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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Dec 19. 2019

[제멋대로 영화보기 #1] 바그다드 카페

황량한 사막 속 바그다드 카페가 피어오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법

 2년 전, <바그다드 카페>를 보았다. 그 당시엔 알록달록 이쁜 색상 카페가 인상적이었지만 영화 자체는 그냥 평범했다. 특별히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요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이 영화를 다시 만난 건 저번 주 토요일이었다. 요즘 참여하는 영화 토론 동아리에서 누군가 이 영화를 발제 영화로 선정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본 <바그다드 카페>는 2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똑같은 영화인데 2년 전과 2년 후의 감상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그때의 나는 큰 걱정 없이 주어진 학업만 충실하면 되었던 대학생이었지만 지금은 하반기 공채에서 실패의 아픔을 겪고 조급함만 늘어난 취준생이다. 마음이 편안할 때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내가 불안하고 초조하니 이 영화가 정말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던 독일 여자 '야스민'은 모하비 사막 한복판에서 남편과 싸우고 갈라서게 된다. 한편 모하비 사막에 덩그러니 놓인 바그다드 카페. 이곳엔 가끔가다 새로운 발걸음들이 들리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할리우드 출신 화가 '콕스', 문신 그리는 여자 '데비', 종업원 '카후엔가', 그리고 카페를 운영하는 '브렌다'와 그 가족들만 함께 머물고 있다. 어느 날 브렌다는 커피 머신을 사 오랬더니 이상한 보온통만 주워온 남편을 심하게 나무라고 쫓아낸다. 단순히 커피 머신을 안 사 왔기 때문이라기 보단 뭐하나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일상이 누적되어 폭발한 모습처럼 보였다. 브렌다가 남편을 쫓아낸 지 얼마 안 있어 정처 없이 떠돌던 야스민이 바그다드 카페로 오게 된다. 

   


  이 두 여자의 첫 만남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남편의 뺨을 매몰차게 때리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갈 길을 가다 카페에 들린 야스민은 더위 때문인지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이다. 한편 자신이 쫓아냈지만 주체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던 브렌다는 의자에 앉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묘하게 상황도 다르고 처음 만나는 순간 한 명은 땀을 닦고 한 명은 눈물을 훔치는 영화의 디테일이 재밌었던 순간이다. 두 여자를 동시에 잡아준 컷을 보면 어딘가 긴장감까지 느낄 수 있어 신선하다. 


 카페에 온 야스민은 투숙까지 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서서히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우선 야스민은 자신의 객실 청소에 그치지 않고 브렌다의 사무실, 심지어 카페 밖에 큰 구조물에 매달린 간판까지도 청소한다. 야스민이 공짜로 카페에 머무는 중이라면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가지만 그녀는 여행자 수표로 자신의 몫을 성실히 지불한 고객이다. 서비스를 해주는 입장이 아니라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런 행동은 영화를 보는 우리로 하여금 물음표를 던져준다. 어쩌면 오지랖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브렌다도 이런 야스민의 오지랖(?) 넓은 행동을 좋게만 보지는 않는다. 안 그래도 수상한데 더더욱 미심쩍은 행동만 하니 좋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야스민은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먼저 피아노 치는 아들 살 로모. 그는 영화 내내 피아노만 친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다. 심지어 엄마인 브렌다는 그가 손님 있을 때 피아노 치면 구박 일색이다. 그런 그의 음악에 유일하게 귀 기울여주는 이가 바로 야스민이다. 야스민이 실제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야스민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 이란 것이다. 


 브렌다의 딸인 필리스는 맨날 남자 만나는데 빠져있고 모하비 사막 속 갇힌 카페보단 바깥에서 즐거움을 찾는 아이였다. 필리스는 야스민을 만나고 카페 안에서 머물 이유를 찾게 된다. 야스민이 가장 먼저 마음을 여는 대상이 필리스 인 걸 보더라도 필리스는 원체 사람을 좋아하고 밝은 에너지의 아이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그녀의 좋은 모습은 야스민을 만나 훨씬 더 긍정적으로 표출된다.


 브렌다는 야스민의 이 모든 것들이 마음에 안 든다. 어쩌면 카페 주인이자 엄마인 자신이 나서서 해야 할 일을 야스민이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싫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브렌다는 야스민에게 매몰찬 한마디를 던진다. '네 아이들 한 테나 잘해라!' 그러자 야스민은 자기는 잘해줄 아이가 없다는 식으로 답을 한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브렌다의 마음도 야스민에게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함부로 말한 것에 대해 미안하기도 하고 야스민의 행동의 원인을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누구나 낯선 사람이 먼저 자신에게 다가올 때 그 진의를 의심해볼 수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호의는 그 뒤에 감춰진 진짜 목적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 때문에 우리는 때로 호의적인 사람을 경계할 때가 있다. 브렌다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렌다는 결국 야스민이 진정 좋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고 마음의 가족으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서로 피로 묶여 있진 않아도 바그다드 카페에 오래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유사 가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포인트는 작년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담고 있는 메시지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제도상의 문제 때문에 잠시 바그다드를 떠났던 야스민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런 그녀에게 콕스는 아주 매력적인 프러포즈를 건넨다. 콕스는 바그다드 카페의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야스민의 참모습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던 남자이기도 하다. 알콩달콩 사랑을 하며 미국에 머물 영주권도 생길 수 있으니 자신과 결혼하자는 콕스에게 야스민은 '브렌다랑 상의해 볼게요'라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엔딩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렇게 끝나는 영화를 보고 찝찝함을 느낄 수도 있고, 야스민이 중요한 결정을 주체적이지 못하게 한다며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브렌다랑 상의해본다는 말은 그동안 바그다드 카페에 야스민이 끼친 긍정적 영향 못지않게 야스민도 이 카페 안에서 나름대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된다. 야스민에게도 브렌다는 이제 중요한 결정까지도 함께 나눌 매우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황량한 모하비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황폐한 모습의 사막을 별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붉게 물든 노을, 혹 다른 색상의 사막을 비춰준다. 그리고 카페 안은 어찌나 알록달록하고 이쁜 지, 이곳이 사막이라는 걸 잊게끔 만들어 준다. 나는 이런 것마저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황량한 사막이라도 알록달록 바그다드 카페가 피어오르면 아름답고 편안하게 보이는 것처럼, 팍팍한 삶 속에서도 바그다드 카페 같은 소박한 편안함이 있다면 우리 인생도 꽤 괜찮은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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