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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Feb 26. 2022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에 대하여

일부의 체험만으로도 느껴지는 생(生)의 의지

*이 글은 시사회를 보고 작성했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야코'의 이야기이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인해 가슴 아래는 모두 마비가 되었고 시력마저 잃었다. 한때 영화광이었던 야코는 과거 자신이 보았던 영화의 이미지로 잃어버린 시력을 대신한다. 자신을 도와주러 온 보조인은 영화 <미저리>의 소름 끼치는 사생팬 '애니 윌킨스'로 부르고 온라인으로 만난 여자 친구 '시르파'의 얼굴은 <에이리언>의 여전사 '리플리'를 상상하며 떠올린다. 시르파 역시 혈액염을 앓고 있으며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던 야코는 병의 증세가 더 심해진 시르파를 위해 큰 용기를 낸다. 보조인의 도움도 없이 혼자 1000 킬로미터가 떨어진 시르파의 집을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 핀란드 영화감독인 '티무 니키'가 연출했다. 티무 니키 감독은 <님비: 우리 집에 오지 마>나 <동물 안락사> 등 주로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되는 유형의 코미디, 스릴러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다. 이번 영화는 그런 그의 전작들과는 다르다. 영화의 배급사 측 설명에 따르면 감독의 여동생이 실제로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 이 영화를 만들게 된 큰 이유가 여동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 야코를 연기한 '페트리 포이콜라이넨' 역시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으며 실제로 시력도 잃은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연기는 진정성이 가득하다. 이런 진심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됐는지 이 영화는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어떻게 진행될지 관객에게 힌트를 던져준다. 오프팅 타이틀에 나오는 자막이 모두 점자로 되어있고 딱딱한 기계음이 이 점자를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읽어준다. 아마 기계음이 아니면 대다수의 관객은 점자 자막을 읽지 못할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영상들은 시야가 극도로 제한적이다. 대부분 주인공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상태로 서사가 진행되고 그 외 배경은 전부 흐리게 블러 처리가 되어있다. 주변 환경이 궁금하지만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알 수없다.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보고 공간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선 야코의 집도 그가 나중에 갇히게 되는 창고도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거시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야코와 거의 동일시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흐리게나마 볼 수 있는 우리는 야코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긴 하다. 그래도 충분한 양의 정보는 아니다. 이를 통해 우리보다 정보가 단절된 야코가 얼마나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지 간접적으로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일종의 체험에 가깝다.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지만 러닝타임 내내 야코의 삶과 입장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영화의 제목이 왜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일까? 이 해답은 비교적 초반부에 나온다. 시르파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던 야코는 수많은 자신의 DVD 소장품이 있는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 만큼은 비닐도 뜯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터미네이터2>나 <에이리언2> 같은 액션 장르 영화를 잘 만드는데 <타이타닉>은 그런 그가 관객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낸 거라며 쓰레기라고 크게 비판한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집에 놀러 와 타이타닉 DVD를 보고 '오 이 영화 내 인생영화인데!' 같은 반응을 보이면 뜯지도 않은 비닐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취향이 전혀 안 맞는 사람이니 거른다'와 같은 느낌일 거 같다. 따라서 영화의 제목은 매우 직관적이다. 진짜로 야코가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거다.

 허나 이 제목엔 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주인공 야코의 진취성이다. 보통 장애인하면 사람들에게 드는 감정은 동정심과 걱정이 대부분이다. 무언가 도와줘야 할 거 같고 더 챙겨줘야만 할 거 같은 거다. 주인공 야코는 이런 대우를 받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를 걱정하는 아빠는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야코에게 전화를 건다. 얼마나 변함없이 전화를 걸면 야코가 전화 오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출 정도다. 하지만 야코는 아빠의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는 아빠의 태도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픈 아들을 걱정하고 챙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야코는 자신을 애 취급하고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건 원치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진취적으로 살길 원하고 그럴 의지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제목을 다시 보면 느낌이 다르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볼 수 없다'가 사실 현실적으로 맞는 제목일 거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볼 수 없는 게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거에 초점을 맞춘다. 타이타닉에 대한 명확한 야코의 취향은 그의 장애 이면에 가지고 있는 진취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는 어딜 가나 확고한 자신의 취향을 말한다. '존 카펜터'의 영화는 단순한 B급 영화가 아닌 최고의 영화고 밴드 '스콜피언스'의 노래는 별로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정도로 그의 삶의 태도는 진취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라인에서 만난 시르파를 만나기 위해 1000킬로의 여정을 혼자 시도한다는 거 자체가 진취적이지 않은가.


 야코의 여정을 따라가던 영화가 끝이 나면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야코는 꿈에서 자신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달리기를 하고 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꿈의 끝엔 결국 병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야코는 이 꿈에 굴하지 않는다. 일부의 체험만으로도 꿈에 굴하지 않는 그의 생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야코를 동정 어리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보지 않으려 한다. 그의 진취적이고 의지적인 모습을 기억하며 이 순간에도 생의 의지를 이어갈 수많은 야코들을 응원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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