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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믿음, 소망, 부동산 사랑

by 고은집

[동생이 씀]


oo 아파트, 매매가 xx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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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억 앞에 두 자릿수 숫자가 붙는 거지?

xx 억을 모으려면 내가 얼마나 일을 해야 하지?

얼마나 저금해야 하는 거지?


아는 재테크라고는 예적금뿐인 대학생 시절, 나는 한 아파트의 가격을 검색하고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20살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몇 번의 과외를 했다. 과외를 하는 집은 어떨 때는 계단식 아파트, 복도식 아파트, 빌라일 때도 있었다. 다녔던 과외 장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바깥으로 흐르는 강이 보이는 소위 '한강뷰' 아파트였다. 아파트 자체는 구축 아파트였지만, (추후 들은 사실로는) 리모델링과 확장을 마친 그 아파트는 내가 태어나 가본 곳 중 가장 좋은 장소였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과외를 지속하며 그 집의 면면을 보게 되었다. 확장된 거실은 넓고 깨끗하고, 채광이 좋았으며 고개를 돌리면 노을 지는 하늘과 한강이 보였다. 매끈한 아일랜드 식탁에서 가끔 식사를 함께하기도 했다. 화장실은 2개였는데, 모두 소름끼칠정도로 깨끗했다. 그중, 큰 화장실에는 욕조가 있었다. 서울에선 꿈이 되어버린 욕조. 욕조 선반에는 프랑스 유명 브랜드의 입욕제가 있었다. 원룸 자취생에게 수입 입욕제라니... 여행 갔을 때 숙소에서나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때는 부동산에 무지하여 알지 못했지만, 그 아파트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서울 아파트다. 대단히 대단한 역세권 대단지 아파트. 잘 닦인 길,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한 가로수. 있을 건 다 있는 주변 상권. 다소 늦은 시간에도 편안한 행색으로 돌아다니는 주민들과 가로등 조명이 합쳐 자아내는 안전한 느낌.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그 집을 빠져나와 오른 귀갓길에서, 정확히 형용할 수 없는 울렁거림에 사로잡히곤 했다. 지금에야 그건 부러움이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이미 가진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 유명한 밈처럼, '사실 넘 부러웠어요' 하고 넘어가면 좋았겠지만, 당시의 나는 평범하고 어린 20대 초년생이었다. 내 일상이 더 초라해지지 않도록, 그 감정을 모르는 체하면서 하루하루를 헤쳐나갈 뿐이었다.


다시 이야기의 서두로 돌아와, 어느 날엔가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런 아파트는 얼마나 할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초록 창에 검색하고 마주한 xx억 이라는 가격을 보고 실소가 터졌다. 역시 내가 닿지 못할 가격이로군. 하고 말이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나는 정신 승리를 잘한다는 점이다. 한강뷰는 원래 서울에서도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않나. 그렇다면 다른 집 가격은 얼마나 되는데? 하고 주변의 가격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은 용감하고, 무지는 무섭다. 나는 당시 집에 대한 선호도, 지식도 없어서 빌라와 아파트, 오피스텔 등등을 지도에 보이는 대로 툭툭 눌러보았다. 당연히 모든 집이 그 아파트만큼 비싸진 않았다. 신축이 아닌 경우, 위치와 평수에 따라 3~4억 대의 매물도 많아 보였다. 언제 취업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가진 돈과, 나의 미래 기대 소득 등 이것저것 따져봤을 때, 이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 풀칠하며, 학교나 겨우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때문에 그 생각이 원대한 미래 계획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나, 그 경험은 나에게 어렴풋한 마음의 보루가 되었다.


'몇억 모으면, 썩 좋지는 않더라도 내가 누울 집 한채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서울에 내 집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때문일까. 삭막한 서울에서 내가 있을 장소 하나가 없다고 느껴질 때, 몸이나 마음이 너절해져 이불 안에서 누워있으면,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어딘가에서 내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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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7년 뒤. 나는 언니와 함께 집을 샀다.


집을 샀다는 소식을 알게 된 친구, 지인 대부분 축하를 전했다. 내 주변인 중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자가를 소유한 경우가 없어서인지, 놀라운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선뜻 구매하기엔, 서울의 집값이 지독하긴 하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좋겠다… 나는 집 살 수 있을까…못 사겠지…“


말줄임표가 눈에 보이는 듯한, 힘 없고 자신 없는 말투. 상대방이 대학교 때부터 팍팍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면 더 그랬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서울 토박이가 아닌 경우, 대부분은 학교 기숙사 또는 원룸에서 시작해, 취업 이후 투룸 또는 더 잘 빠진 오피스텔으로 집을 넓혀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서울에서 내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얼마나 큰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지 다년간의 경험으로 지갑과 통장이 아프도록 배웠다.


요즈음 나는 친구의 자신감을 내가 뺏어온 것처럼 당당하게 말한다.


“아니, 살 수 있지.“


이렇게 자신하는 까닭은, 친구들이 미래 계획에서 ‘내 집’이라는 목표를 지레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집을 가져본바 느낀 큰 감정 중 하나는, 삶의 큰 완충재가 생긴 감각이다. 어떻게 해도 이 할당된 빚만 갚으면 내 집이라고 느껴지는 공간. 내가 크게 아프지 않으면, 지금 수준의 소득만 어떻게든 유지한다면 무조건 내 것이라 느껴지는 공간. 2년 주기로 옮겨다니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내 집. 이 안정감은 상상 이상이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 그런 안정감을 느끼면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살에는 얼마는 있어야지, 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데, 태어난 날짜에 따라 재산 기준을 만드는 게 얼토당토않다. 모든 사람은 급여 수준, 건강, 가정 형편 등 각자 사정이 다르다. 취업한 시기, 예상 연봉 상승률, 대출 금액과 대출 금리 마저도 제각각이다. 나는 실제로, 26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비교적 돈을 빨리 모은 편이다. 노동소득으로 이루어진 그 돈에 내 눈물과 땀이 서려 있긴 하지만, 이게 전부 내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에 운은 정말이지 큰 영향을 미치니까.



그러나, 인생에 운이 작용하는 것과, 앞으로도 집이 없을 거라 포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집은 어딘가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부(不)동산이라는 이름답게, 집은 나에게로 거저 오지 않는다. 내가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사실, 평생 집을 갖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친구들마저도, '언젠가는 집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사고 싶다.' 라는 꿈을 품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러면 '언젠가'라는 추상적인 말 대신, 지금부터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어떤 곳에 살고 있는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과 포기할 수 있는 건 뭔지 알고 정리해 보면 좋겠다.


7년 전, 대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쥐뿔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지금 돈이 없는 처지일지라도, 내 집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운명의 집이 있다고. 형태도 연식도 모르지만, 내 집이 날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나의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청년들이 집을 소유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말하고 싶다. 당신의 집이 어딘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 번외.

어느 날엔가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언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서울에 집 살 수 있을까?"

"(조건이 별로인 집이라면)살 수 있어. 집 살래?"


내가 그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는지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무지하면 용감하다.

언니는 어느 정도 속은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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