 급 물살을 탔다.


시드가 적어 한계는 물론 있었지만, 둘이 함께하니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 고백하자면, 이 과정에서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하는구나' 느꼈다. 결혼적령기 커플이 재산을 모아 결혼을 하면,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제도/정책을 이용해 보다 손쉽게 대출 레버리지를 활용 가능하지 않은가.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1인가구는 꿈도 꾸지 못할 여러 혜택을 두 눈을 보고 나니 더 확신이 들었다. 하루빨리 집을 사야 한다고.


부동산 공부를 하기 전까지, 집은 결혼하면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이 미뤄지니 내 집 마련이 멀어지는 것도 당연지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 살다 보면 내 집마련은 점점 더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서울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다. 혼자서 무리라면, 둘이서 힘을 합치면 가능해진다. 집을 사기로 마음먹은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자매 공동체였다.



사실 사전적 의미로 우리가 이룬 가족 형태는 딩크(DINK)나 다름없다. '딩크(DINK)'는 'Double Income, No Kids'의 약자다. 동일한 재정 수준이어도, 비혼 자매는 딩크보다 나라에게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다. 법적/제도적 보호도 거의 없다. 나라마저도 자매가 함께 살아가는 형태를 ‘일시적 동거’로 보는 셈이다. 자매일지라도, 비혼 여자들이라는 점이 우리의 단점이다. 반대로 우리의 장점은? 2인 가족이라는 점이다. 비록 신혼부부보다 제약이 있지만, 경제 공동체로서는 손색이 없다. 덕분에 부동산 시장에 이색 플레이어로 기꺼이 뛰어들 수 있었다.



두 명의 자산을 합쳐 주택 자금을 만든 것 외에도, 우리의 재정 협력은 일상 속에서도 굳건하다. 집값에서 추가로 드는 유지보수 비용(관리비, 세금, 수리비)은 모두 반반 나눈다.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구매하는 생활비의 경우 정확히 금액이 얼마인지 따지지 않는다. 많아봤자 몇 만 원 하지 않는 금액인데 가계부를 쓰며 칼같이 나누자니 귀찮고 불필요한 공수가 든다. 가족끼리 뭐 하러 그러겠는가?


대신, 서로의 재테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하고 간간이 저축액을 공유한다. 어디까지나 함께 그려 놓은 미래 계획 이행을 위해서. 빡빡하게 각자의 목표 저축 금액을 설정하거나 대출 상환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너무 무모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차피 각자 알아서 잘하는 편이어서 별 걱정 없다. 덮어두고 모아뒀다가 언젠가 뚜껑을 열어 들여다봐야지. 그럼 동생이 또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모아 놨겠지!




둘째, 안전한 독립이다. 20살, 처음 혼자 자취방을 구하러 다닐 때가 생각난다. 이 넓은 도시에 코딱지만 한 내 방 한 칸 구하는 게 이리도 고단하다니. 앞으로 서울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해 길을 걷다가도 문득 속이 더부룩하던 때였다. 3년이 지나고 동생이 상경했다. 그 무렵, 나는 타향살이의 풍파를 겪고 조금 더 강해져 있었다. 언니로서 어린 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동생과 갈등이 있을 때도 많았지만, 역시나 동생과의 동거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았다.


10년 전 동생과 자취를 새롭게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서로의 안전망이다. 빌라 밀집 지역에서 거주했던 시절,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도 두렵지 않았다. 새벽 현관 밖 복도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침착하게 경찰을 부를 수 있는 용기가 떠올랐다. 동생이 있기에, 둘이기에 가능했다. 이제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와서 주거안전에 대한 걱정은 확 줄었다. 그래도 동생과의 유대감이 여전하기에 씩씩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셋째, 가사노동 분담에 따른 노동력 절약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9to6 직장인 2인 가구에게 서로의 존재는 너무 소중하다. 1인 가구는 혼자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한다. 하지만 둘이 살면 2명이 조화롭게 나누어 처리할 수 있다.


2인 가구라고 해서 집안일까지 2명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명이 요리를 하면, 다른 한 명이 설거지를 한다. 한 명이 빨래를 돌려 널어두면 다른 한 명이 잘 개어 정리하는 식이다. 물론 칼같이 반으로 나눈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분담하여 살고 있다. 이전 빌라에 살 때는 암묵적으로 욕실 청소는 내가 전담하고 주방청소는 동생이 맡았는데, 이사 온 뒤로는 아직 새 집에서의 시스템이 잡히지 않아 시범 운영 기간이 필요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겠지!



넷째. 사회적 편견과 고립에서부터 서로 방어막이 될 수 있다. 자매끼리 집을 샀다고 하니, 주변 반응이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형태는 여전히 주류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동생이 있으니 비혼 여자로서 느끼는 사회의 반응(주로 부정적)을, 둘이 함께 이겨낼 수 있다. 부모님 역시 우리에게 결혼을 강요하거나 재촉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능력 있으면 미혼으로 둘이 사이좋게 살면 된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부모님이 응원하고 가족이 행복한 삶. 안 할 이유가 없는 전략적/행복추구형 동거다.


마지막으로, 용기다. 가족과 함께 집을 사다 보니, 주택 구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대해서도 조금 더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동생은 적극적인 편은 아니어서 주로 내가 대출, 이사, 인테리어 등을 도맡아 진행하는 편인데도 그렇다. 그냥 동지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든든함이랄까.


이번 아파트 구매는 내가 주도했다. 이사 갈 동네와 집만 함께 고르고, 대출·서류 등 실무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전담했으니 다음 이사 때는 동생을 시켜봐야겠다. ) 어쨌든, 주택 구매 시점에서부터 자매 동맹 주거 형태의 장점을 톡톡이 느꼈다. 결혼하지 않아도, 완전히 혼자이지 않은 삶. 결코 고립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자매 동거 전 고려해야 할 사항은 뭐가 있을까? 친구나 연인과 달리 가족이라 가능한 신뢰가 있고, 반대로 가족이기에 더 화가 나고 예민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 아무리 가까운 자매라도 함께 살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장장 10년을 5평, 9평 빌라에서 붙어살면서 치고박다 보니 서로에게 완벽 적응해 버렸다. 네모나게 각진 모서리가 찌르고 무뎌지며 둥그러진 느낌이라 할까. 상대방에게 잘 맞는 '거의 완벽한' 동거인이 되어 요즘은 거의 부딪힐 일이 없다.


그래도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점 첫째, 생활패턴의 차이다. 빌라에 살 때는 방음이 좋지 않아 출근 시간이나 잠들 무렵 서로 수면을 해칠 때가 많았다. 내가 시청각, 후각에 더러 예민하긴 하지만, 동생은 무던한 편인데도 그랬다. 우리의 문제는 아파트로 이사와 방음이 해결되며 자연스레 해소되었다. 그렇지만 생활 패턴의 차이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자매끼리 둘이서만 살아본 적 없다면 동거 초반에 다양한 합의점을 찾느라 피로감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가사를 적절히 분담하고 어느 한쪽도 게을리 임하면 안 된다. 순전히 내 의견이지만, 가사 분담에서 꾀를 부리는 것은 생활비를 덜 내는 것보다 동거에 치명적이다. 아무리 우애 좋은 자매 동맹이라도, 어느 한쪽에게 집안일과 각종 기획 노동이 쏠려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불화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 정확히 칼로 반반 나누진 못하더라도 서로 눈치껏 상대방을 배려하며 가사를 처리하자. 평화롭게 동맹을 유지할 있는 기본 수칙이다.




셋째, 돈 '문제'다. 가족이라도 큰돈이 오가는 문제에서는 껄끄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마음이 맞아 재산을 합쳤지만, 둘 중 하나가 결혼하고 싶어지면 개싸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가족 간 증여/차용 등 금전 거래에 대한 법적/제도적 문제다. 사실 아직까지는 동생과 나 사이에 그다지 큰돈이 오가고 있지 않기에 조금 여유 있게 두고 보지만, 세금, 상속 등 문제도 항상 고려하고 있다. 사실 항상 마음속 한편에 걱정처럼 자리 잡고 있다. 오죽하면 이번 집을 구매할 때 아는 변호사를 통해 가벼운 상담을 받았다. 언젠가, 우리가 합친 자산이 더 많아지면 세무사를 통해 세금 문제를 정확히 짚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자매를 떠나서, 가족끼리 재산을 합쳐 자산을 공동 구매하기란 장기적으로 변수가 생길 수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쪽이 이사하거나, 또 결혼을 원하게 될 수 있으니까. 나중에 문제없도록, 우리는 어떻게 준비했느냐고? 안 했다. 일단 문제가 생길 리 없다고 믿는 편이다. 서로 확고하게 결혼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누구 한 명의 마음이 변하게 될지 어떻게 아느냐고 굳이 굳이 물으신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안정과 정서적 교류를 함께 나눌 '애인'이 '나만'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인생의 동반자인 동생이 있다. 엄마가 낳아준,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이며 가족이다.

나의 성격을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며 깊은 마음속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존재다. 혈연이라는 심리적 안전망도 그렇지만 인간적으로도 이미 서로에게 너무 길들여져 동생이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절대 인생을 동생에게 떠넘기며 무게를 안길 생각은 없다. 동생에게는 언제나 멋진 언니, 동거인이고 싶기에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립하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앞으로도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는 자매 공동체로 성숙한 동거를 해나갈 생각이다.



새 집에 와서 자매 둘이 살아서 좋은 날들이 변함없이 이어진다. 직장에서 고단함을 느껴도 집에 와서 맥주 한잔 하며 털어버린다. 그러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 날부터는 씩씩하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 내게 동생은 가족이면서도 친구 같은 동반자다. 벌써 30년 가까이 함께 살아도 질리지 않는다. 재정적으로는 협력하는 동료이며, 혈연과 유대로 묶인 가족이며, 독립적인 삶을 각자 살아가면서도 서로에게 의지하는 파트너.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어 두렵고, 나 역시 걱정이 많다. 그러나 안전하고 행복한 삶과 노후 역시 동생과의 연대 속에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은 굳건하다.


혼자는 외롭고 조금은 무섭고, 같이 살 친구나 연인은 없는 우리 자매의 생존 방식에 대해서 써보았다. 새집으로 이사왔으니 결혼·육아 대신 택한 ‘집’이란 어떤 의미인지. 결혼하지 않고 함께 늙어갈 우리에게는 또 어떤 새로운 가치를 줄지 찬찬히 고민해 보며 알아가고 싶다. 그게 비혼 동맹 자매가 함께 사는 삶의 묘미!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내 생애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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