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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Jan 03. 2020

[제멋대로 영화보기 #4] 와일드라이프

우리 마음에 불이 꺼지고 난 후

 배우 '폴 다노'를 처음 알게 된 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였다. 이 영화 속에서 그는 젊은 목사 '폴 선데이' 역할을 맡아 시종일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주었다. 종국에는 연기력으론 정평이 나있는 명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 전혀 밀리지 않는 광기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폴 다노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도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의 '제이'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속 '폴 다노'

 그랬던 폴 다노가 이번엔 감독으로 돌아왔다. 배우의 연출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지만 폴 다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인지 뭔가 그가 만드는 영화는 미스터리하고 신비로움이 가득할 것만 같았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본 그의 영화는 생각보다 담백했다. 보여주기 식 연출을 하거나 특이한 서사를 들고 오지도 않았다. 단지 미성숙한 부모와 그 곁에서 일찍 철이 들어버리고 마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고 왔을 뿐이다.


 줄거리는 다르지만 어딘가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이 떠오르기도 했다. <타짜>의 '아귀', <추격자>의 '엄중호' 등 강한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각인된 김윤석 배우가 연출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마초적인 센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들고 온 <미성년>은 마초적인 것과는 완전 거리가 먼 가족의 이야기였다. <와일드라이프>처럼 어딘가 미성숙한 부모를 틈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서사를 담고 있다. 국적도 나이도 출연작도 하나 안 겹치는 두 사람이지만, 첫 연출작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비슷하다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부모(어른)의 성숙과 가정이라는 주제가 만국 공통으로 유의미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몬태나 주로 이사 온 '조'(에드 옥슨볼드)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다. 아빠 '제리'(제이크 질렌할)는 기존 다니던 직장으로부터 일방적 해고 통보를 받고 며칠간 고민하고 힘들어하다 산불 진화 작업을 하는 곳에 자원한다. 집을 떠나 위험한 곳에서 눈 내리기 전까지(눈이 내린다는 건 산불 진화 종결의 의미) 작업을 하겠다는 남편의 결정을 아내 '자넷'(캐리 멀리건)은 이해할 수가 없다. 반대를 무릅쓰고 제리가 떠난 후 자넷과 조 단 둘만 남게 된다. 이때부터 자넷의 외도가 시작된다. 자넷은 그동안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봉인을 푼 듯 남편도 자기 멋대로 하니 나도 멋대로 하겠다는 식으로 막 나가기 시작한다. 당사자가 아님에도 이 모든 걸 감당하는 건 오로지 어린 조의 몫이다.


 영화를 보며 어른들이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다. 아무래도 영화가 아들 조의 입장을 더 반영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영화 속 어른들의 행동은 너무나 무책임해 보였다.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그에 따라온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지 몰라하는 모습은 어린아이와 다름없어 보였다.

 영화 속에서 부부가 파국을 맞을 거라는 징조는 계속 보였다. 우선 둘은 대화가 부족했다. 부부는 직접적으로 대화하기보단 아들 조를 메신저 삼아 대화하거나 조에게 하소연했다. '너도 이제 이런 걸 들어도 될 나이지'라는 부모의 말에 조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든 말든 관계없이 제리와 자넷은 각자 처한 상황과 이해할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조에게 털어놓는다.   

 대화가 부족하다 보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넷은 제리가 왜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시급 1달러를 제공하는 산불 진화 작업을 나가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자존심 센 남편이 고집을 피우다 자신과 아들을 버려두고 떠난다는 자신의 해석을 유지할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제리는 잠깐 산불 진화 작업하고 오겠다는 게 뭐가 그런 게 힘든 일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 기간을 못 참고 외도를 저지른 아내와 상대방 '밀러'에게는 불 같이 타오르는 분노만 일어난다.


 이런 상황 속 오히려 다 큰 어른 같은 건 아들 조다. 아빠의 실직에 일자리를 구하고 막 나가는 엄마를 대신해 화장실 변기도 고치고 저녁거리도 사 온다. 자넷의 외도를 목격하고도 그녀를 강하게 비난하지 않는다. 아빠를 여전히 사랑하긴 하냐고 물어볼 뿐 그녀의 행동 자체에 강한 태클을 걸지 않는다. 모든 충격과 슬픔은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감당해낸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너는 어리기 때문에 아직 우리를 이해할 수 없어',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 해야 하니까 들어가 있어' 같은 뉘앙스로 조에게 말하며 그를 어린애 취급한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조가 부모를 향해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냐?' 진지하게 물어볼 때 정작 아무런 답도 내리지 못하는 부모의 모습은 어리면 미성숙하다는 그들의 관념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조를 연기한 에드 옥슨볼드는 감독 폴 다노와 비슷한 인상이 있었다. 영화 내내 부모의 눈치를 살피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조는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할 수 없는지 알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런 표정이나 연기,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외관까지 폴 다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 말고 또 하나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불이다. 이 불은 영화 전반에 걸쳐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영화 속 클라이맥스까지 장식하고 있다. 영화 속에 나타난 몬태나 주는 참 산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불이 한 번 붙으면 꺼질 줄을 모르고 계속 타오른다. 산불 진화 작업 자체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불에는 언젠가 그 끝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 인생도 마찬가지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로 사람도 불이 붙을 수가 있다. 어떤 사건이 촉매제가 되어 인생을 뒤흔들 불이 일어날 수도 있고 감정이란 불에 휩싸여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또 원하지 않아도 타인에 의해 불타오르게 될 수도 있다. 산불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붙는 불도 언젠간 꺼지기 마련이다. 산불이 일어나면 많은 나무들이 죽지만 그것들은 새로운 연료가 될 수도 있고 죽은 공간에서 재생이 일어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던 산불이 꺼진 후에도 산은 무너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것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붙은 불은 어떨까? 활활 타오른 마음속 불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해 줄 연료가 될까, 아니면 산불 후 남은 고목처럼 고스란히 아픈 재로 남아 있을까. 그리고 다시 재생할 수 있을까. 뭐가 되었든 제멋대로의 삶(와일드라이프)이란 불이 꺼진 후 이 가족은 전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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