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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파트 왜 샀어?

MZ의 부동산 공부

by 고은집

<언니가 씀>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MZ의 부동산 공부' 방법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다.


공부라는 표현을 썼지만, 절대 공부라는 개념으로 K-부동산에 접근하지 않았다. 부동산 서적도 거의 읽지 않았다. 출간물의 경우에 작가가 집필할 시점과 출간된 시점, 그리고 내가 책을 접하는 시점의 시차가 상당하기에, 정책이나 호재 하나하나에 휙휙 바뀌는 부동산 공부에는 그다지 적합하진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는 틈틈이 유튜브를 통해 부동산 콘텐츠를 챙겨봤다. 그냥 재미있는 스낵 콘텐츠를 즐기듯이, 시간 때울 때, 밥 친구로, 부동산 관련 영상을 가볍게 시청했다. 그래서인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부동산 시장에 대해 무지했던 시간이 아까웠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으면! 2012년, 서울숲에 간식 바리바리 싸 들고 놀러 가던 때, 성수동 재개발 물건에 관심을 가졌다면! 아니, 십여 년 전으로 갈 것도 없다. 당장 1년 전에만 부동산에 관심을 가졌다면 나는 저점을 잡아 좋은 가격에 집을 매수했을 텐데…. 뭐 그런 생각이다. 아무튼 후회해 봤자 시간은 흘렀고, 다시 오지 않을 기회는 없으니 잘 공부해서 기회가 왔을 때 용기를 갖고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K-부동산에 '진심'이 되어갔다.


그래서, 현장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야 할 물건은 현실 세계에 있다. 또 돈 써서 집을 사야 하는 사람은 유튜버가 아니라 우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에 동생과 나는 날씨가 좋을 때면 관심 있는 아파트 단지로 임장을 나갔다. 다만 이것도 '일'처럼 부담 느끼지 않고 가볍게 산책하듯 나섰다.


"오늘 날씨 좋다. 신당역 맛집 갔다가 청구역 아파트임 장할래?"

"그래!"

이런 식이다. 또 틈틈이 핫 플 탐방도 잊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성수동에 약속이 있으면,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역 근처 아파트를 둘러보면서 임장 기록을 했다. 이렇게 하면 핫한 상권 역세권 아파트를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보통 그런 아파트 단지는 평범한 1-2인 가구가 쉽사리 매수할 수 없는 높은 금액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 나도 이런 곳으로 '갈아타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에, 절약과 투자에 임하는 자세를 다잡게 된다.


어차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왜 쳐다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 매수를 고민한다면 무조건 발품을 팔아봐야 한다. 좋은 아파트, 나쁜 아파트, 상급지, 하급지 가리지 않고 가급적 많은 임장을 가보길 추천한다. 부동산에서 '저평가 아파트란 없다'는 말이 있다. 가격이 곧 가치라는 이야기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물건에 대한 가치 평가를 마친 합의가 바로 '가격'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살기 좋은 아파트는 확실히 비싸다. 비싼 아파트는 압도적인 장점이 있다. 그 유명한 반포자이,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도 직접 임장을 가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소위 말하는 상급지는 왜 상급지고, 대장 아파트는 왜 대장 아파트인지 현장에 가면 몸소 느껴진다.


하급지 혹은 비선호 아파트라 불리는 단지도 마찬가지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클릭 몇 번으로 아파트 정보와 가격을 둘러보다, 꽤 저렴한 가격에 놀랄 때가 있다. 가성비 좋아 보이는데 왜 아직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지? 싶은 아파트 때문이다. 그런 물건은 직접 임장가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언덕이 너무 심하다거나, 주차공간이 모자라다 못해 주차장이 다 쓰러질 것 같다거나. 매물 상태와 주변 환경, 교통, 편의시설을 눈으로 쭉 훑고 나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상급지 대장 아파트와 비선호 아파트를 얘기하다 보니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도 그렇다. 행복한 아파트 단지는 '브역대신평초' 집합체다. 브역대신평초는 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신축, 평지, 초품아 아파트를 줄인 말이다. 비교적 행복하지 않은 아파트는 저마다의 이유로 비선호된다. 다시 말하지만 부동산에서 저평가 아파트는 없고, 이미 나보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그만한 가격을 형성해두었다. 아파트 가격에는 현장에 나가야만 알 수 있는 다양한 변인이 있기 때문에 임장은 중요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별 기대 없던 물건에 생각지도 못한 장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구축이지만 서울에서도 손 꼽히는 대단지 아파트라서 아파트 단지에 들어오면 거대한 마을처럼 마음이 편안하다든지. 세대수는 적지만 역세권에 초등학교 근처라서 전세 세입자를 받기 좋을 것 같다든지. 이렇게 여러 동네를 다니다 보면, 어떤 점이 나에게 맞고 그른지 차차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막상 아파트 매수를 하고 보니, 내 집 마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공부한 지식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용기 있는 결정이다. 나는 약 2년 전부터 전세 계약이 끝나는 올해 주택을 구매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으로 시장이 들썩이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아파트 매수를 망설였을 것 같다. 실제로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대출 규제 정책이 나를 1주택자로 만들었다. 실제로 나는 대출에 제약이 많아졌다면 올해도 집을 매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집을 사고 나서야, 부동산 전문가들이 간간이 말하는 '대출 나올 때 사라'는 소리가 이해가 됐다.


집값이 떨어져도 괜찮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난 주식도 물리고 시작하는 편이다. 미국 주식의 대가 워런 버핏은, 투자자들에게 50%까지 떨어져도 괜찮은 주식을 사라고 했다. 일단 내가 구매한 부동산은 이러저러한 사실에 근거하면 50%까지 폭락할 일은 아직 없을 것 같다. 설령 아파트 가격이 반토막이 난다고 해도, 잠깐 정신 건강에 타격은 입겠지만 곧바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내 생활권에서, 생활이 편리한 아파트를 매수했고, 나의 판단에 따라 이런저런 면에서 투자가치가 있다는 믿음으로 구매했기에 그렇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할 수 있는데, 어차피 항상 오르기만 하는 자산은 없고, 어차피 하락장과 폭락장은 우리를 찾아올 거다. 나의 가치 판단과 근거가 확실하다면 하락장에도 버텨낼 위안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부동산 공부가 중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큰 쇼핑을 하는 때에, 개똥철학이라도 나만의 논리와 근거가 탄탄해야 타인의 말에, 시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유튜브 알고리즘은 위험하다. 상승론 유튜버 콘텐츠를 즐겨 보면 상승론자 채널만 추천 콘텐츠로 띄워준다.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이제 막차입니다!' 라는 등의 자극적인 문구가 써진 썸네일을 보면 금방이라도 내가 관심 갖고 있던 아파트 가격이 폭등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 또, 하락론자 채널을 즐겨 봐도 문제다. '서울 강남 집값 폭락- 한국은 부동산 때문에 망한다!' 라는 썸네일이 심심찮게 눈에 띄어 1주택자가 된 나의 가슴이 철렁하기 일쑤다. 개인적으로는 상승론/하락론 콘텐츠 어느 것도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튜버나 전문가들이 각자의 논리와 데이터를 근거로 발언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들의 견해가 들어맞지도 않는다. 분명히 영상을 시청할 때는 맞아, 맞아 하면서 무릎팍 도사가 점지해 준 것처럼 신통방통하다 여겼는데 말이다. 아무튼 영상은 신중하게 시청하고, 현명하게 취사선택해서 의사결정을 하면 된다. 어떤 의견을 매도하지도, 매몰되지도 않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아파트를 샀냐고? 내 집의 조건은 심플하다. '브역대 신평초(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신축 평지 초등학교'에서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은 견지하고 나머지를 지우기로 했다.제일 중요했던 것은 역세권. 차가 없는 뚜벅이 인생이기에 무조건 지하철 역세권이어야 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주요 업무 지구 (강남, 여의도, 광화문, 송파, 요즘엔 성수)와 멀지 않은 곳이 좋았다. 우리 자매 또한 강남 직장인이었고, 굳이 경기도가 아닌 서울 아파트를 고집했던 것도 직주 근접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평지를 중요하게 여겨 언덕이 심한 동네도 피했다.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나와 동생인데도, 언덕 위 아파트를 임장 다닐라 치면 무릎이 시큰거렸다. 이래 봬도 평균 나이 29.5세인데…. 매력적인 입지에 비해 '저평가 된' 역세권 아파트가 대부분 이 경우에 속했다. 솔직히 몇몇 아파트는 예산만 1억 더 있었다면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입지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여름 뙤약볕과 겨울 눈길에서 이 언덕을 넘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자마자 바로 포기할 수 있었다. 또, 이 집에서 평생 살 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는 매도를 하고 나가야 했다. 평균 나이 20대 후반(?) 젊은이들이 부담을 느끼는 언덕 위 아파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이지 못할 것 같았다.


연식이 오래된 구축 아파트인 것은 상관없지만 재건축 연한에 들어간 물건은 제외했다. 재건축 호재가 있지만, 분담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 게 뻔해서였다. 또 리모델링 추진 중인 물건도 제외했다. 재건축의 아이콘인 반포 원베일리, 올림픽 파크포레온 같은 성공사례가 정말 많은 반면, 리모델링은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지만 사업성이 부족한 탓에 대규모 프로젝트 진행이 어렵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리모델링 추진이 늦어지면서, 재건축 연한으로 접어드는 아파트도 많은데 이렇게 되면 조합과 입주민들의 팽팽한 의견차가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는 사람과의 갈등을 정말 피곤하게 생각해서 리모델링 단지도 제외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예산을 고려했을 때 남는 단지가 몇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서울의 유명한 구축 대단지 아파트와 우리 집을 비교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입지를 고려해 역세권/평지 물건을 선택했다. 환경은 좋아질 수 있지만 평지에 위치한 입지는 절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소형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사람들 중 우리 같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 같았다. 꾸준히 수요가 있을 지역 말이다. 그리고, 대중교통에서 타인과 부대끼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지하철을 오래 타지 않을 수 있는 집을 택했다.


부동산 투자 가치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 같은 실거주 1주택자에게는 생활의 편의성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야 빚을 갚아 나가는 보람도 있다. 우리 자매는 이런 관점으로 아파트를 구매했지만, 한국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열심히 부동산 공부를 해서 나만의 입장과 태도를 지켜야 한다는 점!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이미 주택을 구입했기 때문에 투자 목적의 부동산 콘텐츠를 더 이상 좇지 않는다. 다만 처음 부동산 공부에 입문하는 분들을 위해 아래 두 채널을 추천한다.



1. "작가 송희구" 채널 @thewriter-song



2. "집코노미" 채널 @jip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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