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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800으로 1억 모으기

절약은 밥값과의 싸움

by 고은집

<언니가 씀>

직장 생활 3년 6개월 만에 금융 자산 1억을 만들었다. 현금과 주식, 주택청약이 혼재된 '영끌' 금액이었지만, 1억은 1억이었다. 모바일 뱅킹에서 100,000,000이라는 숫자를 확인했던 날의 기쁨이 생생하다. 내가 고소득자였다면 1억 달성 순간의 감격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즉, 나는 고소득자가 아니다. 처음 회사원이 된 날부터 지금까지, 나의 급여 수준은 '고소득자' 발치에도 못 미친다. 현재도 또래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급여를 받는 월급쟁이다.



'평범한 월급쟁이인 내가, 1억을 모은 특별한 비결?'



그런 거 없다. 일단 돈을 벌고, 안 쓰고, 덮어두고 모았다. 그 과정은 미친 듯이 지겹다는 점 외에 특별할 것이 없다. 어차피, 연봉과 자취유무, 개인의 환경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기준을 찾으려고 한대도 의미 없다고 본다. 소름끼치는 꿀팁도 아니고, 자랑할 만큼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연봉 2800만 원에서부터 시작해 1억을 모은 일대기를 따라오실 분은 아래를 주목해 주세요.



절약은 밥값과의 싸움


첫 직장은 IT 중소기업이었다. 나에게 식대/통근비 포함 세전 2800만 원의 급여를 주기로 약속한, 애증의 첫 회사. 당연히 성과급, 상여금 없음. 이마저도 3개월 수습 기간에는 30%를 제외한 급여를 받았다. 첫달 급여는 약 월 166만 원이었다. 수습 기간이 끝난 4개월차부터 월 214만 원 남짓한 금액이 매달 통장에 들어왔다.


연 3% 복리 기준, 월 약 267만 원을 3년 동안 적금하면 1억 원이 된다. 그러면 생활비 제외 월 267만 원을 급여로 벌어야 한다는 말인데, 당시 나는 월 267만 원 저축은커녕 벌지도 못했다. 세전 2800만 원을 5년을 벌어 고대로 저축해도 1억이 될까 말까 하지 않나. 연봉 2800만 원으로 1억을 모으기.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너무도 까마득했다. 물리적으로말이다.


중소기업 시절, 나의 재테크를 좌절시킨 가장 큰 복병은 비싼 점심값이었다. 사무실이 성수동에 있었는데, 당시에도 핫플 성수동의 열기가 대단했다. 점심에 밥 한 끼 먹을라치면 30분씩 웨이팅 하기 일쑤여서, 사실 밥값은 나중 문제였다. 점심시간 내 식사를 마치고 나올 수 있다면 감지덕지였으니까. 거기다 또래 직원들은 왜 이렇게 핫플 식당을 좋아하는지. 동료들은 날씨가 안 좋으니까, 기분이 우울하니까, 별의별 핑계로 매일 새로운 가게를 찾아다녔다.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벌이는 피차 비슷할 텐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점심시간에 몇 만 원을 턱턱 쓰는지. 다들 대단히 유복한 집안의 자제들인가? 아니면 욜로족(YOLO)인가? 생각하면서도 묵묵히 동료들이 하자는 대로, 가자는 곳을 따라갔다. 성수동의 '힙한 핫플'을 알아가면 갈수록, 나날이 통잔잔고는 줄었다. 잔액이 0에 수렴하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일을 해도 자산이 불어나지 않았다. 온통 밥값으로 빠져버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이런 걸까.



동료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 나만 빠질 수 없어서. 월 214만 원을 벌지만 한 끼 밥과 커피값으로 2만 원은 쓸 수 있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매일 11,000원~12,000원 선에서 '가성비 좋은' 밥집을 찾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게 신입사원의 미덕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노력한대도 결국 먹게 되는 것은 설탕과 밀가루 범벅된 음식이었다. 사진은 참 잘 나왔다. 예쁘게 세팅된 음식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면 친구들이 반응해주었다. 점심시간에 성수동 핫플을 탐방할 수 있어 부럽다는 둥, 역시 IT 회사라 트렌디하게 보낸다는 둥의 부러움 섞인 말을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수중에 돈이 없는데.



결국, 나는 밥값과의 전쟁에서 졌다. 동료들과 함께 점심 식사하기를 포기하고 냉동 닭 가슴살을 왕창 주문했다. 매 끼니 닭 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아보카도, 삶은 달걀, 호밀빵 몇 쪽과 함께 먹으며 끼니를 챙겼다. 가끔 상무님이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식사하는 나를 보며 한 말씀하셨다. 달걀노른자를 그렇게 많이 먹으면 고지혈증이 온다거나, 다른 사원들은 밖에 나가 어울려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산책을 하는데 너는 사무실에 혼자 있냐는 걱정이었다. 신입사원이 혼자 사무실에 틀어박혀 밥을 먹으니, 회사에 적응을 못한 게 분명하다 생각했나 보다. 감사했지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어서 바깥에서 점심을 못 사 먹어요.'


라는 말을 하면 피차 기분만 상할테니까.


이후, 삼성 그룹사 프로젝트에 파견을 나갔다. 서울에서 용인으로 출근하기 위해 매일 5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육체적인 힘듦보다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삼성 구내식당의 존재였다. 삼성 그룹사 소속이라면 간단히 사원증을 태그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 협력사를 비롯한 외부인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종이 식권을 매번 구매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한 끼 가격이 8천 원이었다. 바깥 음식에 비하면 합리적인 가격이긴 했다. 또 삼성 구내식당은 밥이 맛있기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런데 뭐가 문제 였냐면, 별 거 없었다. 그냥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직원 복지로 제공되는 밥을 먹는 것과, 8천 원을 내고 구내식당 식권을 억지로 구매해야 하는 처지가 다르지 않나. 회사 구내식당 밥이 특별하대도 별 거 없기도 하고. 돈 벌러 이 멀리까지 와서, 돈을 써가며 남의 회사 식당 밥을 사 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옥이 도심부와 떨어져 있어, 구내식당이 아니라면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성수동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니. 결국, 다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매일 점심 사옥 구석의 벤치에 앉아 밥을 먹는 내게, 삼성 관리자도 회사 상무님과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먹어서 배가 차겠냐, 차가운 음식으로 대충 때우는 것보다는 구내식당에서 먹는 게 낫지 않겠냐는 걱정. 왜 이렇게 다들 남의 밥에 신경을 쓰실까. 나라고 맛있고 따뜻한 밥이 먹기 싫어서 여름철에 얼음팩까지 바리바리 챙겨 도시락을 싸 오는 게 아니지 않을까. 굳이 "돈 아끼려고요. 돈이 없어서."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닐 텐데. 윗분들은 안 그래도 고단한 점심시간마다 불필요한 피로를 주었다. 지나고 나니 어느 신입사원이 부실한 밥을 먹는 것에 대한 관심과 걱정의 말씀이었던 것 같다. 그치만 여전히 슬프기도 하다. 변변찮게 밥벌이하는 청년의 삶에 관심 없는 말들이어서.


어쨌든, 당시에도 좋은 마음으로 한 마디씩 건네는 분들에게 치사하고 쪼들리는 나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가장 간편한 핑계는 다이어트였다.


"다이어트 식단이에요. 배부른 상태로 사무실에 앉으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거든요."

라는 말에 다들 혀를 찼지만 곧바로 수긍했다. 그 말은 나 자신도 속였다. 고도로 발달한 구두쇠는 다이어터와 다를 바 없다고. 나는 닭 가슴살과 아보카도, 달걀로 건강과 잔고를 동시에 지키고 있는 거라고. 그러다 더는 차가운 닭가슴살 쪼가리 먹으며 일할 수 없겠다 싶었을 때, 퇴직했다. 밥 한끼가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란 실로 지대했다. 고작 밥 한 끼가 그렇게 큰 힘을 가졌다는게 어이없지만 어쩌겠나. 맛있는 음식을 동력으로 하루를 살고, 꿈과 희망이라는 목표 삼아 살아가는게 나인데.



달리 이직처도 없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해도 내가 싸온 이 조악한 도시락보다는 나은 끼니를 먹고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당시 인터넷에 '연봉 2800'을 자주 검색했다. 비슷한 연봉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올려 놓은 수 많은 게시글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다. 글을 눌러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글쓴이를 위로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었다. 적게는 1년, 많게는 3년 기간을 두고 이직해 '몸값'을 올렸다는 이야기였다. 나라고 못할 게 있나 싶었다.



이제부터 목표는 대기업이었다.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지만, 목표는 거창했다. 구내식당이 있는 대감집에 가겠다. 대감집에 가서 점심 값이라도 아끼자는 마음으로 각오를 다졌다. 이를 악물고 자격증 공부를 했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했다. 3개월 동안 재취업을 준비한 결과, 마침내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계약 연봉이 4200만원이었다. 이전 연봉 2800만원에서 무려 50%나 올린 금액이다. 연봉을 올리니 돈 모으기도 급물살을 탔다. 그동안은 저축을 하고 싶어도 뭘 할게 있었겠나. 저축액이 커지는 만큼 저축의 기쁨을 느꼈다. 숨통이 트였다. 거기에다, 회사 구내식당까지 누릴 수 있게 된 점은 크나큰 덤이었다.


내 돈 한푼 안 들이고 따뜻한 밥 한끼를 매일 먹을 수 있다니! 식당에서 노란색 플라스틱 식판에 따뜻한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를 받아 첫 술을 뜨던 날이 생생하다. 달큰하고 따뜻한 흰 쌀밥과 은은한 된장향기가 나는 시래기국! 어딘가 싱겁고 밍밍한 맛마저 나에게는 달큰했다. 그렇게 반가웠던 구내식당 밥도 1년 넘게 먹다 보니 그맛이 그맛처럼 느껴졌다. 된장을 풀다 만 건가 싶을 정도로 옅은 시래기국에서 어떠한 구수함도 느끼지 못했을 무렵, 나는 또 한 번 이직했다. 배곯음을 원동력으로 한 사생결단. 첫 이직을 통해 깨우친 가르침으로 다시 한번 이직에 성공한 거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돈 때문에 가장 굴욕적이고 자기혐오에 빠졌던 기간이 첫 직장생활이었던 것 같다. 변변찮은 끼니는 사람을 참 쉽게 서럽게 만든다. 밥벌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먹고 사는 일이잖나. 뿐만아니라 나는 먹고 살기에 온 관심과 에너지를 쏟는 개인이기에 더욱 민감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괴로웠지만, 밥값을 아껴 저축해둔 덕분에 짧은 구직생활에서 나의 존엄을 지킬 수 있었고, 장기적으로는 1억 모으기라는 장거리 레이스에 보탤 수 있었따.



세 번째 직장에 정착했지만, 요즘 점심시간도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현 직장은 일 4천 원, 한달에 8만 원을 식대로 지급한다. 올해 초 구내식당 가격이 올랐다. 그런데 식대는 오르지 않았다. 한 끼 4천 원이면 해결 가능하던 식권 한 장 가격이 이제는 6천 원이다. 50% 인상률에 머리로는 충격을 받았지만 워낙 물가가 높다 보니 마음으로는 이해했다. 실제로, 식권 가격이 오르고 나서도 구내식당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종종 방문해 점심을 먹었다. 식사 퀄리티는 그리 향상되지 않았다. 당연하다. 가격이 50% 올랐다 해도 고작 2천 원이 오른 금액이니까. 언론에서는 매일 같이 밥상 물가가 미친 폭등을 했다고 떠드는데, 나아지면 얼마나 나아질 수 있겠나. 그러나 50% 인상이라는 심리적 저항 때문인지 더 이상 구내식당을 찾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도시락을 챙겨 다닌다. 이제 중소기업 신입사원 시절 만큼 배고프고 서럽진 않다. 내가 좋아하는 부동산 유튜버 '송희구' 작가님은, 한창 절약하던 시절 바나나를 가져가 점심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처음엔 배가 고픈데 먹다 보면 익숙해진다며, 수백억 자산가가 된 지금도 여전히 검소하게 끼니를 해결한다고 한다. 여기에 영감을 받아서 집에 있는 온갖 음식을 회사에 퍼나르기 시작했다. 구운 달걀, 컵라면, 닭 가슴살, 냉동 피자... 식사 대용으로 삼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점심으로 해치운다.


습관적으로 편의점에 가서 간식이나 레토르트를 구매하지 않는 편이지만, 편의점 기프티콘이 생기면 라면을 구매해 사물함에 넣어둔다. 종종 라면을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싸게 한 끼를 해결하면서도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내 분위기도 중요함을 느낀다. 회사 급여 계약상 식대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다니는 동료 직원들이 많다. 그들이 식비를 아끼려고 도시락 생활을 하는지, 건강을 위한 식단 관리 목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게는 위안이 된다. 나만 유별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거면 됐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남는 점심시간에는 휴식을 취한다. 이렇게 아낀 식비로는 주식을 구매하기도 하고, 옷을 한 벌 사거나, 맛있는 저녁식사에 보탠다. 가계부를 쓰며 월 지출을 계산해보면, 점심에 도시락을 먹음으로써 아끼는 금액이 상당하다. 확실히, 절약은 식비와의 싸움이다.



돈 모으기란 내게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체중 감량을 위해 식단 조절하고 운동하기란 고통스럽지만, 그 방법 외 뾰족한 수가 없다. 어차피 지름길이나 꼼수를 부리지 못한다면 정도(正道)로 가야한다. 돈을 모으려는 목표가 있으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래도 버틸만하다. 지금도 그렇다. 옷과 술을 좋아해 입고 싶은 옷과 마시고 싶은 술은 꼭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대신 근로시간 중에 먹는 점심식사에는 크게 미련이 없어 '대충 때운다'. 돈도 아끼고 살도 빼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먹을 것을 아끼고 아껴, 마침내 통장에 찍힌 1억을 보고야 말았다. 100,000,000원이라는 숫자를 보았을 때 나는 활짝 웃었다.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여기서 얼마를 더 모은 다음 서울 아파트를 구매했다. 모아둔 돈은 주택에 다 써버렸다. 이제 저축은커녕 비상금만 겨우 챙긴 실정이지만, 또다시 1억 모으기에 도전할 것이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지 않을까.


절약에 몰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이 단순하게 정돈된다. 돈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 따지는 습관이 생겨 진심으로 마음이 동했을 때만 물건을 구매하고, 경험하려는 자세가 된다. 요즘도 점심값을 아끼려고 거의 매일 냉장고를 털고 앱테크 리워드로 받은 간식을 끼니로 대신한다. 식비 뿐만 아니라 교통비가 아까워 1-2시간 정도 거리는 걸어 다닌다.


사실 이렇게 돈돈 거리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진 적도 있고,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하나 싶었던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느리게 맺는 결실의 달콤함을 안다. 목표를 향해 악착같이 살았던 내가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나는 믿는다. 재쓰비의 노래 가사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내가 무심코 경시했던 순간들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란 사실을.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어

지나간 모든 순간들

이루지 못한 그 모든 꿈을

또 한 번 모아서

안되면 그냥 웃어버리고

또 하면 되지 뭐


너와의 모든 지금 - 재쓰비 (JAESS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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