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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이 서울에서 살기

짠순이 큐레이션

by 고은집

<언니가 씀>

20살, 서울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하자 별세계가 펼쳐졌다. 신입생 OT, MT, 개강 총회, 동아리 모임 등, 별의별 이유와 의미를 갖다 붙인 술자리가 하루에도 서너 개씩 잡혔다. 연고 없는 서울에 혈혈단신 상경한 나는, 고향에서처럼 내향적으로 굴다가는 독수공방 신세를 못 면하겠다 싶었다. 과장 더 보태서 거의 매일 선배나 친구들이 모이는 술자리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30대가 되고, 그때 술잔을 부딪히며 웃고 떠들었던 사람들 중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오늘 글을 쓰기 위한 소재가 바로 그때 그 소란스럽고 소득 없는 술자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적잖이 위로가 된다. ( 술값에 헛돈 탕진했던 시간도 무가치하진 않구나!)



3월 개강 총회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강남구 출신이라 강남구/서초구 출신 동기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 티를 내는 학우였다. 고작 대학생이 되었을 뿐인데도 명문고 네트워크를 과시하는 친구들이 주변에도 심심찮게 있었기 때문에, 강남 자부심은 딱히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아이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강남구, 서초구 출신 동기가 있으면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을 물어보고 면전에서 바로 네이버 부동산에 가격을 검색하곤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보다 ○억 싸네."

그 아이는 부모님과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부류의 사람이라 충격을 받았다. 진짜, 무슨 세상에 이런 애가 다 있지? 싶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사람도 있었다. 단과대학 선배는 여자친구 소개받을 때 항상 '어디 살아?'라고 묻는다고 했다.


"왜? 가까운 게 좋아서? 여자친구 집에 데려다줘야 하니까?"

나의 순진한 물음에 친구들은 꺄르르 웃었다.


"바보야, 집값, 집안 비슷한 여자 소개해달란 뜻이잖아."

띠용… '어디 살아?'라는 물음에 저런 함의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들은 그런 사회적 약속을 어디서 다 배웠는지, 대단했다. 고작해야 나랑 동갑, 20살 초반 여자애들인데 말이다. 역으로, 친구들은 나를 순진한 시골 소녀라고 놀렸다. 요즘 세상에 희소한 애라고도 했다.


한 동기는, 본인이 서초구 토박이라고 침튀기며 떠들어댔다. 그는 입버릇처럼 강남 8학군 출신임을 내세우며 자랑했는데, 뒤에서 '진또배기' 명문고 출신 학우들은 험담을 했다. 그 학교는 강남 8학군에서도 꼴찌라고, 강남 8학군 이름표 내밀기 창피하지 않냐는 말이었다. 고작 20살 남짓한 아이들이 모인 대학교 생태계에서도, 암투가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서울/지방은 물론이고, 같은 강남구/서초구에서도 부동산과 출신 고등학교 이름으로 쉴 새 없이 급이 메겨지는, 피 튀기는 전쟁.


대학교 저학년 시절, 그런 것도 사회생활이라고 찾아간 여러 술자리에서 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칭 '부촌 출신' 학우들의 자기 자랑, 친구 자랑, 부모 자랑, 조부모 자랑. 본인을 둘러싼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며 돈이 많고 잘나고 많은 자산을 가졌는지 떠들어댔다. 애들이 침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동안, 술안주로 주문한 11,000원짜리 김치찌개는 국물이 다 졸아서 몇 번이고 물을 부어 국물을 채워야만 했다. 막상 술값을 계산해야 할 때는, 그렇게 돈 자랑을 하던 애들도 칼같이 술값을 1/n로 나눠 내고 헤어졌다. 걔들이 정말 돈이 많고 잘났는지를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당연히 우리 모두가 그렇게 부잣집 자제였던 것은 아니기에, 이런 위화감은 매년 학기 초에 잠깐 조성이 되었다가 여름방학 즈음에는 잠잠해졌다. 한국 자본주의의 암묵적 질서나, 서울 부동산 계급 딱지 같은 건 알지도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계급장 붙이고 나 잘났소 외치는 애들 중, 대단히 범접 불가한 문화 자본이 느껴지는 애는 한 명도 없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개념인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은 교육, 취향, 예술적 감각, 어휘, 매너 등 계층을 강화하는 비경제적 자원을 의미한다. 아비투스는 이러한 자원을 체화한 삶의 방식(사고, 행동, 취향 패턴)으로, 계층적 배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한다. 부자들의 아비투스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여유와 품위 있는 태도라고 했다. 같은 단과대학에 부자 친구들은 많았지만, “나도 쟤처럼 세련된 취향과 여유를 지닐 수 있을까?”라는 열망을 갖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비싼 프리미엄 아파트에 산다는 말이 내면까지 우아하고 품격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당시 나는 부자 친구들에게 별다른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압구정이니 반포니, 강남과 서초의 아파트 입성의 꿈은커녕 내가 서울에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조차 꾸지 않았으니까. 알지도 못하는 세계에 어떻게 욕망을 갖고 질투를 하겠는가? 그저 나는 술자리에 참석한 이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사진을 업로드하며 SNS에 모임 후기를 남겼다. 그런 사진들에는 의리로라도 좋아요가 많이 찍혔다. 휴대전화 화면을 끄면 3평 원룸의 천장이 보였다. 그때까지도 천장을 올려다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한 이유를 몰랐다.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나는 내방에 아주 고요하게 갇혔다. 그곳만이 내 세상이었다.





이대로 안주할 수는 없었다. 나는 꿈 많은 서울의 청년이었다. 3평짜리 원룸에 살고 있지만, 내 세계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서울은 '비싼' 도시지만, 반대로 돈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도 풍부한 편이다. 요즘 큐레이션과 취향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데, 20대 초반 시기 덕분에, 돈을 지키면서 취향도 발전시키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다. 시간을 내어 전시장을 찾고, 뮤지컬도 보고, 록 페스티벌이나 연극 등 서울에서 할 수 있는 문화를 즐겼다. 돈 없을 때는 커피 한잔 들고 한강을 찾거나, 석촌호수나 어린이대공원을 거닐기만 해도 일상을 환기할 수 있었다.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친구들과 여의도 불꽃축제를 감상하러 이촌 한강공원을 찾았다. 10년도 지난 이야기다. 우리는 인파 속에서도 꿋꿋이 돗자리를 펴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까만 밤 하늘을 수놓는 불꽃은 환상적 야경에 감탄하길 잠깐, 1시간여의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금방 다가왔다. 불꽃축제 종료까지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귀가길은 출발할 때보다 훨씬 혼잡했다. 쏟아지는 사람들이 이룬 홍수를 헤치고, 꾸역꾸역 이촌역에 도착했다.



승강장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긴 배차 시간을 뚫고 지하철이 3번이나 도착했지만, 귀가하는 시민들로 가득 차 도저히 탈 수가 없었다. 넌더리가 나서 무심코 지하철 역사 너머를 쳐다보았다. 용산의 아파트 빌딩 숲이 보였다. 내 집 앞마당에서 불꽃 축제가 열리는 기분은 어떨까? 극심하게 혼잡한 대중교통따위 타지 않아도 되겠지. 그때 처음으로 스멀스멀 어떤 감정을 느꼈다. 서울이란 도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한 주거지다. 주머니 사정 좋지 않은 20살에게도 기꺼이 멋진 불꽃 축제를 즐길 자리를 내어주는 곳이다. 그런데,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그 편리함은 몇 배로 뛰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느낀 감정은 열패감이었다.



불꽃은 입을 쩍 벌리고 감탄할 만큼 아름다웠지만, 그날 이후 나는 절대로 불꽃축제를 감상하러 한강을 찾지 않는다. 축제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척박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당시 비굴하게 서울을 붙잡고 있었던 나 자신의 모습의 악착같음이 떠오르기 때문에. 소위 잘나가는 일진이 되고 싶어서 권력에 아부하고 빌붙는 애처럼, 한번 콧방귀라도 뀌면 손쉽게 튕겨져나갈 것 같은 아슬아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서울에 꾸역꾸역 붙어있었다. 서울에서는 부동산이 계급의 표식인 것 같았다. 흔히 주거비에 얼마를 쓸 수 있는지를 따졌을 때, 가장 쉽고 빠르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내 위치는 어디쯤이었을까? 밑바닥이었을까?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아비투스)가문·교육·환경 속에서 체화된 생활방식이다. 돈으로 취향을 산다거나, 몇 번의 교육만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워서 있는지도 모르게 익숙해진 삶의 방식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좁은 방에 살지만, 내 세계는 넓어.”


자신 있게 되뇌었지만, 나도 알았다. 자기 최면이나 세뇌에 불과했다는걸. 서울의 문화자본을 좇으며 발버둥 치는 마음은, 단순히 소유가 아니라 소속에 대한 갈망에 가까웠다. 자산과 부동산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그렇지만 호락호락한 내가 아니었다. 1학년 때, 서양 문화사라는 교양 수업을 들을 때였다. 20살짜리가 듣기엔 어려운 수업이었고 교수님도 만만하지 않은 분이었다. 리포트 주제가 「길가메시 서사시」 독후감이었는데, 정말이지 책을 단 한 장 넘기는데도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가 외계어 같았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책의 내용이 기억 안 난다.


데드라인은 다가오고, 짬을 내서 강의실 곳곳에서 틈틈이 몇 쪽씩 읽어나갔다. 그때 과 친구가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너는 책도 읽는구나, 나는 수능 치고 책 한 번도 안 펴봤어, 라며 대단하다고 나를 치켜세워줬다. (이 나이가 되어도, 내 지인 중 제일가는 부자라 할 수 있는 아이다.) 메는 가방이나 옷차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아, 오죽하면 당시 교수님도 친구의 배경을 눈치채고 알은체 했었는데... 이 아이는 내가 읽는 책에도 칭찬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이 사건 이후, 엄청나게 확고한 다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목표가 생긴 것도 같다. 대단한 문화 자본을 물려받진 못했지만, 나만의 문화자본을 만들어나가자고.


부유한 친구들의 세련된 말투, 골프나 앤티크 소품, 명품 의류 수집 같은 고급 취미를 보며 저건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처지와 비교하며 좌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솔직히 명백한 시간 낭비다. 부자들의 아비투스를 완전히 베끼기는 어려워도, 부분적으로 체득하거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예를들어, 고급 취미에 쓸 돈은 커녕 수중에 전시회 티켓 한 장 값도 없다고 해보자. 동네 책방에서 독서 모임을 시작하거나, 유명 브랜드 대신 빈티지 숍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도 있겠다. 멋진 인테리어로 유명한 '핫플' 국립/시립 도서관을 찾아가도 좋다. 북촌/평창동의 크고 작은 갤러리, 예술의 전당 서예 미술관에서도 좋은 무료 전시가 많이 열린다.


소위 '배민 맛'이라는 말처럼, 현대 사회에서는 적잖이 돈을 들여도 기분을 망치는 경우가 심심찮게 존재한다. 반면, 돈 안 쓰고 기분 좋아지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나의 경우 러닝화 한 켤레 구매해 무심코 달리기 시작해, 5년 경력이 넘는 러너가 되었다. 술을 좋아해서 맥주, 전통주, 와인, 위스키를 저렴한 것부터 열심히 마셨다. 이제 러닝과 술에 한해서는 초보자든, 마니아든, 어딜 가서 누구와도 가볍게 대화할 수준은 된다. 최근에는 클래식과 재즈 공연을 감상한다. 공연장을 찾을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유튜브를 탐방하며 취향을 찾아간다. 내가 이렇게 얻은 취향과 문화자본은 흉내일까? 단순히 “부자처럼 보이기”를 목표하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면 진정 성공한게 아닐까?


무얼 하든지, 한 우물만 파면, 그런 모습을 멋지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나만의 취향으로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자신감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돈을 쓰되, 나를 빛나게 만드는 곳에만 투자하는 연습을 한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신상 코트 대신 취향과 경험을 사는 행위, 오늘의 얄팍한 행복을 위해 충동구매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행위가 모여 내 세계를 넓힌다.



정신 승리 같다고? 무료 멘탈 관리 차원에서 보면 이만큼 건강한 마음가짐이 없다. 어릴 적 자린고비 이야기를 보며, 굴비를 한 번 쳐다보고, 간장을 반찬 삼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의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소위 '정신승리' 같은 행위다. 그렇다 하여도 누가 자린고비 영감을 구두쇠라 힐난할 수 있겠는가? 그 자신이 행복하고 떳떳하면 그뿐인데. (정신 승리 만세!)



어느새 나는 서른두 살이 되었고 아직 부자가 되려면 한참은 멀었지만, 부단히 취향을 넓히고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 덕분에, 적당히 벌어 적당히 쓰고 때때로, 그러나 자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짠순이 큐레이션의 키 포인트다.


아래는 나만의 비법, 돈 없이 서울에 살며, 0원으로도 즐겁게 문화를 향유하는 방법을 공유해본다. 나의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아무쪼록,

나만의 방식으로 경제적 승리를 향해 나아가자!





짠순이 큐레이션 : 돈 없이 취향을 찾아가는 방법


1.저비용 문화 콘텐츠 활용

① 무료/저렴한 옵션

- 국립중앙박물관/국립공예박물관/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등 무료 전시

- 지역 축제 참여 (어린이대공원 가을 축제 등)

- 도서관 인문학/명사 강연, 각종 공연 프로그램(재즈/클래식 프로그램도 자주 열림!)


② 지역 프로그램

- 광진 나루 아트센터: 1만원

- 성동 문화 재단: 3만원 (성동구민 50% 할인)

- 마포 아트센터: 2~7만원

- 강동 아트센터: 2~3만원

...등!



2. 국립/시립 공원에서 여가 보내기

ㅇ추천 장소

-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 서울: 한강공원

. 한강 대교 챌린지: 올림픽대교, 영동대교, 금호대교, 반포대교, 동작대교, 잠실대교 등··· 취향껏!

(각기 다른 한강뷰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광나루/암사 한강공원: 자전거 타기 좋다. 한적한 피크닉

. 뚝섬/반포/여의도 한강공원 : 두말하면 입 아픈 핫플

. 망원 한강공원 : 한강뷰따라 산책하기 좋음

. 잠원 한강공원 : 강 건너 보이는 한남동 뷰 덕분에 해외 느낌 물씬

※ 팁: 와인바갈 돈이 없다면? 편의점 와인 구매 후 한강에서 즐겨보기

- 서울 : 공원 (보라매공원/어린이대공원/북서울꿈의숲/올림픽공원 등···) 방문하기

3. 근사한 국립/시립 도서관 방문

- 손기정도서관

- 아차산 숲속 도서관

- 강동구 숲속 도서관

- 청운도서관

- 인왕산 숲속 도서관

- 정독도서관

- 국립중앙도서관

- 송파책박물관 등···


4. 무지출 챌린지

- 방법: 주 1회 이상 ‘무지출 day’ 설정, 출근부터 퇴근까지 소비 없이 보내기

(처음엔 커피/간식 유혹이 있지만, 성공의 기쁨으로 점차 즐기게 됨··· 변태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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