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씀>
평균 나이 29.5세 비혼 자매, 서울 아파트를 샀다.
(물론 만 나이이며, 평균의 함정을 이용해 이 악물고 20대라 표현하였다. 글 작성자는 자매 중 언니임을 밝힌다.)
만 나이 31세, 28세. 3살 터울 자매는 서울 전월세방을 전전하며 10년을 함께 살았다. 언제나 더 넓은 집, 깨끗하고 넓은 집을 욕망했으나 내 집 마련은 요원했다. 당연했다. 넓은 빌라나 소형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기만을 꿈꿨지, 정작 우리 명의 아파트를 매수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비슷했다. 30대에 접어들며 결혼하는 지인들이 심심찮게 생겼지만, 그들 역시 대부분 자가 매수보다는 전세 입주를 선택했다. 사실 결혼식에 초대받아 어영부영 식장을 찾고 축의는 하였으나 그리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었던지라, 설령 기혼 지인들이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고 한 들 알 턱이 없었다. 결혼식 이후 연락 끊기는 것이 다반사였기에.
그러나 2023년 9월, 친한 고향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신축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입주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국민 평수, 일명 국평 102㎡(31평형) 신축 아파트였다. 지방이긴 했지만, 유명 시공사의 브랜드 아파트인데다 대단지 물건이어서 분양가는 거의 6억 원에 육박했다. 축하하는 마음이 들었던 한편, 친구와 헤어져 9평 빌라로 돌아오는 내내 심란했다. 덜컹거리는 만원 지하철이어서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난 언제 서울에 내 소유 주택을 갖게 될까'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진 날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친구 역시 6억짜리 아파트를 대출 없이 매수하진 못했고, 상당한 금액을 신혼부부 대출을 통해 해결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희망을 품었다.
'친구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 6억 원이라는 거금은, 먹고 죽으려 한 대도 마련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대출이 있다면, 해볼 만한 게임 아닌가? 살아온 환경도, 벌이도 비슷한 동갑내기 친구가 했다면 나라고 못할 게 뭔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데스크톱을 켜고, 호기롭게 네이버 부동산에 접속했다. 마우스를 몇 번 딸깍거리지도 않았는데 금세 한숨이 나왔다. 애초에 서울에는 6억 이하로 구매할 수 있는 아파트는 많지 않았다. 또한 건축물로써 물건이 가진 객관적 가치도 달랐다.
친구가 입주한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는 평지에 위치했고, 초등학교를 안고 있는 일명 '초품아' 아파트였다. 또한 신축이어서 집안 내부는 그 어떤 세월의 흔적도, 때도 묻지 않은 올 화이트로 빛이 났다. 곧 31평이라는 너른 집에서 생활할 친구가 미친 듯이 부러워졌다. 그렇다면 당시 서울은 어땠을까? 서울에서 6억 이하의 아파트는 지어진 지 25년~30년 된 300세대 이하의 나 홀로 아파트, 도보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는 비역세권 아파트, 강남, 여의도 등 주요 업무지구와 터무니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아파트, 겨울에 눈이라도 온다면 굴러떨어질 것 같은 극악 경사를 자랑하는 언덕 위 아파트들뿐….
6억이라는 예산으로는 친구네 집과 비슷한 아파트를 찾기란 어림없었다. 지방에 위치하고, 청약시기도 건축비가 천정부지로 상승하기 전이기에 6억이라는 분양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요즘에는 지방 아파트라도 6억 대 신축 분양 물건이 거의 없다. 실제로, 세대수와 공급 조건이 비슷한 서울 회기동의 신축 아파트 '이문 아이파크자이'는 23년 분양가부터 11억~12억이었다. 6억도 없는데 10억이 넘어가는 아파트가 있다고 한들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가슴이 꽉 막혔다. 막막한 심정이 되어 마음에 동생에게 하소연했다.
"우리…. 서울에 집 살 수 있을까?"
조용히 지켜보던 동생이 다가와 예상외의 답변을 했다.
"살 수 있어. 우리, 집 살래?"
"너 돈 있어?"
"얼마 없지만, 그래도 모아놨어. 우리 둘이 합친다면 허름한 집 정도는 살 수 있을 거야."
그 순간, 세 살 어린 동생이 구세주처럼 보였다. 그토록 결연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라니! 당장이라도 '네, 언니!'라는 소리가 나올 뻔했다. 동생이 태어난 뒤로 28년 동안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늘 아기 같았던 동생이, 그렇게 의젓해 보이다니. 지금이라면 동생이 하자는 대로, 인생을 맡겨도 좋을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모아온 현금을 공유하고 합친 자산을 가늠해 보았다. 얼추 1-2년만 모으면 서울 아파트를 매수할 만한 '씨드'가 완성될 것 같았다. 전세 계약이 끝나기 2년 모자라게 남은 때였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고 우리는 서울에 아파트를 매수했다. 자금의 출처는 근로 소득이다. 각자 4-5년 정도를 일했고, 평소 특별히 사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월급과 성과급을 착실히 모았다. 급여가 높은 편이냐고? 아니다.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남들보다 우월하게 벌이가 좋지도 못하다. 부모님의 지원도 단 한 푼 받지 않았다. (받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하다.^^) 코인, 주식으로 투자를 했냐고? 물론 도전했다. 언니의 경우 천만 원 정도를 번 적도 있다. 근데 2천만 원을 잃어 오히려 씨드를 깎아 먹었다.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급여였다. 성실 근면한 직장 생활이 우리 생애 최초 주택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연히 대출도 상당 금액을 받았지만 소위 말하는 '영끌'은 하지 않았다. 소득 대비 상환이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대출을 일으켰다. 물론 우리가 자매가 아닌 신혼부부였다면 정부 대출을 통하여 금리 우대를 받거나, 대출액을 늘리는 등 주택 기금 마련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공동 대출을 받으려면 '제3자 대출'로 분류되어 정부 정책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실제로 부부나 부모 자녀 관계는 공동 대출이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자매(형제자매)는 일반적으로 공동 대출이 어렵다.
주택 매수를 결정하고 나니 원하는 아파트가 있어도,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대출 없이 서울 아파트는 꿈도 꾸지 못할 지경이라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 보냈다. 이런 고민을 남성 지인들에게 털어놓으면 하나같이 이런 대답을 하더라.
"그럼 결혼해!"
"결혼하면 되겠네."
솔직히 지인들의 조언을 들을 때마다 힘이 빠졌다. 그렇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울 일이 있나? 신혼부부 혜택을 받자고 결혼할 필요는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든지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형편에 맞는 대출을 찾았다. 한 사람 명의로 대출을 최대한 받고, 둘이 함께 갚아 나가면 된다. 공동대출이 어렵지, 공동명의로 주택을 매수하는 것은 '제3자 대출'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이후 과정은 수월했다. 우리는 집을 샀다. 그것도 서울 아파트를! 솔직히, 우리 역시 한국 부동산 매수에 확신이 없었다. 우리가 모아온 돈 전부를 들이붓고, 30-40년의 기간 동안 몇백만 원의 이자를 갚아나간다니! 그 큰돈을 깔고 앉아도 되는 걸까? 한국 부동산이 그만한 투자 가치가 있을까?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다. 아파트 가계약금을 넣는 순간까지도 그랬다.
그렇지만 이제는 확신이 있다. 우리가 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자신. 1인 가구라면, 특히 비혼 여성이라면, 혼자만 건사하면 되니 전월세로 살아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실거주 한 채는 있어야 한다. 주택을 구입하고 나니 확실히 알겠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겼다는 안정감은 그 어떤 성취와도 비교할 수없이 짜릿했다. 이 감정을 모든 무주택 비혼 여성이 느껴보면 좋겠다.
사실 지구 어느 나라를 보아도 20대 후반~30대 초반이 주택을 구매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 부모님 세대도 빠르면 30대 후반부터 40대에 자가를 마련한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비혼 여성이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시기에 주택을 마련해야 한다고 여긴다. 40대가 넘어가면 고용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출을 일으킨다고 해도 빚을 갚을 수 있는 날이 현실적으로 짧다. 다른 투자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대출을 거의 받지 않고 현금으로 주택을 매수할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지긴 하겠다. 그러나 우리 자매의 경우 투자를 통해 아파트 가격 상승분은 물론이고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는 수익률을 내기도 버거웠다. 한 살이라도 주택을 빨리 구매해, 가장 활발히 안정적인 소득을 벌 수 있는 시기에 한 달이라도 빨리 빚을 갚는 게 옳다고 판단한 이유다.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너희는 자매니까 두 명의 자산을 합쳤잖아!'
맞다. 우리는 둘이다. 부부로 치면 딩크(Double Income, No Kids)다. 두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는데, 아이는 없다. 부부가 아니기에 부모도 한 팀이다. 거의 신혼부부와 유사하기에 혼자 서울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누군가에게는 기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는 3년 좀 넘는 백수 시절을 보냈다. 나름대로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해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낙방을 알리는 연락이었다. 연이은 고배를 마시며 우울감과 무력함에 하루하루 하릴없이 날려 보냈다. 먹고 자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이 많았다. 파트타임 일자리도 구하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새로운 일을 하기 싫었다. 도전하기 싫었다. 또 탈락할까 봐, 아무런 준비 없는 상태로 나를 거절하는 누군가를 만날까 봐 두려웠다.
만약, 그 당시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 지금이라도 한 푼 두 푼 모으면, 5년 안에 서울에 자가를 마련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좁은 자취방에서 누워 눈물만 흘렸던 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봤다면?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꾸기라도 해보았다면? 취업 준비 기간을 그렇게 우울하고 무력하게 보내진 않았을 것 같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더욱 고군분투했을 게 분명하다.
생각해 보면, 항상 롤 모델은 있었다. 김하나/황선우 작가님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나, 최근 출간된 김은하 작가님의 <여자 셋이 모이면 집이 커진다>가 그렇다. 두 책의 공통점은 한국 보편적인 가족 형태를 깨고, 결혼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동거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나와 동생이 꿈꾸는 가족의 모습과도 유사했다.
단, 우리는 자매이기 때문에 이미 형성된 유대가 있었다. 서로를 신뢰하기에 수월하게 자산을 합칠 수 있었고, 공동 투자와 실거주 동거를 동시에 해결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1인 비혼 여성 가구에게 이상적인 주거 형태가 될 수 없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혈연 중심의 비혼 여성 공동체의 한 예로, 우리와 비슷한 비혼 자매에게 본보기가 된다면 그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짠내 나는 내 집 마련기를 써 내려갈 예정이다. 부동산 매수와 대출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저축, 투자와 같은 재테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돈 없이도 품위 있고 힙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우리만의 방법도 소개할 계획이다. 소문난 구두쇠인 두 자매의 '짠순이 큐레이션'이라고 할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 주신 독자라면, 내 집 마련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분이 틀림없다. 우리는 2030 여성들이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안전하고 깨끗한 집에 살고, 신선하고 든든한 끼니를 챙기며, 건강한 마음으로 평범한 일상도 꿋꿋이 행복한 순간으로 채웠으면 좋겠다. 우리 자매의 자린고비 노하우가 독자님의 내 집 마련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동생과 한 평생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