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 입니다….
<언니가 씀>
보다 빨리 돈을 모으는 비법은 심플하다. 잘 벌기, 잘 쓰기, 잘 모으기. 이 세 가지면 된다.
많은 돈을 번다면 분명, 남들보다 쉽게 모을 수 있을 테다. 예를 들어 부모님 케어를 받으며 본가에서 지내는 고소득자라면 말이다. 남들보다 평탄하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우리 자매는 주어진 삶에 충실했다. 동생과 함께 5평 원룸에서 5년 반, 9평 투룸에서 6년을 버텼다. 그렇게 약 11년 반을 좁은 자취방에서 동고동락한 결과 드디어 서울 아파트를 매수했다. 둘 다 수입이 아주 많지 않았지만, 일단 돈 벌기, 잘 쓰기, 잘 모으기를 실천한 덕분이다.
나는 아래와 같은 환경에서 돈을 모았다.
월 고정지출: 40만 원(보험, 교통비, 경조사 등)
통신비 : 알뜰폰 (2-3만 원)
생활비: 한 달 평균 50~60만 원
주거비 : 9평 투룸 (버팀목 전세대출 이자 1.8->2.5% => 전세 대출에 따른 실질 지불 금액 환산 시 4000/50)
저축률 : 정기적금 100만 원, 월별 잔액은 전부 파킹 통장 (급여의 60% 이상 평균 저축)
자차: 없음
부모님 지원:전무
상여금/성과금 : 100% 저축 (연봉 포함이라 큰 의미는 없다.)
만 30살에 1억을 모은 뒤로는 공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했다. 많이 벌기도 했지만 잃기도 해서 주식으로 번 돈은 크게 많지 않다. 주식 외 별도 투자는 하지 않아 1억 모으기에 예적금의 힘이 컸다. 현재는 아파트를 매수했기 때문에 위 지출/저축금액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관성처럼 해왔던 절약이나 소비 습관, 자산 관리 방법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돈 '잘 번다'는 말은 '많이 번다'는 의미가 아니다. 많이 벌면 물론 좋겠지만,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나만 해도 그렇다. 늦깎이 신입사원으로 또래 친구들보다 3-4년은 늦게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돈 '많이 벌기'에 관하여 언급하기에 이래저래 힘든 처지다.
내게 돈 잘 벌기란 '꾸준하게 벌기'를 의미한다. 주식 등 투자에 능력이 있다면 활용하면 된다. 웬만큼 수익이 난다 해도 직장은 때려치우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번뜩이는 아이템이 있는 사업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나는 그저 그런 K-직장인이다. 부단히 일해 벌어들인 근로소득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직장 생활이 괴로워도 일단 견디면, 경력이 쌓일수록 급여는 올라갈 것이다. 급여가 오르지 않으면, 이직을 해서라도 올려야 한다. 꾸준하게, 많이 벌어야만 더욱 안정적이고 빠르게 목돈을 모을 수 있으니까.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직장인 최고의 재테크는 몸값 올리기라는 말에 공감한다.
연봉 올리기는 빠르게 해내기가 아무래도 힘들다. 또, 급여가 가장 중요해 보여도 결국 지출 관리가 관건이다. 나의 경우, 학생 시절 아르바이트 비 60-80을 벌어도 여윳돈을 모으는 습관을 들였다. 푼돈이라도 단돈 몇 십만 원이 없어서 서러울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축 습관이 잘 들어서, 사회 초년생 시절 월급 166만 원을 받을 때도 어떻게든 저축했다. 돈 모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옷과 음식에 마구 써버린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모아둔 덕분에 백수 시절을 버텼다.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예금 2천만 원을 갖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적은 돈이라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재미, 그러니까 '모으는 재미'를 느낀다면 50%는 성공했다고 본다.
가끔 주위 동생들이 돈을 어떻게 모으냐고 물어볼 때가 있다. 안 쓰고, 안 샀다. 그게 전부였다...라고 말하면 '언니는 물욕이 없어서 좋겠다.'라며 좌절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현재 내가 20대 여성들보다 물욕이 없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 또한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오지는 못했다.
감히 말하건대, 돈을 모으려면 일단 많이 써봐야 한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던 대학생 시절, 나는 중국 직구에 빠져있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확대하기 전이다. 이른바 1세대 중국 직구인 이랄까? 중국 쇼핑몰 '타오바오' 직구에 빠져 1회 8~10만 원을 쓰며, 중국에서 한국으로 쓰레기를 많이도 들여왔다. 간단한 소품, 문구부터 옷, 패션 잡화, 인테리어 용품까지, 용도 다른 수많은 그 물건들 중 아직까지도 우리 집에 남아 있는 제품은 거의 없다. 사실 아예 없는 듯하다. 비싼 돈을 내고 공산품을 한국 땅에 들여와, 금방 버리고, 오염시키기까지 하다니. 그때를 생각해 보면 돈과 기회비용이 너무나도 아깝고, 후회스럽다. 크게 반성한다.
그렇지만 20대에 돈을 낭비해 본 경험이 지금의 30대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바보 같았던 20대 시절을 지나 정신 차려서 망정이지, 서른 살이 넘어서도 뽑기 하듯 마구잡이로 물건을 사들이려 했을 거라 생각하면 아찔하다. 앞으로도 조악한 물건을 재미 삼아 사서 버리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한다. 역시 사람은 한 번 미쳐봐야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
또, 환경보호 측면에서도 그렇다. 내가 어릴 때 먹었던 분유통의 분해 시간은 50~200년이다. 기저귀의 분해 시간은 500년이라 한다. 내가 쓰고, 낭비했던 물건들이 나보다 오래 산다. 내가 죽어도 육지를, 바다를 떠돈다고 상상하면 끔찍하다. 어쩌면 그중에 몇은 이미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공기 중에 떠다닐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무분별한 소비에 더욱 경각심이 생긴다. 고도로 발달한 구두쇠는 환경운동가와 다를 바 없다. 환경도 생각하고 내 잔고도 생각하고 일석이조.
9평 투룸 빌라에 6년을 살았다.
1차 계약 : 1억 8천 / 월세 10 / 관리비 4
2차 계약 : 1억 9천 / 월세 15 / 관리비 4
3차 계약 : 1억 9천900만 원 / 월세 15 / 관리비 4
월세, 관리비, 공과금 포함 월 45-50만 원 정도를 주거비에 썼다. 버팀목 전세대출 정책 덕분에 낮은 금리로 전세 대출을 한 덕분에 주거비를 상당히 절약했다. 또, 동생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생활비도 아꼈다. 2명이 함께 지낸다고 해서 생활비까지 2인 몫이 아니다. 실제로는 1.5인 생활비가 들기 때문에 확실히 공동체로 살면 돈을 빠르게 모을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자매고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렇지만 자매가 없거나, 가족과 친구, 누구와도 함께 지낼 수 없다고 절망하지 마시라. 심지어 나도 하우스 메이트/하숙생들과 살아본 적이 여러 번 있지만 번번이 적응하지 못했다. 타인과 함께 사는 게 힘든 사람도 분명히 있다. 또한 여성들은 안전한 주택에서 삶을 영위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집은 가장 마음이 편해야 하는 공간인데, 더럽고 위험한 공간이라고 느껴진다면, 집 밖의 생활에도 영향이 간다고 믿는다. 주거비를 줄일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다른 곳에서 고정 지출을 줄이면 된다.
돌이켜보면 거의 10년간 중고 핸드폰만 사용했다. 가족이 준 갤럭시 S8을 3년 정도 사용했고, 화면과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당근에서 중고 갤럭시 S20을 구입했다. 21년 10월에 사서 25년 3월에 새 핸드폰을 바꿨으니 3년 넘게 사용했다. 무선 헤드셋이 유행하지만 10만 원짜리 유선 헤드셋도 만족하며 사용한다. 무려 줄 길이가 3미터지만 성능이 좋아 집에 두고 쓴다. 갤럭시 버즈나 에어팟 같은 무선 이어폰도 욕심이 나지 않는다. 블루투스 기기를 뇌 근처에 두고 쓰는 게 찝찝하기도 하고 음질이나 제품 성능이나 가격, 감성 면에서도 유선 이어폰을 선호한다.
IT 직군에 종사하고 있지만, 애초에 별로 전자기기에 물욕이 없어 가능한 일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데스크톱도 2016년에 동생이 구매한 것을 사용하고 있고, 노트북 역시 동생이 구매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얹혀사는 삶이 찝찝한가? 줄어드는 통장 잔고가 더 불편하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은 무겁고 잔고장이 많지만 그래도 고장 날 때까지는 쭉 써보려고 한다. 최신 기기를 예를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무슨 물건이든, 소비를 통해 100만 원 이상의 목돈이 한 번에 나가는 일은 막는다.
SNS는 잘 보지 않는다. 유혹이 많기도 하고, 화려한 인플루언서나 친구들 일상의 단편을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부러운 마음이 든다. 자칫 충동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에 되도록 멀리한다. 어쩌다 미디어에 소개된 새로운 물건을 사고 싶어도 '이거다!' '꼭 사야 해!'라는 확신이 없으면 구매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껏 원룸, 투룸 빌라를 전전하며, 옷, 그릇, 각종 생활용품을 쟁여두고 살았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세일하니까, 남들도 다 산다고 하니까, 있어 보여서... 갖은 핑계를 대며 습관처럼 소비했다. 물건에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이 너무 싫다. '쟁여진' 물건들은 자주 나를 압도한다. 집이 좁으면 더 그렇다.
태생이 불확실성을 혐오한다. 가진 돈 내에서만 소비하고 싶다. 덮어두고 쓰는 편이 아니지만, 지금 당장 카드값을 지불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데 강제로 익월까지 기다리기가 싫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즉시 납부라는 기능이 있지만 카드사별/카드별 제한되는 경우가 있어 아예 신용카드는 지불수단 선택지에 없다.
체크카드와 지역화폐를 주로 사용하면 딱히 가계부를 사용하지 않아도 대강 소비 내역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통장에 잔액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렇다. 뭘 이렇게 많이 썼지? 하고 상세내역을 보면 자잘한 소비가 모여 몇십만 원이 우습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하지만, 지출에 한해서는 티끌 모아 태산이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도 철저하게 소비 습관을 다잡는 사람도 물론 많을 테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안다. 돈 쓰면서도 불편한 기분이 드는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와 지역화폐만을 고집한다.
택시 기본요금을 모른다. 그냥 대중교통보다 비싸며, 주행거리에 따라 택시비가 대중없다는 사실만 안다. 불확실성을 꺼려 하는 나에게 택시는 최악의 교통수단이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우연히 만난 택시 기사가 침 튀기며 정치인 욕하는 소리, 개인적인 푸념 듣고 싶지 않다. 언제나 대중교통 막차 전 귀가하려고 하며, 막차가 끊겼으면 걸어서라도 집을 찾아간다. 야간 할증이 붙은 택시비 지불? 술 마신 다음날, 숙취보다 더 최악인 결말이다.
'부자처럼 보이기'를 경계한다. 부자처럼 보이기 위해 돈을 쓴다? 그렇게 해서 인플루언서가 되어 부가 가치를 창출한다면 투자가 되겠지만, 뭣도 없는 내가 부자처럼 보여봤자 모두 허상이다. 성수동 직장인 시절 166만 원을 벌어 100만 원을 디자이너 브랜드 옷에 쓴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허영심에 미쳤다. 돈을 못 벌어서 외관에 집착했던 시절이다. 수준이 판교 개발자가 아닌데 외모만 그럴듯하게 꾸미려 옷만 사들였으니 마음이 텅 빈 지옥이었다.
1억이 있으면 후줄근하게 거리를 걸어도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근거 없는 자신감 아니냐고? 근거가 왜 없나? 1억이 있는데. 금융자산이 1억을 넘겼을 때 괜히 길을 걷는데 어깨와 가슴이 절로 펴졌다. 라운드 숄더와 거북목 치료제. 벌이가 좋거나, 모아둔 돈이 많으면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관심이 줄어든다. 어떻게든 더 많이 벌고, 더 빠르게 불릴 궁리를 하게 된다.
젊을 때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 경험은 호캉스나 해외여행이 아니라 고생하고 아끼는 경험이다. 극단적으로, 라면이나 레토르트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방법도 젊었을 때 한 번쯤은 해볼 만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 건강에 이상을 느꼈고, '이렇게 먹고살기 싫어서' 더 열심히 돈을 모았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구질구질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젊었을 때 고생해 봐야 자산의 가치를 몸소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게임이든, 운동이든 원래 초보자는 서러운 법이다. 나는 훗날 돈 없어 초라한 내 모습이 싫어 현재를 충실히 아껴 쓴다.
사람이 매일, 매월, 매년 허리띠 졸라매고 살 수는 없다. 나 역시 그렇다. 아낄 곳에서 확실히 아낀 돈을 취미와 취향을 위해 소비한다. 당장 입에 들어오는 좋은 음식과 술, 눈에 보이는 풍경과 건축물, 미술작품 감상하기에 아낌없이 쓰는 편이다. 어디까지나 내 분수에 맞는 수준에서 말이다. 최근에는 해외여행 가기보다 돈 모으는 즐거움이 더 커졌다. 그래도 심심찮게 SNS에서 볼 수 있는 오마카세, 해외여행 사진은 조금 부럽긴 하다. 그럴 때면 엄마가 하시던 말씀을 떠올린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매일 하고 사니?"
맞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이상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나. 주어진 환경에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한다. 내 삶을 통제하여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갈 때 기쁘다. 지독한 통제광 같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큰 만족감과 재미를 느낀다. 1억이 2억 되는 기쁨을 또 누리고 싶다. 물론, 지금은 주택 구매에 돈을 써버려서 0원부터 시작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잘 모으는 데는 비결이 없다. 덮어두고 모은다. 월급 날, 저축이 먼저 빠지게 자동이체를 걸어둔다. 남은 돈은 바로 파킹 통장에 옮긴다. 초반에는 가계부를 썼지만 지키지 못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그냥 급여통장/소비통장을 분리했다. 소비통장에 당장 사용해야 할 10-20만 원 정도만 채워두고 썼다. 오로지 체크카드와 지역화폐로만 소비한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다음 달 목돈이 빠져나간다는 생각 때문에 찝찝하다. 상여금이나 성과급 등 목돈이 들어오면, 무엇을 살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굴릴지를 먼저 생각했다. (예금? 파킹 통장? 달러/엔 등 외환예금? 투자?)
만 30살에 1억을 모은 나의 비법은 이게 전부다. 잘 벌기, 잘 쓰기, 잘 모으기. 이 세 가지에 대해 쓰다 보니 '잘 참기'도 덧붙여야 될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의 삶은 '참기'의 연속이었다. 인내가 곧 인생의 본질이라 느낀다. 부모님은 나를 키우며 '이런 것도 참지 못하면 커서 뭐가 될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인내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 부모님의 교육관 덕인가. 나는 참 잘 참는 사람으로 자랐지 싶다.
서울 4년제를 목표로 공부했던 고3 수험생활은 지난했다. 졸음과 지루함을 참고 공부하면 눈부신 대학 생활이 펼쳐질 거라 믿고, 참았다. 21살, 은행에 갔더니 은행원이 주택청약 통장을 만들어 달라고 애원했다. 실적에 도움이 된다는 간청에 흔쾌히 주택 청약 통장을 만들어 다달이 2만 원씩 적금했다. 푼돈이라 그런가. 돈을 넣으면서도 내가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미래란 막막하고 막연했다. 서울의 모든 것이 서먹했다. 가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 만 원 한 장이 아쉬울 때, 홧김에 청약통장을 해지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자주 참았다. 머나먼 미래의 나를 위해서. 결국, 12년이 지나 서울 아파트 등기를 치며 기쁜 마음으로 청약 통장을 해지했다. 청약에 당첨되지는 않았고, 우리집은 내로라하는 지역 대장 아파트도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 12년을 갖고 있던 청약통장을 해지하니 이자 35만 원이 남았다. 내 인내의 대가인 것처럼 느껴져 흐뭇하다.
어느덧 직장인이 되어, 주말만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긴 노동시간을 참는다. 돌아서면 떨어지는 업무와 중압감, 두려움을 참는다. 일 끝나면 운동을 간다. 오늘은 피곤한데 하루 쉴까? 그런 나약한 생각이 들어도 참고, 달린다. 숨이 차오르게 20-30분 남짓을 뛴다. 가파른 언덕을 만나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참고, 또 참는다. 정말, 이제 더는 못 참겠네! 싶은 순간, 달리기가 끝난다. 곧바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달콤한 성취감이 몰려온다. 스스로 다독이며 참는 하루를 마무리한다. 비단 돈 모으기 뿐만 아니라 인생의 많은 부분에 인내가 필요함을 느낀다.
잘 참았다. 나 자신.
보다 큰 기쁨을 누리기 위해, 다시 참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