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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Jan 09. 2020

[제멋대로 영화보기 #6] 디어스킨

사슴과 욕망이란 키워드로 들여다보기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제72회 칸영화제, 그중 감독주간 개막작이었던 영화 <디어스킨>이 새해 첫 주에 개봉했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짧았지만 그 짧은 러닝타임 안에 괴이한 내러티브가 알차게 들어서있었다. 영화를 이끄는 주인공 '조르주' 역은 프랑스의 명배우 '장 뒤자르댕'이 맡아 연기했다. 개인적으로 장 뒤자르댕 하면 영화 <아티스트>에서 맡았던 배역인 '조지'의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얼굴이 떠오른다.(장 뒤자르댕은 이 영화로 2012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조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연기였다.



 <디어스킨>은 조르주라는 한 남자가 전재산에 가까운 돈을 투자해 100% 사슴 가죽 재킷을 구매하며 시작된다. 조르주는 재킷을 구매할 때 서비스로 캠코더도 하나 받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결혼 금반지를 담보로 모텔 생활을 시작한다. 어느 날, 조르주는 술을 마시다 한 웨이트리스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그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직업을 묻는 질문에 얼떨결에 영화감독이라고 답해버린다. 실제론 영화감독도 아니고 그냥 사슴 재킷 살 때 받은 캠코더 몇 번 찍었을 뿐이다.

 그날 밤, 사슴 가죽 재킷이 그에게 말을 건넨다. 둘은 서로의 꿈을 공유하는데, 그것은 바로 조르주가 '세상에서 재킷을 입은 유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르주는 점점 광기에 휩싸여간다.    


 이 영화는 참 괴이하다. 영화의 줄거리를 글로 옮겨 적는 과정도 쉽지가 않다. 한 씬씩 떼어놓고 보면 어떤 장면인지 알겠으나 그것을 한데 모아놓으면 매우 난해하다. 이런 영화가 리뷰 쓰기가 가장 힘든 유형의 영화이다. 보고 나면 여러 가지 생각은 드는데, 무엇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고 정리도 잘 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필자가 나름대로 영화를 보며 해석한 내용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영화는 주인공인 조르주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가 결혼한 적이 있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원래 하던 일이 뭔지, 도대체 왜 재킷에 집착하는지, 캠코더로 영상들을 왜 찍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영화 속에서 드러난 정보들을 보면 조르주는 큰돈을 털어 사슴 가죽 재킷을 사고 그 재킷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재킷 입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남들의 재킷을 벗긴다. 처음에는 대화를 통한 부드러운 방식으로 접근하다가 나중엔 그냥 살인을 저지른 후 재킷을 벗긴다. 그 모든 과정은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긴다. 조르주는 처음엔 거짓말로 영화감독이라 했지만 이후 영화 관련 서적도 읽고 영상을 찍으며 웨이트리스에게 편집까지 부탁한다. 마치 본인이 영화감독이 된 것 마냥 행동한다. 이렇게 단순히 영화 스토리만 보면 사슴 가죽에 미친 사이코패스 이야기 같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바라보면 영화가 새롭게 다가온다.


먼저 사슴을 생각해보자. 영화 속엔 실제 사슴의 모습이 몇 컷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조르주는 집요할 정도로 100% 사슴 가죽에 집착한다. 처음엔 재킷으로 시작했다가 영화가 진행될수록 모자, 신발, 바지 그리고 장갑까지 100% 사슴 가죽으로 맞춘다. 마침내 전신을 슴 가죽으로 덮었을 때, 그는 마치 한 마리의 사슴이 된다. 물도 사슴처럼 마시고, 사슴처럼 들판을 뛰어 댕기다, 사슴처럼 사냥꾼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100% 사슴 가죽 재킷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동물이 희생을 치른 것과 다름없다. 혹자는 동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만약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인간이 입을 사슴 가죽 재킷엔 저주의 영혼이 깃들지도 모른다. 죄 없이 희생된 사슴의 한이 서릴지도 모른다. 실제 영화 속 조르주가 저주를 받은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확실히 조르주는 사슴 재킷 속에 깃든 영혼과 교감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희생된 사슴의 대변인이 된다.


 조르주가 재킷을 입은 유일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사실 사슴의 소망이 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재킷에 쓰일 가죽으로 동물들이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일 수 있다.


 영화 속 조르주를 따라다니며 지켜보던 소년이 있다. 그러다 그 소년은 조르주가 쫓아내려 던진 돌덩이를 맞고 피 흘리며 쓰러지게 된다. 영화의 결말에 사슴처럼 변한 조르주에게 총을 쏘는 사냥꾼은 그 소년의 아버지다. 이 난해한 장면도 조르주 대신 사슴을 대입해보면 이해가 간다. 보통 어린아이들이 멀뚱하게 사슴을 지켜보곤 한다. 그러다 위협을 느낀 사슴의 공격에 해를 입는다. 화가 난 아빠는 자신의 아들에게 해를 가한 사슴을 죽여버린다.


 마지막 조르주가 죽고 난 후 그가 입고 있던 사슴 가죽 재킷을 웨이트리스가 벗기고 본인이 입는다.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첫 째는 앞서 쭉 이야기한 흐름대로 사슴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사슴이 죽고 나서 가죽을 남긴 것이다. 두 번째론 이런 웨이트리스의 행위를 욕망(광기)의 대물림으로 보는 것이다.


 이어서 영화 속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욕망이다. 그것도 광기 어린 욕망. 앞서 조르주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재킷 입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걸 사슴의 소망이라고 이야기했었다. 또 다른 해석으로 이것은 조르주의 강한 욕망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재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죽여주는 스타일이라고 자화자찬한다. 다른 건 몰라도 스타일 하나엔 끔찍한 자부심이 있는 조르주는 진심으로 이렇게 멋진 재킷은 자신만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실제로 자신의 욕망에 먹혀 광기만 남게 된 것이다. 앞선 해석과 연관 지어 이런 조르주의 욕망을 사슴의 혼이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속 웨이트리스는 조르주의 욕망을 키워주는 조력자였다. 그녀 때문에 조르주는 영화를 찍게 되었고, 그녀가 더 많은 액션과 피를 원했기 때문에 조르주는 기존의 부드러운 방식에서 벗어나 살인을 시작했다. 옆에서 시종일관 조르주를 부채질해주던 그녀가 마지막의 욕망의 재킷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타당하다.


 

 80분도 안 되는 짧은 영화인데도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과 발견하지 못한 상징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 번만 보고 나선 더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기 힘들었던 것 같다. 조르주가 왜 캠코더로 영화를 찍었어야 했을까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아마 캠코더는 '다시는 재킷을 입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은 살리고, 끝까지 재킷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죽이는 심판의 과정을 기록한 것 혹은 지켜보는 제삼자의 시선이 아닐까. 어떤 것을 의도했는지는 감독만이 명확하게 알고 있겠지만 영화란 매체는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의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버전의 <디어스킨>이 탄생할 것이다. 골치는 좀 아프지만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는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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