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브랜드
대학생 시절, 교수님께서 자신이 생각하는 디자인관련 레전드 책? 이라며 추천해주셨던 단순함의 법칙[THE LAWS OF SIMPLICITY]이라는 책이 있다.
애플의 디자인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심플한 디자인 때문만이 아니라, 그러한 심플한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고 놀라운 기능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으로 '단순함[simplicity]이라는 단어 속에는 함축, 내제[implicity]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어야 비로소 좋은 simple design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급식을 먹던 학창 시절, 내가 검은색 아이리버 미키마우스 mp3에서 민트색 에어팟 나노 3세대로 mp3를 바꿨던 결정적인 이유는 에어팟 휠을 돌릴 때 효과음이 좋아서도 있지만, 둘 다 굉장히 작고 이쁜 디자인임에도 미키마우스 mp3는 내가 듣고 있는 노래 다음에 무슨 노래가 나오는지, 미키마우스의 귀를 잡아당겨 직접 듣기 전까진 알 수 없었고, 새로 넣은 곡 중에서 내가 듣고 싶어진 노래가 얼마나 뒤에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불편함에서였던 것 같다.
다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눈 뒤에 교수님이 말해주셨던 놀라운 이야기는 이 책이 아이폰이 나오기도 전인 2006년에 처음 출간됐었다는 점이다. 읽으면서 아이폰을 생각하며, 당연한 소린데 왜 레전드 책이라고 하셨을까라고 생각하며 읽었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어떤 브랜드의 가치와 성공의 이유를 분석하는 책에서, 시간이 지나도 그 논리가 변함없는 경우는 [이 경우는 오히려 애플 극초기 투자자들의 성지글이 아닐까 싶지만] 흔치 않은 것 같다.
브랜드의 브랜드는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타깃을 수정하여 더욱 성공한 구찌와
'두 유 노 XXX' 시리즈에서 이젠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BTS,
이제는 디즈니+를 챙겨보지 않으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완다가 왜 저러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수준까지 온 마블 등 비교적 굉장히 트렌디한 세계적 브랜드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 후 2년도 지나지 않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브랜드의 성공분석 내용과 지금의 상황이 달라진 경우가 꽤 많았다.
특히 BTS는 Dynamite를 기점으로 한글가사를 고집하던 방시혁 대표의 책 속의 인터뷰와는 달리,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영어 가사로만 이루어진 곡들도 내기 시작했고 그 이후 오히려 더욱 승승장구해왔다. 뮤직비디오의 흥행으로 이전의 아무런 행보 없이 갑자기 빌보드 1위를 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행과 빌보드 순위 아래서부터 천천히 팬덤을 넓히며 올라온 BTS의 빌보드시장진출 성공의 차이를 비교한 부분은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입지를 다지며 올라오는 것이 높은 위치에서 유지할 수 있는 큰 지지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인상 깊은 내용이었지만, 이제 BTS는 영어가사만으로 이루어진 곡을 더 내고 있고 [이제는 활동 유무도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오히려 더욱 성공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분석은 틀렸다라며 폄하하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신 왜, 무엇이 이전의 방시혁 대표의 마음을 바꾸게 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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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BTS는 해외작곡가에게 곡을 받거나 영어앨범을 내는 것을 피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한국어 속어와 유행어, 심지어 한국 전통 음악의 추임새까지 활용하며 한국의 특색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소속사 빅히트의 방시혁 대표는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미국에 진출해서 영어로 된 노래를 발표하는 부분은 저희가 가고자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하며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 색을 지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드러낸 바 있다.
일단 책에서 언급된 인터뷰 내용에서 내 눈에 들어온 단어는 '빅히트'였다. 빅히트에서 하이브로 사명을 바꾼 건 2021년 초이고, Dynamite가 나온 날은 2020년 중순이라는 점에서 사명을 바꾸려고 마음을 먹은 시점과 어떠한 가치관 변화에 의한 Dynamite라는 곡이 나온 시점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누군가는 처음 Dynamite를 듣고 BTS가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러한 BTS의 변화가 자신의 위치변화에 따른 더 적절한 성공의 정답을 찾은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 미국 진출을 했을 때 당시 자신들을 알리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했다면 다른 빌보드 가수들이 가지지 못한 한국의 특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곡으로 입지를 다지는 것이 빅히트의 BTS에겐 정답이었고, 더 나아가 글로벌한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 또 전 세계의 팬덤의 공감을 더욱 얻기 위해서 빅히트에서 조금 더 몸집이 커진 하이브의 BTS는 영어가사의 곡을 내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초심을 잃는다는 것이 나쁘게만 생각되지 않았으면 한다.
어떠한 선택을 함에 있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많이 다를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