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을 처방받는 기준에 대하여
"왜 아직도 그딴 회사를 다녀? 나도 나지만 너는 진짜.. 내가 너였으면 진작에 때려치웠다."
친구들을 만나 서로의 회사 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항상 듣게 되는 말이었다.
"그러게.. 이런 거지 같은 회사 빨리 그만둬야지. 찾아보면 여기보다 재밌는 거 하고 월급도 많고 사람들도 좋은 곳이 있을 텐데.. "
그런 말을 하면서도 운명이라 여겼던 회사 사람들과의 인연이라는 것에 얽매여 선뜻 그러지 못하고 있다.
행복이라는 것은 미래의 시제라는 생각으로, 지금 고통스럽지만 미래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벌어진 희생과 양보를 비롯한 여러 부조리한 일들을 견뎌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집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여러 번 느꼈다. 나는 그 순간 이건 몸이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반응한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힘들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회사의 이런 부조리함 [따위]때문에 내가 이렇게 까지 힘들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참고 참다가 이러다가 갑자기 내가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 되어서야 점심시간을 이용해 망설임 없이 정신과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지도에서 회사 근처에 있는 곳 중에 별점이 가장 높아 보이는 병원을 찾아간 것이다. 당연히 당일 진료는 하지 못하였고,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의사 선생님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예약 날짜만 잡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약한 날이 찾아왔다. 처음엔 mbti검사 같은 여러 장의 설문조사를 했다. 거침없이 체크해 나갔다. 체크해 나가면서도 나는 몇 개의 항목을 제외하고는 1-4번의 항목 중에 조금 혹은 가끔 그렇다와 그렇다에 해당되는 2번과 3번이 대다수였고, 3번보다도 2번이 많은 느낌이었다. 체크해 나가면서도 '이걸 4번에 체크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나는 역시 우울증이 아닌가 봐. 내 정신력이 약한 건가 보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검사를 마친 뒤 의사 선생님을 보러 진료실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서 오시게 되셨나요?"
"며칠 전부터 가슴이 조여 오고,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전까지는 그냥 마음만 힘들었는데 이게 신체적 현상으로 발현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이게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이 들고 있는데 정말 그게 맞는지 판단하고 싶어서요."
"그러시군요. 혹시 지금 상태에서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민들이 어떤 게 있을까요?"
그렇게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쏟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마음속의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어쩌면 처음 보는 사람일 것이다. 나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이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이 나의 그런 사람이었다.
"설문 결과로 봤을 때는 그렇게 심각하게 보이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말씀하시는 것들을 들어보면 설문보다는 상태가 그리 가볍진 않은 것 같고, 우울증 환자들 중에서 중간 정도에 해당되는 것 같다고 판단됩니다. 제 생각에는 약간의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울증 약 말씀이신가요? 제가 약을 먹어야 하는 수준인가요? 그걸 판단하는 기준이 뭔가요? "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지금 이렇게 처음 보는 당신에게 나의 고민들을 말을 하는 것만 해도 마음이 좀 안정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조금 풀린다면,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정기적으로 진료만 받으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요?라고 눈빛으로 말을 걸었지만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은 뒤 나는 약을 처방받기로 했다.
"ㅇㅇ씨 같은 경우의 사람들은 많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들과 ㅇㅇ씨의 차이는 이곳에 스스로 찾아왔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이곳에 스스로 찾아온 것 자체가 약을 처방할 수 있는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동료나 친구, 가까운 지인들에게 말해도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에 거의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이 병원이거든요. 그리고 약이 절대적으로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 우울증을 극복하는 일은 본인이 해야 하는 것이고 약은 그것을 조금 더 잘할 수 있게 보조하는 정도의 역할이에요. 운동으로 치면 장갑을 끼는 정도라고 할까요."
"아.."
그렇다. 나 스스로는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고민을 털어놨을 때 돌아오는 대답들은 본인들의 다른 힘든 경험들이었다. 회사-집-회사-집을 반복하다 보니 고민상담을 회사 사람들에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내가 속해있는 회사 사람들은 나보다 경력이 10년 이상 많기 때문에 나의 고민들을 말할 때면 마치 사춘기 소년의 고민을 듣는 것 같이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인들이 가장 힘들었던 라떼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그것도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은 내 고민들을 듣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뒤 '이런 게 힘든 거고 너의 그런 고민은 고민거리도 힘들어할 일도 아니야. 나중에 알게 될 거야.'라는 식의 대답이었고 그런 고민상담은 내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마음의 정도는 절대 절댓값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내가 이렇다 생각해도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남들에게 작아 보이는 것이 나에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거대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때의 그 상처 또한.
나의 감기가 남의 암보다 아프다는 말과는 반대로 남의 감기가 당사자에겐 암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나는 그들이 감기라 부르는 암에 걸린 환자였고, 개구리는 인간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개구리의 입장에서 경험한 사람이랄까.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내게 제일 미안했다. 스스로 나 자신을 속이고 가스라이팅 해온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많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걸 애써 모른 채 해왔다. 그러니 제발 알아달라고 내가 몰라주었던 내가 나에게 이렇게 몸부림치며 표현해 온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나서 간단히 점심을 먹게 된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자, 자신도 취업준비를 하면서 3개월가량 우울증 약의 도움을 받았다는 고백을 들었다. 생각보다 2030들의 우울증은 꽤나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의 경험담을 듣자 이번엔 굉장히 위안이 되었다. 우울증 약을 먹는 것 자체는 절대 우울증의 치료가 될 수 없고 나 스스로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역할일 뿐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친구는 취직으로 당당히 치료했던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내게는 해결하고 싶은 인생의 고민들이 너무 많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사장실로 들어가 돌연 퇴사 선언을 해버렸다. 소장님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나를 근처 커피숍에 바로 데리고 가서 그만두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마지막엔 역시나 저번에 들었던 라떼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붙잡으셨다.
어렵게 꺼낸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마 자기도 한창 힘들었을 때 정신과 병원을 갔었더라면 우울증 판단을 받았을 것이고, 자신이 보았을 때 내 정신건강은 별 이상이 없어 보이며 병원은 어쨌거나 환자를 확보해 돈을 벌어야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내 상태가 그 정도? 는 아니지만, 약을 처방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모독하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는 말을 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제 친구는 취직으로 우울증을 극복했지만, 저는 퇴사로 극복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