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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 하고 집을 샀다

비혼 자매가 집 사고 느낀점

by 고은집

<언니가 씀>

드디어 아파트에 입주했다. 이사 전후의 삶은 적지 않게 달라졌다. 사는 동네가 달라지니 출퇴근길, 자주 가는 장소가 바뀌었고,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형편이니 지출에 경각심을 갖고 소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정도는 컨디션 좋은 집에 전세로 들어와도 충분히 체감할 만한 변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소위 '등기를 치고' 느낀 점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앞서 밝혔다시피, 서울 아파트 구매 자금은 오로지 나와 동생의 근로소득이다. 열심히 아껴 저축하고, 부족한 금액은 대출로 마련했다. 가족의 지원은 전혀 받지 않았다. 사실, 부모님은 우리가 주택을 매수한 지도 모른다. 전세 대출받아서 아파트 들어왔어~라고 흐릿하게 이사 소식을 전했는데, 아직까지도 별 관심이 없으시다. 워낙 방목형 육아에 익숙한 분들이라 그런 듯하다. (언젠가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그때는 말씀드리게 되겠지?)



우리 자매는 올해, 대출 규제 전 아파트를 구매했다. 올봄 뚜벅뚜벅 부동산으로 걸어 들어가 둘러볼 집을 찾았고, 왠지 망설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덜컥 계약했다. 단 2주 만에. 퇴근길,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예쁘고 봄바람이 좋아 걷다가 무심코 부동산을 찾아가, 물 흐르듯 집을 구매하게 되다니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주택 구매에는 청약/경매/일반 매매의 방법이 있는데, 청약은 꿈도 꾸지 않았다. 청약 통장을 12년을 갖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요즘 공사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탓에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부담스럽다. 내 능력으로는 영혼을 끌어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소형 평수조차 접근 못하는 실정이다. 솔직히, 30대 비혼 여성은 이른바 '줍줍' 청약같은 좋은 단지에 당첨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래서 올해 경매 공부를 시작했다. 경매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빌라나 구축 아파트를 낙찰받을 요량이었다. 성격이 급해 곧바로 직접 법원을 찾아 경매 입찰에 도전 했다. 결과는 낙첨. 그것도 번번이 2등으로 낙첨되었다. 도대체 왜? 우리의 전략을 되돌아볼 때였다. 우리의 경매 과정을 복기하는 중, 경매 시장의 분위기가 점점 과열되고 있다고 느꼈다. 직접 현장 소식을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에 관심 있는 동네의 부동산을 찾았다. 부동산 소장님이 밤낮 없이 바쁘셨다. 아파트 매매가 활발히 불붙었다는 소리였다. 현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느끼자 망설일 수가 없었다. 그 길로 예산에 맞는 집을 보고, 계약했다. 그렇게 대출 규제 전 막차를 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우연과 행운이 모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꾸준히 부동산을 공부하고 시장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찾아온 기회다. 언젠가 아파트를 구매할 때를 대비한 덕에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결혼 생각이 없는 직장인 자매라, 집을 고르는 기준은 남들보다 심플했다. 직장과의 거리, 생활 편의시설, 미래 가치 등 우리만의 기준을 철저히 따져 집을 선택했고, 현재까지는 아주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다.


집을 사고 나니 주변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느껴진다. 대부분 축하다. 유주택자는 '잘했네!'라며 어린 나이에도 주택을 매수하기로 결정한 결단력을 칭찬했다. 30대 초, 다소 어린 나이로, 좋든 나쁘든 간에 서울 아파트를 샀다는 점이 그들이 우리를 대견하게 느끼는 점인 것 같다. 무주택자(대부분 2030 지인)의 반응은 다양하다. 별 관심 없이 시큰둥한 사람들도 있다(주로 20대 중반). 20대 후반부터 30대, 주거 안정을 도모해야 할 나이대는, 긍정, 부정을 떠나 더욱 격렬한 반응이 돌아온다. 자가마련을 부러워하는 동시에, '어떻게 내 또래 여자가 집을 샀지?'라는 충격에 빠지며 본인의 소비 생활을 되돌아보는 흐름이다.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긴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결혼 대신 집을 택한 우리 자매의 선택을 신기하게 여기는 시각이다. 직장 동료/선배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친구들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제 집도 있으니 남자만 있으면 되겠다."

"집 있는 여자네. 누가 데려갈지 남자 땡잡았네"

"결혼하고 싶어지면 어떡해?"

난 할 생각 없다고 하면 곧바로 이어지는 "동생이 결혼한다고 하면 어떡해?"

"둘 중 한 명이 결혼하면 집을 어떻게 처리할 거야? (팔 거야? 한 사람이 가져?)"

동생이랑 계속 같이 살 거라고 하면 "동생이랑 평생 같이 산다고? 왜?"



거의 짠 것처럼 비슷비슷한 질문이다. 결혼이 아닌, 집을 선택한 결정이 왜 신기한 일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타격은 없다.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라 느껴 웃고 넘긴다. 가끔 뾰로통하게 반응하는 지인들도 몇몇 있었다. 주로 나보다 '급 높은' 회사를 다니며 연봉이나 근무환경이 좋은 친구들이 그런 반응을 한다. 그들에게 왜 그리 뾰족하게 말하는지 물어볼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다.


지인들의 편견과 질투 섞인 말을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은 이유는,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우리 선택에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 친구들이 자동차를 끌고 해외 여행하며 신나게 소비하고 다닐 때 나는 동생과 9평 빌라에서 허리띠를 졸라매 돈을 모았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연봉이 낮고 악조건에 처해있을지라도 말이다.


반대로 아예 비혼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동생들이나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주택 자금 마련 방법, 재테크, 아파트 구매 꿀팁을 물어본다.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대화는 항상 '더 열심히 살아서 더 잘 살자!'로 마무리된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자매애와 동료애는 덤이다. 그들에게 우리 삶이 모범 답안은 아니지만 하나의 좋은 예시가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



결혼하지 않는 삶은 제쳐둔다고 해도, 우리 자매는 왜 꼭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사실 전세나 월세로 아파트에서 지내는 법도 있었다. 주택 구매에 쓰는 돈은 여행이나 공부 등 다른 곳에 쓸 수도 있었다. 이유는 명료하다. 집 없는 서울 살이가 서러우니까! 서울에 상경온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백이면 백 공감할 테다. 20살에 상경한 이후, 서울 전월셋방을 전전하며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았다. 언젠가는 우리의, 각자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특히 나는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라 자부하기에 더욱 자가마련이 간절했다. 우스운 점은, 그렇게 이를 갈면서도 집을 꼭 사야 한다고, 내가 서울에 아파트를 살 수 있다고는 감히 생각 못했다.


항상 나의 삶을 주도하며 멋지게 살아가고 싶었지만, 현실의 한계 앞에 자주 좌절했다. 서울에 사는 청년이 가장 쉽게 비참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부동산 어플을 켜보는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위치가 그렇게 선명하고 징그럽게 느껴질 때가 없다. 네이버 부동산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슬펐다. 그렇지만 나는, 잘 살고 싶었다. 진짜, 너무너무 잘 살고 싶었다. 적어도 지금 생활보다 더! 그래서 돈을 모았다. 일말의 희망이었다. 누군가는 결혼자금을 모을 때 나는 전세 자금을 모았다.



돈으로 비참함을 느끼는 순간마다, 푼돈도 허투루보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야말로 악착같이 모았다. 전세 보증금 목적으로 모은 돈이니 금액은 사실 크지 않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내 일상을 지탱할 정도는 되는 든든한 목돈이 되었다. 동생과 돈을 합쳐 '시드'를 만들었고 마침내 서울 아파트를 샀다. 이제 나는, 내 명의 아파트에서 이 글을 쓴다. 지금 쓰는 글은 흔해빠진 부동산 성공담이 아니다. 서러운 셋방살이를 청산한 허심탄회한 고해이며, 절절한 자기 고백이다.





나이가 차니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다. 사실 결혼한 친구들 몇몇은 이미 아파트를 구매한 지 오래다. 요즘은 신혼부부도 자산 증식을 목표로 대출을 최대한 활용해 아파트를 구매하는 커플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이나 투자에 전혀 관심 없었던 친구들도,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서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경우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동네(소위 학군지)에 눈을 돌리게 되고, 아이가 살기 좋은 동네는 결국 사람이 살기 좋은 동네기 때문에 알짜배기 부동산으로 가격 상승세를 이어간다. 부모님 세대 때부터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부동산 자산 증식 방법인 것 같다. 그러니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도 더더욱 집은 사야한다. 서울의 아파트는 신혼 부부나 정상 가족에게만 허락되는 자산이 아니다. 현실 장벽은 높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비혼이면, 1인가구면 영원히 원룸이나 투룸에 살아야하나? (우리도 아파트에 살고 싶다!)





서울 아파트에 살기 전까지, 의식주 중 가장 중요한 건 식(食)이라 생각했다. 이전까지 삶의 큰 부분을 식도락이 차지했었는데,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의식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주(住)인 것 같다. 직주근접 동네에 거주하면 출퇴근 스트레스도 줄고, 깨끗하고 정돈된 동네에 살면 마주치는 사람과 경험하는 인프라부터 달라진다. 나의 경우 먹자골목 근처 빌라에 살다가 초등학교 근처 아파트로 왔는데 길거리 분위기에서부터 차이를 느낀다.


한 예로, 슈퍼를 나갔다 온다고 쳐도 빌라에 살 때는 길거리 흡연자들 때문에 꼭 간접흡연을 했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앞으로도 이런 평화를 지켜나가고 싶기에 더 좋은 집, 더 좋은 동네로의 이사를 꿈꾼다. 현실의 벽이 높다고 해도 당당히 꿈꾼다. 비혼 여성이라고 해도, 1인가구라 하여도 좋은 집, 좋은 동네에서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가 아닌가. 너무 어렵고, 실현 불가능할 것처럼 보여 나조차도 거세당한 욕구였다. 오로지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만 매몰되는 삶은 불건강하겠지만, 건강한 상승욕구를 바탕으로 일상에 긴장을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오히려 기혼자에 비해 미혼자가 자산 증식 속도를 내기 어렵기에 더 그렇다.



아파트를 사고 난 뒤, 인생 목표가 바뀌었다. 가장 가까운 목표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 주거지의 퀄리티를 한 단계 '점프'하기다. 상급지, 중급지, 하급지 따져가며 '급'을 나누는 게 참 별로긴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보다 확실한 명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집에 영구적으로 거주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아파트를 계약했지만,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서울에는 우리 집이나 동네보다 좋은 환경의 거주지가 너무나 많다. 평수도 늘려가고 싶고, 교통이 편리한 서울의 중심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다음 집을 위한 징검다리는 아니지만, 운 좋게 집값이 상승한다면 자산 증식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는 믿는다. 우리 자매는 앞으로도 함께 재정 전략을 세울 예정이다. 5년, 10년, 더 나아가 그 이후까지의 그림을 그리며.



집을 사고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일까? 사실 매일매일이 새롭고 감사하다. 몇 십억 원은 우습게 넘어가는 '상급지' 아파트, 대단지 신축 아파트보다 근사하진 않지만, 멀끔한 이 집이 우리의 집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평생 이 집에서 쫓겨날 일 없다는 사실이. 더 이상 '집주인'에게서 전세 연장하고 싶거든 보증금을 올려 내라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 더는 집에 관하여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집이 주는 안정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결혼하지 않고도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안정감을 얻었다.


물론 빚 상환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이 크지만, 역설적으로 더욱 자유로워졌다. 최근, 벽 선반을 달기 위해 전동드릴 해머모드로 콘크리트벽을 시원하게 뚫었다. 먼지를 흩날리며 드릴날이 벽으로 깊게 박힐 때 쾌감이 들었다. 못하나 내 맘대로 박을 수 없는 삶이여, 못난이 티비와 원목 흉내 내며 시트지로 마감된 저가 장롱, 책상 따위의 '옵션'을 함부로 내다 버릴 수 없는 인생이여 안녕. 이제 이 집의 주인은 나와 동생이다. 이제 우리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주택담보대출금뿐...)




집에서는 딱히 대단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마냥 즐겁다. 우리 자매의 보금자리라서 신이 나고, 함께라서 행복하다. 요즘 우리의 루틴은 퇴근 후 맛있는 음식과 좋아하는 와인, 맥주를 마시며 회포를 푸는 거다. 우리가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나간다는 감각. 말도 안 되게 짜릿한 느낌이니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한 모든 여성들이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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