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착각
실제 나이를 모른다면 아무리 과학을 동원하더라도 누군가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는 없다.
진단에서 치료까지 의료과정의 각 단계마다 실수의 여지는 늘 존재한다. 무언가는 배제되기 마련이라 질병은 제쳐두더라도 누가 어떤 잣대를 그거로 결정하며, 만약 다른 사람의 결정을 따른다면 무엇이 달라질지에 대한 의문은 건강과 행복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다 믿는 것들 중에는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죽어 마땅한 시대가 있었고,
지금은 우리가 거짓이라고 믿는 것들이 진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던 시대도 있었다.
현대의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우리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지금 우리가 정확히 안다고 믿는 것들 중에는 얼마나 많은 거짓들이 있으며 우리가 거짓이라 믿는 것들 중에는 또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있을까
믿음이 수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어떤 대상이 현재 어떻다고는 단언할 수 있지만 어떻게 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까지 약으로 정복된 모든 질병은 한때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질병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그것을 불확실한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름표는 사실상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언가를 안정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개인으로든 문화로든 일단 무언가를 안다고 믿으면 그것을 좀처럼 새롭게 바라보려 하지 않는 탓이다.
우리는 세상이 언제나 변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인지하는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세상을 고정시키고 있음을 망각한다.
모두가 진실이라 믿는, 그리고 나에게 부정적인 진실이라 불리는 [늙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것들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이나 의심 또는 저항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진실이라 불리는 것에 맞서려는 가능성마저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삶의 이유를 잃고 늙는 것이 아닐까
가능성을 시도하되 그 과정에서 자신을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라고 묻는 대신 "왜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거지?"라고 묻는 쪽이 훨씬 이치에 맞다.
책의 초반부에는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의사선생님 (혹은 의느님)의 말을 맹신하기보다는 자신이 느낀 증상을 절대 무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어필할 것이며 의사마다 증상에 대한 이야기가 다르고 누가 맞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보통 첫 번째 의사의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는 식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작가가 현대 의학에 대한 불확실성을 비판하려는 사람 같아 보였는데,
계속 읽다 보니 비단 의학에 대한 불확실성을 꼬집으려는 의도보다는 진실로 믿어지는 부정적인 통념들(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저항하고 극복해나가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보였다.
우리는 배움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이미 배운 것은 대부분 돌이킬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배움의 대상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쪽에서 옳은 것이 저쪽에서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견해를 다시 고려해 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추가로 지식을 얻거나 견해를 향상시키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현재의 지식을 어떻게 얻었는지, 근거로 삼은 사실은 무엇인지, 그 같은 사실을 도출한 과학을 믿어도 되는지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이처럼 아무런 비판 없이 정보를 받아들인 탓에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인 것이 실제로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인생을 헤쳐 나가야 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