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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Jan 07. 2020

[제멋대로 영화보기 #5] 해치지않아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

#본 영화는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망해가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이 직접 동물 탈을 쓰고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를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황당한 사기극이지만 영화 소재로서는 매우 재밌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계속 똑같은 그림이 반복되거나 터무니없이 유치하게 빠지진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영화는 우려했던 것보단 괜찮았다. 동물 탈을 쓴 배우들의 연기에 기대어 같은 장면을 계속 반복하지 않았고, 코미디로 시작해 마지막에 억지 감동을 선사하는 유형의 영화도 아니었다. 무리수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좀 있었지만 크게 감상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종합적으로 착한 코미디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크게 꼬는 거 없이 무탈하게 순차적으로 진행되다가 영화 후반부로 가서는 익숙하고 뻔한 길로 마무리를 짓는다. 하지만 <해치지 않아>는 줄거리보다는 '캐릭터'와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개그 포인트'로 승부를 보는 영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예고편을 봐선 안 되는 영화다. 필자는 영화를 다 보고 예고편을 보았는데, 만약 순서가 뒤바뀌었다면 재미가 많이 떨어졌을 것 같다. (예고편을 거의 영화 속 개그 포인트 모음집처럼 만들어 놓았다.) 


 우선 캐릭터들이 재밌게 잘 짜였다. 극 중 인물들의 실제 성격과 그들이 연기해야 하는 동물들의 매치가 적절하다. 그중에서도 박영규 선생님이 연기한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박영규 선생님은 드라마 <순풍 산부인과>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된 인상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도 맡은 역할 자체는 유사했지만 콘셉트를 하나 잡고 우직하게 밀어붙이니 오히려 기존 이미지랑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았다.

 다만 캐릭터들의 개성과 반대로 그들의 감정선의 변화는 좀 아쉬웠다. 현실감 있게 캐릭터를 설정해 놓고 감정 변화는 극적으로 가져가 버리니 좀 기시감이 들었다. 몰입을 깰 정도로 심하진 않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정도를 걷는 착한 코미디 영화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개그 포인트들도 좋았다. 그냥 보고 있으면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꽤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탈을 쓰고 동물 연기를 해 동물원 관람객 수를 늘린다는 행위가 은근한 긴장감이 있었다. 영화가 동물원 직원들의 동물 연기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에 약간의 긴장감과 재미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칫하면 비현실적이고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인데, 감독의 연출 감각이 돋보였던 것 같다. 확실히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이층의 악당>이란 괜찮은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다웠다.

 아쉬운 점은 고릴라를 활용한 개그였다. 유독 작위적인 느낌이 좀 더 강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동물원 속에 갇힌 동물들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필자도 동물 보는 걸 좋아해 어렸을 때 동물원을 자주 가곤 했었다. 활기차게 기대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동물들을 보며 환호했지만 축 처지고 늘어진 동물들을 보며 실망하기도 했다. 특히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유독 힘이 없어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TV에서 보듯 우렁찬 포효를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쯤에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고자 한다. 한창 생각이 어릴 때 동물원에서 유리 우리에 갇힌 목도리도마뱀을 발견했다. 필자가 아는 목도리도마뱀은 목 주위가 멋있게 펼쳐져 있는 동물이었는데 유리 속에 들어 있는 건 그냥 늘어진 도마뱀이었다. 비싼 돈 내고 동물원에 왔는데 볼 건 다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린 후 목도리도마뱀의 목을 펼치기 위해 온갖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유리를 쿵쿵 두드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목도리도마뱀은 목을 펼치지 않았다. 생각만 했으면 모르겠으나 그다음 이어진 필자의 행동은 매우 어리석었고 지금도 깊이 반성하는 부분이다.

   


 영화 속에선 직원들이 동물 탈을 쓰고 연기하는 동물들을 관람객들이 실제 동물이라고 여긴다. 관람객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동물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음료수 캔을 던지기도 하고 고함을 치기도 한다. 이는 어리석었던 필자의 행동을 연상시켰다. 그런 행동의 기반에는 인본주의 사상이 깔려있다. 동물의 생존권, 안전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당한 재화를 지불하고 들어온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동물을 연기하는 장면을 보니 비로소 동물들의 고충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잠깐 머물며 동물을 보고 갈 뿐이지만 그들은 계속 그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한다. 그들 중 일부만 동물을 괴롭힌다고 해도 동물들은 같은 스트레스를 매일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셈이다.  


 동물원의 존재 자체가 어쩌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우리에게 갇힌 동물들을 보며 즐거워할 권리를 부여해주지 않았다. 만일 동물원 철창 속에 사람이 들어있었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정말 동물을 좋아하고 그들을 생명처럼 여긴다면 동물원의 주인이 관람객이 아닌 동물들이라는 인식과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동물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게 할 수 있을지 더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극단적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그런 완벽한 동물원이 생기기 전까진 동물원을 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들은 우리를 해치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해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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