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st Night in Soho , 2021) - 에드가 라이트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에드가 라이트' 감독을 좋아한다. 원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들을 제일 좋아하고 <가오갤> 시리즈의 '제임스 건', <킹스맨> 시리즈의 '매튜 본' 감독의 영화들처럼 톡톡 튀는 요란한 영화를 사랑하는지라, 그 연장선에 있는 에드가 라이트를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건 <새벽의 저주>를 패러디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 덕분이다. 그때는 그냥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유머를 잘 이끌어 낸다 정도였다. 웃긴 패러디 영화감독인 줄만 알았다. 이후 <뜨거운 녀석들>, <스콧 필그림>, <지구가 끝장 나는 날> 등의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나 대사를 통해 코미디 요소를 잘 나타내는 것뿐 아니라 영화 속 OST 선정도 잘하고 편집도 기가 막히고 세련된 영상미를 만들 줄 아는 감독이었던 것이다.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감독의 이런 장점이 폭발했다. 리드미컬한 편집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면 추천하는 영화다.
바로 그 에드가 라이트가 신작으로 만든 영화가 <라스트 나잇 인 소호>다. 전작들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코미디를 배제했다. 장르를 따진다면 미스터리 공포 영화다. 감독 필모에 이런 시도 자체가 처음이라 결과물이 너무 궁금했다. 막상 보고 나니 장르가 다르고 특유의 리드미컬한 편집을 덜어내도 여전히 에드가 라이트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영화였다. 지금부터 간단한 감상평을 남겨볼까 하는데, 조금 두서가 없을 수도 있어서 키워드를 정해 그 키워드를 바탕으로 영화를 풀어가 볼까 한다.
3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 꿈 많고 재능 있는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가 악인 '잭(맷 스미스)'의 인도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경험하며(영화에선 쇼 엔터 사업이 주로 나오지만) 끝내는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주인공 '엘리(토마신 맥켄지)'는 꿈을 통해 샌디의 모습을 본다.
이야기만 보면 그다지 새롭지 않은 소재에 타입슬립과 같은 시간을 초월하는 형식을 지닌 영화다. 아마 이 이야기를 흔한 상업영화 톤으로 연출했으면 뻔한 범작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에드가 라이트의 스타일이 입혀지니까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영화에서 창녀로 전락한 샌디가 매일 밤 찾아오는 남자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그 모습을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게 엘리가 지켜보는 씬이 있었다. 보통 상업영화 톤이라면 이 씬에서 드나드는 남자들을 표현할 때 교차편집을 사용하거나 패스트모션을 사용해 보여줄 것이다. 에드가 라이트는 이 드나드는 남자들을 마치 여러 개의 레이어를 덧씌우듯 하나로 겹치게 연출했다. 그래서 남자들의 모습은 영화 <야곱의 사다리>에 나오는 얼굴이 문드러진 괴물의 형상과 비슷하게 보인다. 레이어가 겹쳐져 디테일이 조금 튀지만 괴물의 동작은 대체로 일치한다. 셔츠를 벗고 허리띠를 푼다. 허리띠를 풀 때 사운드도 겹쳐서 들린다. 프레임 단위의 차이가 느껴지지만 거의 동시에 허리띠를 수십 명의 남자가 푸는 듯한 임팩트였다. 아마 일반적인 연출이었다면 주인공이 안타깝고 가해자들은 혐오스러운 느낌을 받는 데 그쳤을 거 같다. 그런데 분위기와 표현방식이 짧은 시간 안에 훨씬 많은 정보를 줬고 그 순간 주인공과 동일시되며 전에 없는 몰입을 한 거 같다.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에드가 라이트 영화 이야기할 때 제일 빼놓을 수 없는 게 음악 같다. 이번 영화에선 1960년대 음악들이 주로 흘러나온다. 그중에서도 샌디 역의 안야 테일러 조이가 직접 부른 'Downtown'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노래는 영화에서 꽤 비중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관련된 내용은 '도시' 키워드에서 다뤄볼까 한다. 세대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 많이 들어본 적이 없는데도 60년대 음악이라 하면 굉장히 올드한 느낌이 난다. 뭔가 축 처지는 블루스나 목장을 배경으로 나올 거 같은 포크 송 같은 음악들이 먼저 떠오른다. 과연 이런 음악이 21년에 나올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에 맞을까? 개인적으로 답하자면 아주 영상에 찰떡같이 붙는다. 선곡을 잘하기도 했고 편곡도 일관되게 잘했다.
잔잔한 영화 초반부에는 이 음악들이 주인공 엘리를 관객에게 처음으로 소개하고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중후반부에는 극의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하고 이야기 전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린지(테렌스 스탬프)'가 펍 지하에서 엘리를 기다리며 듣고 있던 노래 가사엔 공교롭게도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여자를 보고 싶지만 이제 세상에 없어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때문에 엘리가 린지를 샌디의 살인마 잭(맷 스미스)으로 더 굳게 의심하게 된다.
영화는 시골에 살던 엘리가 '런던 패션 대학교'에 합격해 도시로 상경하며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 '런던'으로 대표되는 도시의 이미지를 단순히 낯선 것을 넘어 어둡고 불안한 곳으로 관객에게 주입시킨다. 런던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할머니의 걱정, 상경하고 처음 만난 기분 나쁜 택시기사, 쾌락의 유혹으로 가득 찬 거리의 모습 등등 비슷한 맥락의 이미지를 도시에 부여한다.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이런 도시의 이미지는 밝고 희망찬 캐릭터인 샌디를 잠식하고 들어간다. 샌디가 오디션 때 처음 부른 'Downtown'의 노래 가사를 보면 꽤 희망적이다.
저긴 불빛이 훨씬 밝게 빛나요
모든 문제와 염려를 잊게 될 거예요
그러니 다운타운으로 가요 모든 불빛이 밝은 곳으로요
다운타운, 오늘 밤 당신을 기다리는 곳
다운타운, 지금 당장 당신이 좋아질 곳
다운타운으로, 다운타운으로
아마 당신은 도움을 줄 친절한 사람이나
당신을 이해하는 누군가를 발견할지도 몰라요
영화 속에서 부여한 도시 이미지랑은 딴 판이다. 오히려 없던 문제와 염려가 생길 것 같고 누가 날 해할 것만 같은 게 영화 속 도시 이미지였다. 반면 샌디는 엘리처럼 갓 상경해 가수로 성공할 꿈을 꾸는 자신감 넘치는 여인이다. 그녀는 정말로 'Downtown' 노래 가사처럼 도시를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검은색 물감 속 조그마한 흰 물감 같던 샌디는 결국 'Downtown'의 밝고 희망찬 이미지를 잃고 만다. 처음부터 도시의 이미지를 어둡고 불안하게 빌드업한 영화는 결국 다른 색과 융화될 수 없는 어두움을 구축하고 그 안으로 샌디를 끌고 와 평생을 감옥 같은 삶으로 밀어 넣고 파멸시킨다.
거울, 유리의 부서지기 쉬운 속성을 이용한 장면들이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엘리의 꿈(환영) 속 샌디와 젊은 린지가 대화하는 씬에서 엘리는 거울 속에 여전히 갇혀있다. 엘리는 샌디를 구원하고 싶지만 닿지 않는다. 간절하게 둘 사이의 장벽(거울)을 두드린다. 이내 거울이 깨지고 엘리의 두 팔이 샌디를 감싸 안는다. 이 감싸 안는 순간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안야 테일러 조이의 명품 표정연기도 한 몫했다. 이 씬 자체가 엘리의 꿈(환영) 속 장면이지만 엘리와 샌디 사이에 거울은 계속 굳건할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엘리는 사건을 지켜만 봐야 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었고 샌디는 사건을 주도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울이 깨지고 관찰자가 주인공 시점에 들어왔다. 이 자체로 상당히 이질적인 임팩트를 남겼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쯤 엘리를 죽이려 쫒는 샌디의 계단씬도 기억에 남는다. 연출에서 이 계단을 마치 화려한 뮤지컬 무대를 연상시키는 유리 계단으로 보여준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계단을 배경으로 샌디가 엘리를 죽이려고 천천히 올라온다. 그 모습은 마치 과거에 단지 노래로 성공하고 싶었던 그녀가 잭을 따라 위태롭게 계단을 오르는 것과 겹쳐 보였다. 영상 자체만으로 보면 같은 감독이 만든 <스콧 필그림>의 클라이맥스도 떠오른다.
첫 번째 씬에선 거울(유리)의 부서지기 쉬운 속성 때문에 엘리의 염원이 환상 속에서나마 샌디에게 닿을 수 있었고 두 번째 씬에선 이 속성 때문에 상황 자체가 매우 위태롭고 불안하게 보였다. 같은 속성의 소재로 다른 느낌을 준 것이다. 이런 걸 찾아보는 게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