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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Feb 11. 2022

<더 마더> - 주관적인 영화 해석

BABY, 2020 - 후안마 바호 우료아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대사가 없다. 러닝타임 내내 들리는 소리라곤 아기의 울음소리, 자연의 소리, 동물의 소리, 간헐적으로 내지르는 주인공들의 신음과 괴성뿐이다. 서사를 끌고 가는 건 오로지 이미지다. 다행인 점은 아방가르드 영화처럼 파열된 디제시스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물의 행동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사의 줄기가 잡힌다. 대신 대사가 없는 만큼 설명되지 않는 것들도 많고 상징적으로 읽히는 부분들도 많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한 논의가 있을 것 같고 그런 것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였다.


 영화 서사의 큰 줄기는 여자의 출산, (입양자 희망자에게 아기를 넘기는) 브로커에게 넘어간 아기, 아기를 되찾기 위한 엄마의 노력이다. 먼저 여자의 출산이다. 약에 찌들고 술에 의존해서 사는 여자가 아기를 낳는다. 아기는 계속 운다. 참다 참다 여자는 집주인이 알려준 브로커의 번호로 전화해 아기를 넘긴다. 여자는 아기를 사랑하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집 안 곳곳 가족사진이 있지만 찢겨있거나 부서져있는 걸로 봐서 그녀는 행복한 가정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곳곳에 숨겨진 발레의 흔적들은 한 때 프리마돈나였던 그녀가 모종의 이유로 꿈을 접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어쩌면 아기의 임신일 수도 있고 그녀가 약과 술에 중독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녀는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몰랐고 사랑을 줄 여유도 없었다. 이 앞 장면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건 오래된 공갈젖꼭지다. 이 영화에서 공갈젖꼭지는 가짜 사랑을 의미한다고 봤다. 진짜 사랑을 줄 여유가 없는 여자는 아기가 울 때마다 공갈젖꼭지를 물리는 걸로 울음을 그치게 한다.


 다음은 브로커에게 넘어간 아기다. 우선 브로커는 나름의 집단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어떤 이유로 이들이 묶여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외관상 할머니다)와 보디가드이자 잡일을 담당하는 수족 같은 금발의 여자, 손녀 정도로 보이는 다리가 불편한 어린 여자가 브로커 집단의 구성원이다. 이 브로커 집단은 아기를 돈 주고 사들여서 훨씬 비싼 가격으로 아기가 필요한 가정(ex. 레즈비언 커플)에 넘기는 일을 한다. 주목적이 돈인 듯 보이지만 할머니가 왜 아기에 집착하고 브로커를 하는지는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아기를 추모하는 제단이 등장하고 후반부에는 아기의 묘지에 찾아가 우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는 과거 자신의 자녀를 아기일 때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공허하고 슬픈 마음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아기를 지속적으로 접할 수 있는 브로커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봤다. 이러한 관점을 연장하면 할머니의 자녀(입양자녀 거나)로 보이는 어린 여자도 분석해볼 수 있다. 어린 여자는 전형적인 애정 결핍의 모습을 보인다. 계속해서 자신을 꾸미고 코스프레하며 그런 모습을 할머니에게 자랑한다거나 오줌과 생리혈을 아무렇게나 흘리는 모습, 나중에 아기의 공갈젖꼭지를 본인이 목에 걸고 쪽쪽 빠는 모습 등에서 애정결핍이 느껴진다. 추측하건대 아기를 잃은 공허함을 아기로만 채우는 할머니에게 이미 아기의 형태를 넘어 소녀로 접어드는 이 어린 여자는 애정을 주기엔 너무 커버린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브로커 집단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결핍이 있고 기이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금발 여자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추측하기에 정보가 너무 적다. 보이는 것만 보면 그녀는 할머니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고 어쩌면 어린 여자처럼 친 자녀 내지 입양 자녀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두 명 다 사랑을 받지 못한 건 분명하다. 한 명은 학대, 한 명은 방치를 당한 것이다. 이는 수많은 버려진 아기들이 경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마지막은 아기를 되찾으려는 여자다. 돈을 받고 팔아버린 자신의 아기를 왜 찾으려는지 그 정확한 동기는 모르겠다. 굳이 개연성을 찾자면 선천적으로 내재된 모성애 때문일 거 같다. 영화를 상징적으로 보지 않고 표면적으로만 보면 여기서부터 상당히 지루할 수 있다. 여자가 하는 행동이 상당히 답답하기 때문이다. 아기를 되찾으려면 좀 계획적으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좀 뭐하다 소리 들리면 다시 숨고 다 자는 밤에 데리고 나가면 되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못하는 답답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관찰자 시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브로커들의 인물분석도 할 수 있고 후술 할 상징들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런 답답한 서사는 기능적으로 필요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아기를 되찾으려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아기의 죽음이다. 그 아기는 왜 죽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아기를 넘겨 돈을 받는 브로커들이 아기 하나 관리 못하는 무능력자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보면 아기는 자살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건네주는 우유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우유는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밥'인 동시에 공갈젖꼭지와 마찬가지로 가짜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이 아기는 굶어 죽을지언정 가짜 사랑을 받지 않는다. 밥을 먹으면 생명유지는 할 수 있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다소 극단적이지만 사랑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상징으로 볼 수 있었다. 이후 여자의 아기가 죽고 새로운 흑인 아기가 집에 들어온다. 처음 여자는 자신의 아기가 죽은 줄도 몰랐고 아기가 바뀐 사실 자체에 놀란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이 아기에게 다가가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내고 모유를 먹인다. 이 모유는 앞서 나온 공갈젖꼭지, 우유와 완전하게 대비되는 진짜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넘쳐나는 가짜 사랑 속에서 처음으로 진짜 사랑이 등장한 순간이다. 자신의 아기도 아닌 다른 아기를, 그것도 사랑을 줄 줄 모르던 여자가 진짜 사랑을 전해주는 이 장면은 과장을 좀 보태면 '아가페'적인 사랑처럼 느껴지고 과장을 좀 빼면 숭고한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는 이 아기를 데리고 탈출에 성공하고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고 숭고한 모습으로 프레임 밖으로 나가며 영화가 끝이 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다양한 동물과 벌레들이 몽타주적으로 계속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연관으로 묶였고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하나하나 분석하기 힘들었다. 너무 다양한 동물들이 나오고 그들의 행동이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별적인 분석을 포기하고 전체적으로 해석을 했다. 동물과 벌레들이 살아가는 대자연, 생태계는 적자생존의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브로커에게 넘어간 아기들은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도태된 존재들이다. 계속적으로 대자연 속 동물들을 비추면서 이런 생태계의 기본 원리를 환기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이렇게 생각하면 뒤에 나오는 여자의 숭고한 사랑은 그 가치가 한층 더 높아진다. 

 몽타주적으로 등장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말은 전면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한다. 이 말은 자신을 구속하는 줄에 의해 먹이도 먹지 못하고 묶여있었는데 여자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게 된 말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자신이 구해준 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자의 모습은 일종의 신화적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추가로 브로커의 집에서 펼쳐지는 서사들은 판타지스러우면서도 너저분한 미장센 속에서 진행되며 시각적인 재미를 준다. 미로 같은 집 구조도 반복되는 서사의 지루함을 조금은 달래준다. 보통 해외 영화는 자막을 읽기 바쁜데 이 영화는 대사 없이 이미지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꽉 들어찬 미장센을 쭉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영화의 원제는 Baby 였다. 이게 한국에서는 <더 마더>로 바뀌었다. 외국에서는 숭고한 사랑의 객체를 제목으로 내세웠다면 한국에선 주체를 제목으로 내세워서 개봉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한 번 보고 작성했기에 오독의 여지도 있고 미처 말 못 한 상징들도 많이 존재할 것 같다. 그런 걸 전부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영화를 보고 씬마다 혹 전체적으로 해석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당장 글을 쓰며 더 깊게 생각해보고 싶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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