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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Jul 30. 2022

<분쟁> - 클로즈업으로 꿰뚫는 균형

VAZAKKU (QUARREL), 2022-사날 쿠마르 사시다란

 *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홍대 상상마당에서 제2회 남아시아 영화제가 열렸다. <교실 안의 야크> 정도를 제외하면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제작국가도 부탄, 아프가니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등 다양하다. 흥미로운 영화들이 많았지만, 그중 인도 영화인 <분쟁>이 시간이 맞아 보게 되었다. 인도는 앞서 언급한 나라들에 비하면 익숙한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인도영화는 흔히 ‘발리우드’라 부르고, 발리우드 하면 노래와 춤이 빠지지 않는 영화적 양식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발리우드의 익숙한 노래와 춤에서 나오는 역동성과 에너지를 생각하며 <분쟁>을 본다면 적잖이 당황하게 될 것이다. 9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에서 무려 절반 정도가 마치 슬로우 시네마처럼 진행된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에너지가 아닌 인간과 사물의 정신적인 에너지를 재현하려고 하기에 호흡도 느리고 화면의 질감도 특이하다. 그럼에도 서사구조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라 스릴러 장르적인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한마디로 기묘한 영화다.     


 변호사인 시다르트는 아내와 이혼 위기에 처했다. 그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격렬한 말싸움 끝에 운전하고 가던 시다르트는 길을 걷던 한 여성과 아이를 마주치게 되는데, 이때 그 여성은 시다르트의 차 앞에서 쓰러진다. 이에 시다르트는 여성과 아이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려 하는데 갑자기 남편이라는 남성이 나타나 시다르트의 차를 막고 여성과 아이를 데려간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자신의 소지품(지갑)을 떨어뜨린다. 남편이라는 사람의 느낌이나 행동이 상당히 꺼림칙스럽기도 했고 여성이 신경 쓰였던 시다르트는 떨어뜨린 지갑을 돌려준다는 이유로 그들의 뒤를 쫓아간다. 이 선택으로 인해 시다르트는 큰 분쟁의 한 복판에 휩쓸리게 된다.     


 바로 위 문단에 간단히 영화의 줄거리를 서술했다. 이 줄거리만 보면 이 영화가 왜 슬로우 시네마처럼 느껴지는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사실 위의 이야기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절반 정도 지나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오프닝은 우주에서 시작한다. 우주에 떠다니는 수많은 별을 지나며 무한한 공간을 유영하던 카메라가 우리에게 익숙한 푸른 별 지구를 찾아낸다. 그리고 지구에서 더 안으로 들어가 인도의 대자연을 비추고, 이내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앞에는 수풀이 무성한 흙길을 보여주더니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 한 대가 등장한다. 자동차가 이내 정차하고 카메라는 쭉 안으로 들어가 운전대를 잡은 주인공 ‘시다르트’의 얼굴을 잡게 된다. 지구가 등장한 후에야 우리는 이 카메라의 움직임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카메라는 우주라는 무한하게 넓은 공간에서 시작해 먼지보다도 작은 어쩌면 원자 수준일 인간의 얼굴을 보여주기까지 끝없이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이 과정은 연속적인 롱테이크 영상으로 다소 ‘길다’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진행된다. 물론 이 과정도 실제 우주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얼굴까지 가는 길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축약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인간의 지각 능력은 이 과정을 사유하기엔 한계가 있고 실제에 비하면 어마 무시한 축약을 거친 이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무한한 우주와 인간의 얼굴 사이의 거리감을 체감할 수 있다.      


 그 이후에 정지된 카메라는 아내와 이혼 문제로 격렬하게 말싸움하는 시다르트를 보여준다. 이후 영화의 전개는 시다르트와 아내의 대사로만 진행되고 이 대사들을 통해 인물의 성격과 사건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선 클로즈업 장면들로 인해 이 둘의 분쟁은 사소하게 느껴진다. 영화 이론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벨라 발라즈(Bela Balazs)’에 따르면 클로즈업은 사물의 상(像)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더해지는 인간의 감정과 정신도 함께 표현한다고 한다. 따라서 클로즈업을 통해 인간이 사유할 수 없는 바깥(dehors)을 경험하며 관객은 무한한 공간에서 사물들의 거대한 운동성과 깊이감을 느꼈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의 얼굴로 돌아왔을 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말다툼을 오히려 초연하게 바라보게 된다.     


 다시 발라즈의 사유를 언급하면 발라즈는 클로즈업을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영혼을 끌어내 보이면서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얼굴의 상을 나타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굴은 항상 가시적 얼굴과 비가시적 얼굴(영혼이나 정신적인 것)과 같은 이중적 가치를 지닌다고 했다. 물론 얼굴에 대한 발라즈의 사유는 <분쟁>에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발라즈는 가시적 얼굴 안에 비가시적 얼굴이 존재한다고 봤고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영혼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봤다. <분쟁> 역시 클로즈업을 통해 영혼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려 하지만, <분쟁>의 클로즈업은 얼굴에서 그치지 않고 더 안으로 들어가고 아예 정신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재현하기에 이른다.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화면의 상하반전을 통해 연출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화 속 분쟁의 사건들은 시다르트의 무의식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해석된다.     


 영화 속에서 시다르트의 정체를 다 알고 있으며 끝까지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고, 엔딩 크레디트에서도 ‘Unknown Authority(직역하면 미지의 권위자)’라고 적혀 있는 남자는 무의식의 세계에 돌입하고 나서 등장한다. 이 남자는 시다르트 무의식 속 초자아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죄책감을 형성하며 도덕적으로 어긋난 존재를 처벌한다. 영화 속 여성(아내)과 남성(남편), 아이는 시다르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일종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아내는 현실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며 외도를 했고 남편은 이런 아내를 추궁하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아이는 그 둘 사이에서 말을 못 하는 관조자로 전락한다. 성별이 바뀌긴 했지만, 이는 시다르트의 현실 모습의 반영이라 할 정도로 유사한 형태다. 물론 우리는 시다르트의 이야기를 그가 아내와 하는 통화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지만, 그 이야기가 가시적으로 영상화된다면 이 부부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부부는 궁핍한 환경에서 사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또한 시다르트의 정신적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무의식의 세계에서 초자아를 제압한 시다르트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다. 하지만 말 못 하는 관조자인 줄 알았던 아이가 사실은 자신의 자아가 존재하는 현존재였고 초자아를 속인다고 자신의 죄악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친 시다르트는 절규한다. 그리고 무의식 세계로 침잠하던 영화는 다시 상하반전을 거쳐 얼굴의 세계로 넘어오고 다시 클로즈업의 반대 움직임인 ‘줌아웃’을 통해 무한한 공간의 우주까지 넘어오며 막을 내린다.    


 <분쟁>은 우주에서 얼굴, 얼굴에서 정신적 세계를 거쳐 다시 역순으로 빠져나오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우주에서 얼굴까지는 슬로우 시네마의 특성을 보이고 정신적 세계라 볼 수 있는 무의식의 공간은 스릴러 장르 영화의 특성을 보인다. 미지의 권위자인 남자가 어떤 존재이며 왜 이런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지는 명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궁금증과 긴장감이 스릴러 장르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양식이 하나의 영화에 공존한다는 것이 상당히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한 요소로 다가왔다.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이 말하는 <분쟁>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보면 시다르트와 아내, 그리고 외도한 여성과 추궁하는 남편, 그리고 미지의 권위자를 통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분쟁이다. 하지만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분쟁은 사회 단위에서 성립되고 있는 균형 관계를 동요, 혼란시키는 행동을 뜻하기도 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세계를 우주, 얼굴, 무의식이라는 (집단이란 측면에서 사회) 단위로 나눌 때 이 균형 관계를 동요, 혼란시키는 것은 연속적 롱테이크로 보여준 클로즈업이다. 따라서 영화 제목인 <분쟁>은 사유의 바깥에서 인간의 얼굴 그리고 정신적인 특질까지를 꿰뚫는 이 시도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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