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에 이어 3번째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를 봤다. 앞선 두 작품을 볼 때, 이 감독이 정체된 지점에서 인물들의 대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다. 운동적인 움직임을 줄이고 언어를 매개로 관객들을 영화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다. 알아들을 수 있고 소통 가능한 말부터 뜻을 모르는 단순히 말하는 행위, 그리고 신체를 활용한 언어까지 하마구치 류스케가 영화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범주는 오디오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이 영화들은 충분히 시네마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본 <해피 아워>는 앞선 두 작품 이전에 하마구치 류스케가 연출한 영화로 사실상 이 영화로 그는 영화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무려 5시간 17분이라는 쉽지 않은 러닝타임은 영화를 보는 데 큰 진입장벽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하마구치 류스케가 어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인지에 대한 정수를 담아내기엔 부족한 러닝타임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해피 아워>에 대해선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영화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느끼게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30대 후반인 4명의 여성, 아카리, 사쿠라코, 후미, 준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성격도 직업도 가족관계도 천차만별이지만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긴 시간을 들인 만큼 영화는 인물 하나하나의 사정에 꽤 깊이 다가선다. 살다 보면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을 방지하거나 이미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다. 하나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 오히려 관계가 어그러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대체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거나 자신의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참고만 있을 때가 여기에 해당한다. 둔감하고 참는 사람이 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건 역치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에 대화는 문제를 해결할 적절한 타이밍을 지나쳐 너무 늦어버린 이미 어그러질 때로 어그러진 관계의 종말을 고하는 식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이 부분의 감정선은 상당히 미묘하다. 본인이 이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지, 정말 사랑하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 확신에 찬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해피 아워>는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 어그러지는 관계의 이 미묘한 지점을 카메라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이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쉽지 않았다. 주인공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언어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알게 되며 쌓여온 감정의 덩어리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행복, 슬픔, 후련함, 분노 등등의 감정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주인공들의 감정을 정의하고 내가 생각한 대로 결실을 보는 건 어쩌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을 내 편견대로 해석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인간의 감정이란 게 하나의 순수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보통 사람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엔도르핀이나 도파민 같은 신경 물질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까지 파고들면 사유가 너무 어려워질 거 같긴 한데 이조차도 하나의 순수한 감정의 형태로 볼 수 있는지는 의견이 갈릴 것 같다. 영화에서는 오히려 진실한 복합감정을 보여주는 게 어렵다. 이미지와 오디오만으로 한 캐릭터의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건 자칫하면 관객에게 그 감정이 잘못 전달되거나 제대로 닿지 않을 위험이 있다. 따라서 기쁨, 슬픔, 분노, 무감정처럼 정제된 감정 형태가 영화에서만큼은 현실성 있는 감정처럼 느껴진다. 현실성은 우리가 이 영화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고 동화된 상태로 관람을 하므로 작동한다. 다만 이 감정 이면에 자리 잡은 복합적인 진실한 감정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해피 아워>는 진실한 감정에 도달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감독이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의 언어를 통해 역설한 것은 바로 이 진실한 복합감정의 영상화이다.
누군가 영화를 길게 보여준 것은 그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 생략과 축약이 감독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이 의견에 일부 동의하는 바이다. 감독 자신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나,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절제해서 보여주는 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해피 아워>에 대한 변론을 잠깐 하자면, 이 영화에선 생략해야 할 장면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진실한 복합감정은 짧은 러닝타임으로는 전달하기 힘들다. 가장 정확한 것은 우리가 그 캐릭터가 된 것처럼 살아보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다큐멘터리처럼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해도 우리가 그 캐릭터처럼 느끼긴 쉽지 않다. 객관적인 관찰은 오히려 주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에서 신체 세미나와 낭독회를 길게 보여준 이유도 찾을 수 있다. 신체 세미나와 낭독회는 객관적인 관찰을 넘어 우리에게 일종의 영화적 체험을 선사해준다. 마치 그 자리에서 캐릭터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경험이 캐릭터의 복합감정을 전달받는 데 혁혁한 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올 때 느껴지는 수많은 감정은 차근차근 쌓아 올린 체험의 이야기들이 전해준 산물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