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것들은.다.아름답다 / 승효상
대상무형(大象無形)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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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론가 여행을 간다면 보통 그 지역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를 가게 된다. 어쩌면 그런 특정 장소에 가기 위한 여행인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랜드마크 사진을 잔뜩 찍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제 자신은 그 지역에 대해서 잘아는 사람이 된 것같이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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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을 쓴 건축가는 그런 여행은 그 지역을 정말 아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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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역의 일상적인 삶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가 그 안에서 겉으로만 보이는 '서정적인 풍경'만이 아닌,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알게모르게 축적되어 온 그 지역의 '서사적 풍경'을 함께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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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그것이 내 상상과 너무 달라서 실망하더라도 정말로 진실된 것을 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적 풍경'을 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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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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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승효상이라는 건축가가 그런 자신의 여행을 통해 '빈자의 미학'이라는 자신만의 건축을 만들어가게 해준 건물이나 장소에 대한 소개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어떻게 받아드렸는지 대해 쓰고 있다. 내 생각에 이 건축가가 말하는 빈자의 미학이란, 보여지기만을 위한 높고 큰 채움이 아니라 작거나 혹은 비어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 크게 존재하고 있다는걸 알 수있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말하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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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언젠가 나만의 건축을 하기 위한 여행을 가게 될텐데 미래의 나에게 대상무형이라는 말처럼 비록 그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작고 비어있어 보일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무엇보다도 크게 존재할수있는 나만의 건축이란 것을 얻는 여행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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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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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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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6년 전이지만 그동안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 위에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한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지만, 위 글을 쓰고 몇개월 뒤에 첫 해외여행이자 유럽여행을 한달정도 다녀왔었다. 2018년 2월에 일본여행을 끝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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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2년간 해외여행은 거의 불가능했고, 사람들은 주말마다 제주도를 필두로 국내여행을 다녔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니는 지금의 여행은 이 책에서 말했던 서사적 풍경을 느끼고 성찰적 풍경을 보는 여행과 더욱 그 괴리가 심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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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컷의 잘나온 사진을 건질 수 있다면 아무리 먼 지역에 홀로 떨어진 곳이더라도 주말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나 또한 너무 서정적 풍경만을 좇으면서 여행을 다니지 않았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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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코로나시대가 점점 끝나가고, 다시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텐데, 언젠가 다시 해외로 여행을 나가게 된다면 여러 랜드마크에 깃발을 꼽고 다니는 여행보다는 내가 묵는 곳 근처 카페에서 책을 하루종일 읽다가 숙소로 다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날이 있는 여행을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