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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Mar 07. 2022

<나이트메어 앨리>-오이디푸스의 현신 같은 '스탠턴'

Nightmare Alley,2020 -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건 영화 <블레이드 2>였다. 뱀파이어를 썰어버리는 혼혈 뱀파이어 킬러의 이야기는 어린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다음으로 보았던 게 아마 <판의 미로> 였을 거다.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였기에 그 안에 담긴 사회상과 상징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잔혹한 동화 같은 그 분위기에 반했었다. 특히 손바닥에 달린 눈으로 오필리아를 쳐다보던 괴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이후로도 감독의 필모를 따라 영화를 관람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는 하나같이 다 기괴하고 인간이 아닌 크리쳐가 등장하는 특징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영화 외에도 지옥에서 온 '헬보이'도 있고 벌레 괴물도 있고 외계 괴물과 이를 막는 로봇도 있고 인간과 사랑의 교감을 나누는 괴생명체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본 <나이트메어 앨리>는 인간을 초월한 어떤 생명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 세상의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만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극초반 유랑극단의 기괴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와 알록달록한 미장센은 이러한 연출을 잘하는 감독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비슷한 부분은 영화 속 인물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전부다 온전하지 않은 어딘가 차별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기예르모 델 토로 세계의 크리쳐들이 외관상 인간과 차별점이 있었다면 <나이트메어 앨리> 속 인물들은 외관은 인간이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차별점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글에서는 주인공인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의 케이스만 집중적으로 다뤄보려고 한다.


 주인공 스탠턴은 '오이디푸스'의 현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거 같다. 스탠턴은 친부인 아버지에게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 죽인 후 유랑극단으로 들어왔다. 이 유랑극단에서 그는 유사 아버지 관계인 '피트(데이빗 스트라탄)'를 만난다. 정부와 바람난 채 가정을 돌보지 않은 친부와 달리 피트는 유랑극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만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술에 대해 가르쳐준다. 그리고 피트는 바람피우는 거 없이 아내 '지나(토니 콜렛)'를 사랑한다. 하지만 스탠턴의 친부와 겹치는 한 가지는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맨날 술 마시던 친부처럼 피트도 술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스탠턴에게 술은 아버지를 향한 적대감을 상기하게 만드는 물질이었고 결국 유사 아버지인 피트도 죽게 만든다. 실수였다고 말하나 술과 메탄올은 나름 잘 구분이 되어있었고 철저한 계획하에 피트를 죽인 건 아닐지라도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적대감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스탠턴은 유랑극단에서 전기를 견디는 공연을 하는 여자 '몰리(루니 마라)'에게 반한다. 하지만 몰리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그는 어머니 뻘의 여성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느낀다. 영화에서 제대로 나오진 않았고 지나가 먼저 스탠턴을 유혹하는 행동을 했지만 어찌 됐든 스탠턴은 지나와 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로서 유사 어머니인 지나와 관계를 맺고 유사 아버지인 피트를 죽였다는 점에서 그는 신화 속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다. 또한 몰리와 함께 유랑극단을 떠난 후 만난 나이 든 여인인 '릴리스(케이트 블란쳇)'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들끓는 욕망 속에서도 선을 지키며 살던 스탠턴이 선을 넘게 되는 계기이자 끝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된 어머니와 같은 여성에게 느끼는 호의적 감정인 셈이다. 릴리스와 엮이며 스탠턴은 자신이 그토록 적대감을 가지던 아버지와 동일한 인물이 되고 만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헌신적인 몰리를 저버리고 릴리스와 관계를 가지고 '절대' 마시지 않는다는 술도 마시게 된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기에 철저하게 멀리했던 원칙들이 릴리스로 인해 깨지고 만 것이다. 결국 영화의 말미에 릴리스에게 배신을 당한 스탠턴은 아버지를 죽인 순간부터 예정된 파멸의 길을 확실하게 걷게 된다. 아편이 든 술을 마시고 자신이 한 때 동정했던 기인과 같은 존재로 전락한 스탠턴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오이디푸스의 마지막이 연상되는 스탠턴의 고통스러운 몰락으로 영화는 신화와 똑같은 마무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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