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정환 Mar 18. 2022

그의 글에서 빠진 것

토니와 수잔 /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문학을 전공한 수잔과 변호사가 되려던 에드워드가 있었다. 어느 날 에드워드는 수잔에게 변호사가 되기를 멈추고 글을 쓰고 싶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는 순탄치 않았고 영문학과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글쓰기 초보였던 그의 글을 검수해주며 읽던 그녀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한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아내인 셀레나의 폭력성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아파트 이웃이자 의사인 아놀드와 함께 불륜을 저지른 뒤 결국 그와 재혼한다.


이후 20년이 지나고 아놀드의 린우드라는 어린 내연녀의 존재를 알지만서도 아이들과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던 수잔에게, 어느 날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그녀만이 할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책의 검수를 부탁한다.



둘이 부부였던 비현실적인 시절에는 에드워드가 쓴 글을 그녀가 읽어야 하는지가 주된 쟁점이었다. 글쓰기 초보였던 그의 글을 수잔은 의도했던 것보다 더 가혹하게 비평했다. 그 민감한 주제 때문에 수잔은 곤혹스러웠고, 에드워드는 분개했다. 그런데 그 편지에서 에드워드가 이 소설은 정말 잘 썼다고 했다. 그동안 삶과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기교에 대해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보여주고 싶다며, 그녀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에게 최고의 비평가 였다고, 이 소설이 장점은 많지만 유감스럽게도 뭔가 빠졌는데 그녀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그녀라면 뭐가 부족한지 알고 말해줄 수 있을 거라고. 천천히 읽어보고, 뭐든 떠오르는 대로 몇 마디 적어달라고 에드워드는 말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의 피난처로 그녀는 에드워드가 준 책을 읽기 시작한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책은 토니라는 수학교수가 차를 타고 가던 중 괴한들과 시비가 붙어 아내와 딸이 그들에게 납치되어 강간당한 뒤 죽게 되고, 혼자 살아가던 중 시한부 선고를 받은 바비 엔더스라는 경찰이 자신은 문명인이라며 복수를 망설이는 토니로 하여금 법의 테두리 밖에서 잔인하게 괴한들에게 복수를 하게 하는 끔찍한 이야기인데, 수잔은 그 이야기에 빠져들고 그 책을 쓴 에드워드에 대한 어떤 감정이 생겨 에드워드와 약속을 잡지만 에드워드는 그녀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책 속의 토니의 이야기는 시끄럽고 폭력적인 반면, 책 밖의 수잔의 이야기는 굉장히 조용하지만 불안하고 서늘하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두 이야기 속 주인공인 토니와 수잔이 오히려 어딘가 닮아있다. 토니와 수잔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책을 반으로 쪼게진 부분에 각각 써있는 이유인 듯 하다.


[책과는 조금 다르게 각색되어 영화화 된 녹터널 애니멀스에서는 제이크 질렌할이 에드워드와 토니의 역할을 맡아 그 두 인물을 같은 인물로 인식하게끔 하지만]


언뜻 책의 줄거리만 생각해보면, 수잔은 매우 불쌍한 피해자인 것 처럼 보이지만, 과거의 에드워드에겐 자신의 꿈을 짓밟고 불륜을 저지르고 자신을 버린 가해자였다.


가해자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스스로 기억하지 못한다. 또 수잔처럼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에드워드처럼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과거 문학을 전공했음에도 수잔은 글을 쓰는 것을 포기했었다. 독자라는 존재를 글을 '오염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왜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항상 글쓰기보다 다른 일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돼서 쓰지 않았다. 그게 뭔데? 남편,아이들, 전문대 신입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거? 수잔에게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 출판 과정의 뭔가에 미묘한 혐오감이 들었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글을 쓴다고 분투하던 시절에 그런 걸 봤다. 그리고 직접 글을 쓰려고 했을 때 느꼇다. 다른 사람이읽을 글을 스기 위해 정직하지 못하게, 미묘하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한다는 불편한 느낌. 그때 글을 쓰면 그런 기분이 들었고, 심지어는 지금도 편지나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간단한 글을 쓸 때 그런 마음이 든다. 이런 글쓰기는 그녀가 뭐라고 하건 혹은 하지 않건 거짓말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존재, 그게 수잔이 글쓰기를 포기한 주된 원인이었다. 다른 사람, 즉 독자라는 존재가 그녀가 쓰는 글을 오염시킨다. 독자의 편견, 취향, 독자는 그녀와 다르다는 점, 그리고 그녀가 무슨글을 써야 할지 할리우드 제작자나 시장 조사원처럼 통제하려들까봐 싫었다.


하지만 그녀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에드워드의 글을 계속 검수한 독자였다. 그녀의 생각에 따르면 그녀는 에드워드의 글을 그동안 오염시켜왔던 것이 아닐까


20년이 지나 자신의 글에 무엇이 빠졌는지 말해달라는 에드워드의 질문에 수잔은 답을 내렸지만 그녀의 답을 에드워드는 들을 생각이 없다.


그의 글에서 빠진 것은 수잔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목숨보다 소중할 수 있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