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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아파트 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아니 나도 사고 싶다.

by 고은집

<언니가 씀>

이 이야기는 친구의 결혼에서부터 시작된다. 곧 결혼을 앞둔 고향 친구가 청첩장을 손수 전해주기 위해 서울에 왔던 때였다. 서촌의 예쁜 카페에서 만나 브런치를 먹으며 본격적으로 예비 남편에 대한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친구의 예비남편은 술 담배 취미 없고, 커피나 디저트, 그밖에 다른 식도락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무던한 사람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으니 인간관계도 넓지 않았고, 부모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건전한 일상을 꾸려온 청년이기도 했다. 그는 몇 년 간 직장 생활을 하며, 돈 쓸 시간도 별로 없어 오로지 '집, 회사, 집, 회사'만을 오가며 급여를 몽땅 저축했다고 한다. 친구의 짝은 참으로 근면 성실한 동시에, 건실한 잔고의 소유자였다. 여기까지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여서 그래, 그래 하며 신나게 장단 맞췄다. 그런데 친구의 이 한 마디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얼빠졌다.


"이번에 신축 아파트 입주하는데 남편이 모아둔 3억을 보태기로 했어."


내 잔잔하던 일상과 편견을 산산이 깨부순 한 방. 3억? 3억이라고? 충격이었다. 남편은 친구보다 1살 연하였다. 종사하는 직업군의 특성상, 급여가 높다지만, 거기다 삼교대 근무의 특성상, 야간 근무 수당이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30세에 3억이란 돈이 있는 것인가! 적잖이 당황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끄덕거리자 친구가 말을 이어갔다.


"브랜드 아파트 32평인데, 가격은 5억 9천 정도 돼. 당분간 고향에 신축 아파트가 없을 것 같아서 투자 개념으로 무리했어."


한 마디 한 마디가 엄청난 위력을 가졌던 예비 신부의 내 집 마련기. (그렇게 말하는 친구에게는 어떠한 난 척이나 고자세 태도는 절대 없었음을 밝힌다!) 가치관도, 살아온 환경도, 소비습관도 그리 다르지 않은 친구가, 브랜드 신축 아파트 32평에 입주를 하다니…. 축하하는 마음 반, 부러운 마음 반 동시에 안고, 집 사진 좀 보여달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친구는 멋쩍은 듯 핸드폰을 내밀었다.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어 손안의 휴대전화 화면을 넘기며 '랜선 집들이' 다녀왔다.


새하얗다. 친구의 집이 내게 준 첫인상이다. 새집이라 깔끔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채광이 좋아 더욱 환하게 보였다. 무엇보다 너무 넓었다. 우리 빌라도 나름 역세권 '신축급' 빌라인데…. 올 화이트톤에 실크벽지를 발라 둔 덕분에 손님이 오면 깨끗하다, 새것 같다는 평을 많이 듣는 집인데…. 9평짜리 빌라와는 비교되지 않는 브랜드 신축 아파트의 위엄이란. 서울과 지방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 브랜드 32평 아파트와 내가 살고 있는 9평짜리 빌라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부러웠다. 부럽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신혼집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고, 곧바로 다른 주제로 이어갔다. 친구와는 멀리 떨어진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온갖 신변잡기에 대해 떠들었다. 친구와 즐겁게 얘기를 나누면서도 머리 한쪽에서는 30살, 3억 저축, 6억짜리 32평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 좀 전에 들었던 친구의 신혼집에 관련된 단어들이 얽히고설켜 머릿속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달려와 네이버 부동산을 켰다. 당장 우리 동네에 6억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뭐가 있는지 살펴봤다. 그런데 3동짜리 나 홀로 아파트밖에 없었다. 그제야 우리 동네가 빌라 밀집 주거 지역이라는 점을 알았다. 동네에 나 홀로 아파트밖에 없다 보니, 이런 내용이 마케팅 소구점으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부동산은 나 홀로 아파트를 '귀한 매물', '00동 유일한 아파트'라는 문구를 마치 홍보 문구처럼 내걸어, 네이버 부동산에 앞다투어 매물을 올려두었다. 하나하나 클릭해 보았다.


5억 7800만 원, 1997년 준공, 300세대 미만의 나 홀로 아파트. 연식도, 세대수도, 입지마저도 다소 애매하게 느껴졌다. 친구네 신혼집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 이것이 바로 서울인가. 서울에서는 이런 물건이라도, 빚을 내서 사야 하는 것인가? 탄식 섞인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이게 현실이라면 어쩔 수 없지. 서울에서 계속 직장을 다니고 살아갈 예정이라면, 내 형편에 맞는 집이있다면 그거라도 사야지. 내 분수에 맞게.


그런 생각이 들자 방금까지 못난이로 보였던 아파트에 조금 더 정감 갔다. 5억 7800만 원이라는 가격도 꽤나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빚을 내서 영끌족이 된 다음, 이 건물을 매수해 들어가 사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 아파트 바로 앞에 마을버스 차고지가 있어서 여기 앞에 살면 무조건 앉아서 출근할 수 있겠다... 따위의, K-부동산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지금이라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릴 법한 그런 생각들을.


한참 혼자만의 장밋빛 상상을 이어가다, 동생에게 친구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넌지시 물었다.

"우리... 집 살래?"

"그래."


동생은 몇 억짜리 아파트를 빚내서 사겠냐는 물음에 흔쾌히 대답했다. 누가 보면 '오늘 저녁으로 엽기 떡볶이 어때?'라고 물은 것처럼 별스럽지 않게. 동생의 태연한 태도에 어안이 벙벙해진 쪽은 오히려 나였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대답을? 너 돈 있어?"

"당연하지."


동생은 예사로운 일이라는 듯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3살 어린 동생의 결연한 눈이 반짝였다.

"나는 항상 기다렸어. 언니가 결심하기를."

그리고 동생은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여기까지가 우리 자매가 서울 아파트 매매를 결심하게 된 계기다.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좁디좁은 전월세방을 전전하면서, 암묵적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단순히 미혼, 비혼, 기혼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2030대 청춘은 보편적으로 이런 자포자기의 심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들의 독립생활을 둘러봐도 비슷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도, 결국 본가가 서울이나 경기도에 있는 게 아니라면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장한평 10평 오피스텔, 서초동 7평 구옥 빌라, 양재동 8평 신축빌라, 가락동 12평 빌라... 월세 20-30만 원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삶의 질 측면에서는 별반 차이 없었다. 아무리 방이 크고 넓어도, 월세가 높아도, 결국 방 두 개를 점유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다행인 집. 방 두 개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좁은 평수라도 꾸역꾸역 벽을 쳐 욱여넣은 집. 우리 집이 딱 그랬다. 9평 투룸 빌라인데, 좁은 집에 억지로 방 두 개를 만들어뒀다. 그래서 작은방에는 침대 하나 넣기 힘든 1평 겨우 웃도는 크기가 됐다.


물론 예외는 있다. 광교 15평 아파텔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탁 트인 뻥 뷰를 보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했다. 곧장 거실 큰 창을 열었더니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야! 너 성공했네!"

집주인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우리 중 '무례한 질문을 결코 기분 나쁘지 않고 웃기게 잘 하는'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이런 집은 얼마나 해?"

붙박이장이며 시스템에어컨이 빌트인으로 들어가 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친구가 대신 질문해 줘서 좋았다. 광교 아파텔은 보증금 5000에 월세 110이었던가(2021년기준). 벌이도 좋고 워낙 유복한 친구여서 그 정도는 전혀 부담되는 것 같진 않았다. 또, 광교라는 입지도 한몫했다. 서울이었다면 보증금이 두 배로 뛰었을 거라 예상한다. 뭐, 광교나 서울이나 비슷하다. 내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집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니까. 난 그냥 평범한 월급쟁이인데, 월세 110만 원이 가당키나 한가. 그 이후부터, 광교 아파텔과 비슷한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은 언감생심, 감히 꿈도 꾸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포기하고 있었던 틈을 타 동생은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동생이 아등바등 악착같이 살진 않았다. 그러나 될 대로 되란 식으로 살던 나와 달리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서러운 남의 집 살이를 언젠간 끝내리라. 당당히 서울 부동산에 등기 쳐, 내 이름 석 자 아로새기리라. 묵묵히 언니가 정신 차릴 날을 기다리며 와신상담의 노력을 기울여왔던 나의 동생. 그녀에게 존경을 넘어 경외심이 들었다.


결정은 했으니, 이후부터는 쉬웠다. 부랴부랴 가진 돈을 합쳐 계산해 부동산 매매 예산을 짰다. 동생은 나보다 많은 돈을 저축해오고 있었다. 야무진 동생이 너무 사랑스러워 뽀뽀라도 하고 싶었다. (물론 거절당했다.) 어쨌거나, 동생과 나의 저축액에서 얼추 조금만 더 모으면 부동산에서 '시드'라고 불릴 돈이 됐다. 그날부터 집 근처 아파트와, 역세권 아파트를 찾아 지도 앱에 별 표시를 해뒀다. 그리고 부동산 '공부'도 시작했다. 실거주 한 채는 있어야 한다지만, 기왕 내 모든 목돈을 깔고 앉을 거라면 조금이나마 투자 가치가 있는 물건을 사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약 2년 동안 별 표시를 해둔 관심 단지들의 가격을 틈틈이 추적했다. 실제로 내가 맨 처음 매수를 고려했던 1997년 준공 3동짜리 나 홀로 아파트는, 25년 5월이 된 지금까지 잘 팔리지 않았다. 인기가 없으니 가격을 올려 부르기는커녕, 호가는 오히려 몇 천만 원 더 떨어졌다. 이거구나. '잘 팔릴 물건, 오를 만한 물건'을 사야 한다는 이유가. 그렇게 K-부동산 시장에서 배우는 교훈도 많이 생겼다.


삼성 다니는 지인은 몇 년 전 동탄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3억 대에 매수하였는데 벌써 4억이 올랐다나. 또 다른 지인은 일산 아파트 매수하려고 200만 원 프리미엄을 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아파트가 더 오를 거 같았단다. 그렇게 200만 원을 포기하고 매수한 아파트는 4억에서, 대세상승장을 진 9억이 되었다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회사 선배들만해도 그렇다. 4-5억에 매수한 아파트가 이제는 10-12억을 웃돈다. 이런 성공신화에서 배울 점은 하나다. '오를 물건을 사야한다.'


앞으로 부동산 대세 상승장이 오기엔 깜깜하고, 내가 가진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아파트는 그렇게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도 안다. 그렇지만 기왕 매수할 생각이 들었다면, 여러 조건을 따지고 잘 골라야 하지 않겠나. 은행 예금도 금리 따져 가입하고, 주식도 오를 주식에 투자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래서 열심히 부동산 콘텐츠로 공부하고, 발품 팔아 임 장했다. 이제 아파트 매수는 했으니 시간을 갖고 기다리려 한다. 그동안 부동산을 비롯한 다양한 자산에 대해 더욱 깊이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자산을 불려 나가려 한다.

(나의 공부 방법은 추후 상세히(?) 서술하도록 하겠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1년 정도 되니 어디 가서 부동산 아는척할 수준이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건 내 집이 어디 있느냐였다. 나와 동생이 가진 돈을 전부 털어, 대출을 일으켜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만들 아파트는 어디인가. 이제 나는 결심만 하면 됐다. 이 모든 게 친구의 신혼집 이야기를 듣고 2년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빠르면 2025년, 늦어도 2026년에 아파트를 매수하리라 마음먹으니, 돈도 악착같이 아끼게 됐다. 부동산 공부와 주식 투자도 즐겁고 재밌었다. 아직 내 집 마련도 못했는데. 아파트 근처에도 못 갔는데 이미 가진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고 흐뭇한 나날이 많아졌다.


종종 비혼 친구들이 집을 사고 난 후의 기분과 심정에 대해 묻는다. 말로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돈을 좋아했고, 그다지 사치하지 않으며 되는대로 돈을 모았다. 그 모든 절약과 인내는, 결국 집을 위한 일이었다. 우리 자매는 서울 아파트를 샀다. 이제 더는 서울에서 이방인이라는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전세집 계약 만기가 다가올수록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 안정감은, 우리 자매와 같은 길을 가는 다른 여성들도 느껴보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써내려 나간다.


서울 아파트 내 집 마련기에 관해 글을 쓰기로 결정하니 곤란했다. 뭐부터 써야 할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친구가 아파트 얘기를 꺼내기 전부터 나는 이런 날이 오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야기는 시작된 지 오래였는데, 나만 몰랐다. 친구의 신혼집 매수 일화를 들을 때는 내가 2년만에 서울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 글도 어느 사소한 날에 누군가에게 닿아, 잊고 있었던 보금자리 마련의 꿈에 불씨를 지피기를.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날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pilogue


? : 30살이 3억? ㅋㅋㅋ 어머니꺼 물려받았나

ㄴ 부러우면 말을 하자 ㅋㅋㅋㅋㅋㅋ

? : 사실 넘 부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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