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유현 Nov 24. 2021

내부의 갈등은 역시 외부의 적으로

영화 <트립> (I ONDE DAGER , THE TRIP , 2021)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삼류 막장 드라마의 감독을 맡고 있는 '라스'는 직업이 배우인 아내 '리사'와 함께 아버지 소유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날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휴가 준비물치곤 라스가 챙기는 것들이 심상치 않다. 망치, 톱, 두꺼운 로프 등등. 그리고 별장에 도착해선 호수 주변에서 크고 무거운 돌까지 따로 챙겨둔다. 이 준비물의 정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면 위로 드러난다. 라스는 자신을 두고 딴 남자와 바람이 난 아내 리사를 휴가 중에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

 그가 계획대로 아내의 뒤통수를 치려고 한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리사가 테이저 건으로 라스를 역제압한다. 알고 보니 리사 역시 이번 휴가 중에 라스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리사는 라스가 진 빚 때문에 재정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둘 다 상대방을 자연사로 처리하고 사망보험금을 타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살인 계획이 틀어지면서 둘은 진흙탕 싸움에 돌입한다. 그런 부부 앞에 탈옥한 범죄자 3인방이 나타난다. 탈옥범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망가다가 쉴 곳이 필요했고 그렇게 사람이 없는 듯 보이는 별장에 들어왔던 것이다. 부부가 오기 전부터 탈옥범들은 별장에 있었고 다락방에 숨어있었는데 진흙탕 싸움 도중 발사된 총알이 다락 천장을 무너뜨리며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었다. 정체가 드러난 탈옥범들은 생각보다 더 무서운 인물들이었고 이제 부부는 서로와의 싸움을 멈추고 살기 위해 탈옥범들과 투쟁하게 된다.

     


 

 이 영화는 <월요일이 사라졌다> (What Happened to Monday? , 2017)를 연출한 노르웨이 출신 영화감독 '토미 위르콜라'가 넷플릭스와 손잡고 만든 신작이다. 넷플릭스에서 21년 10월 15일에 공개되었다. '소지섭'과 '김병옥'배우를 닮은 외모로 친숙한 '엑셀 헨니'와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로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해커 '리스베트 살란다'역을 맡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누미 라파스'가 각각 라스와 리사 역을 맡았다. 여담으로 영화 속에서 단어를 만드는 게임을 하면서 라스와 리사가 스웨덴어로 된 단어를 인정할지 말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같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로 사용하는 언어가 꽤 유사하고 리사 역의 누미 라파스가 실제 스웨덴 출신이기에 넣은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코미디, 공포의 장르 특성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액션도 일부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고어한 장면도 심심찮게 나오는 편이다. 총에 날아간 손, 그리고 잔디 깎는 기계에 배가 갈려 내장이 살짝 보이는 장면도 나온다. 필자는 공포, 스릴러 장르는 좋아하지만 그 하위 장르 중 고어 장르는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영화 내 고어 요소는 크게 거부감이 없는 정도다. 영화 톤 자체도 가벼운 편이라 무섭기보단 재밌다.




인상적인 점


 영화 초반부가 구성적으로 너무 재밌었다. 시간순으로 진행되다가 분기점에 도달했을 때 다른 인물의 관점에서 숨겨진 서사가 등장한다. 그러면서 영화 속에 잔잔하게 깔린 복선들이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관객은 처음에 라스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다. 그러다 라스를 제압하는 리사를 보는 순간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반격한 거지?' 이 의문을 영화는 바로 해소해준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 리사의 시점으로 숨겨진 서사를 보여준다. 그제야 관객은 리사 역시 라스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불어 리사의 친구가 던진 '사냥 잘하세요~'라는 뜬금없던 대사의 의미도 깨닫게 된다. 흔히 떡밥 회수라고 하는 이런 장면은 이후로도 쭉 등장한다. 제3의 인물 빅토르가 리사에게 '곧 보자'라고 한 장면과 빈 별장에 막 들어왔을 때 라스가 과자 부스러기를 밟는 장면은 이후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완벽하게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마치 자로 잰 듯이 딱딱 떨어지는 연출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방식이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나열하는 것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나름의 지적인(?) 쾌감을 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최근 공포영화 경향에 잘 들어맞는다. 10년 전만 해도 공포하면 무서운 귀신이나 살인마가 나와서 주인공을 끔찍하게 괴롭히고 그 과정에서 공포감을 주었다. 마지막엔 무서운 상황이 종결되거나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열린 결말을 보여주곤 했다. 최근에는 이런 정통 공포 영화로는 큰 재미를 못 본다. 이미지는 끔찍하게 잔인하고 공포스럽지만 상황은 코미디인 복합적인 영화나 가해자 = 강자, 피해자 = 약자라는 공식을 전복시켜 피해자가 가해자를 역관광하는 공포영화들이 주 경향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느덧 제작사 이름 하나만으로도 믿고 보는 팬들을 탄생시킨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영화들이 주로 그렇다. 블룸하우스의 <프리키 데스데이>, <헌트> 말고도 '사마라 위빙'이 돋보이는 <레디 오어 낫>, '제임스 완' 감독의 신작 <말리그넌트>, 올해 개최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빌어먹을: 웰컴 투 헬> 등의 영화에서 이런 최신 공포영화의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처럼 <트립>도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별장' 그리고 탈출할 때 사용하는 '보트'는 할리우드 공포영화에서 꽤 익숙한 소재다. 간단히 떠올려봐도 별장은 <제럴드의 게임>, 보트는 <어스>가 떠오른다. 물론 땅덩이가 넓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우리나라의 아파트만큼이나 흔한 배경이라 겹쳤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이 배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순전히 마지막 결말 때문이다. 라스와 리사는 끔찍한 일을 겪은 후 이를 돈벌이로 사용하기 위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제작한다. 감독이 이를 의도하고 넣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리우드가 좋아할 만한 배경과 소재를 풍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결말이었다.    


아쉬웠던 점


 이 영화엔 앞서 나열한 인상적인 점을 전부 상쇄시킬 만큼 큰 아쉬움이 존재했다. 극의 메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탈옥범들과 부부의 사투가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점이다. 계속되는 시점 변경으로 숨겨진 서사가 드러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줬던 부분의 러닝타임이 40분 정도고 이제 그 이후 1시간 정도가 탈옥범과 부부의 사투이다. 가장 재밌어야 하는 부분인데 오히려 초반보다 재미가 떨어진다. 반복되는 상황이 많고 질질 끄는 듯한 느낌도 있다.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 역전되고 재역전되는 방식으로 1시간을 보여준다. 사투가 끝이 났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드디어 끝이구나' 였다.




 내부의 갈등은 역시 외부의 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다만 서로를 죽이려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 직전까지 갈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는데 이렇게 깊은 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도 캐릭터의 감정 변화가 조금 튄다고 생각했지만 겪어본 적이 없는 이상 알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노르웨이에서 만든 트렌디한 장르영화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킬링타임용으로 한 번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공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