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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Apr 20. 2022

<스파이 브릿지> - 거장 스필버그의 역사 다시 쓰기

Bridge of Spies, 2015 -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파이 브릿지>는 실화에 바탕을 둔 역사 장르 영화다. 영화적인 각색이 있긴 하지만, 실제 일어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장르 영화 제작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스릴러’부터 ‘아동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훌륭한 영화들이 꽉 들어차 있다. 현실에 존재하는 백상아리를 소재로 한 <죠스>, 과거에 군림했던 공룡들을 소재로 한 <쥬라기 공원>, 미래에 어쩌면 나타날지도 모를 외계인을 소재로 한 <E.T>를 모두 만들어 냈을 정도로 그의 상상력의 폭은 어마어마하다. 


 또한, 스필버그 감독은 <스파이 브릿지>처럼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도 능하다(<링컨>, <워 호스>, <뮌헨>, <라이언 일병 구하기>, <쉰들러 리스트> 등등). <스파이 브릿지>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7년 붙잡힌 소련 스파이 ‘아델 루돌프(마크 라이런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노반은 정의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이 확실한 인물이다. 영화는 이런 신념에 가득 찬 도노반이 어떻게 루돌프를 변호했고 더 나아가 소련에 붙잡힌 CIA 첩보 조종사인 ‘프렌시스 게리 파워스(오스틴 스토웰)’와 포로 교환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의 과정을 장르적인 긴박감도 유지하며 휴머니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동 시간대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제임스 도노반, 붙잡힌 루돌프와 게리 파워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을 스필버그 감독은 어떻게 재밌는 장르 영화로 탈바꿈시켰을까? 가장 돋보이는 건 교차편집의 다양한 활용이다. 이 영화엔 크게 3가지의 교차편집이 등장한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교차편집이다. 말 그대로 두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몽타주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의 초반 부분 루돌프를 변호하는 도노반과 공작에 나설 준비를 하는 게리 파워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암시를 전달하는 교차편집이다. 이전의 씬이 이후에 연결되는 씬에 일종의 암시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붙잡힌 루돌프가 도노반에게 감옥에 그림 도구와 담배 등을 넣어주는 편의를 봐달라 하면서 ‘만약 미국의 스파이가 소련에 붙잡힌다면 그가 좋은 대접받길 바라지 않겠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화면 왼편엔 루돌프의 옆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그리고 루돌프의 얼굴이 디졸브로 사라지는 동안 오른편엔 클로즈업된 게리 파워스의 얼굴이 디졸브로 드러난다. 그리고 게리 파워스는 CIA가 진행하는 사상검증 테스트를 받고 있다. 이 연결되는 장면을 통해 루돌프가 대상을 지정하지 않고 말한 붙잡힐 스파이가 게리 파워스일 것이라는 걸 진하게 암시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예시가 더 있다. 공공의 적인 소련 스파이를 열정적으로 변호하는 도노반을 보며 루돌프는 ‘조심해야 될 거요’라는 진심 어린 경고를 날린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은 집에서 편하게 TV를 보고 있는 도노반의 딸의 모습이다. 경고의 대사 이후 연결된 이 장면을 통해 도노반의 집에 엄청난 위기가 닥칠 거라는 것이 암시되고 불안감이 조성된다. 아니나 다를까 곧 도노반의 집은 소련 스파이를 변호하는 걸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에 의해 테러당한다.


 마지막은 마치 다른 두 개의 씬이 하나인 것처럼 연결되는 딱 맞아떨어지는 교차편집이다. 영화는 종종 이런 짜임새 있는 연결로 관객에게 혼돈을 주기도 하고 재미를 주기도 한다. 한 씬에서 공작 임무에 관해 설명해주던 게리 파워스의 상관은 이제 임무에 필요한 장비들을 보러 가자고 말한다. 이어지는 다음 씬에는 책상 위에 나열된 루돌프의 스파이 활동 증거 물품들을 카메라가 서서히 훑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은 장면이 전환되자마자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맥락상 필요한 장비들을 보러 가자 했으니 다음에 나오는 물품들은 당연히 그 장비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스필버그는 바로 이러한 인지 사고를 역으로 이용해서 전혀 다른 두 개의 씬을 마치 액션과 리액션의 관계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런 씬은 영화에 몇 번 더 등장한다. 루돌프를 판결하기 위해 재판장에 판사가 들어서자 장내에 ‘전원 기립’하라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어지는 씬에서 전원 기립을 하는 건 귀여운 꼬마들(도노반의 아들의 학급반)이다. ‘전원 기립’이라는 말로 연결되는 두 개의 씬이었다. 후반부에는 도노반이 신문을 들어 올리는 순간 신문을 넘기는 간수로 화면이 전환되는 씬도 있다. 이는 신문이 그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방식의 교차편집 활용은 문서화되거나 구두로 전해지는 역사 이야기에선 보여 줄 수 없는 영화만의 재미이다.


 스필버그는 또 실화를 영화로 옮길 때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기보단 ‘인물’에 중점을 둬서 재현했다. 그 결과 영화 내내 도노반의 확고한 신념이 강하게 두드러진다. 소련 스파이도 헌법에 기초해 올바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인권 존중의 신념은 후반부 인질 교환 때도 파워스와 함께 붙잡힌 미국 대학생 ‘프레드릭 프라이어’도 구해야 한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모습 하고도 연결된다. 루돌프 역시 초췌한 시선에 ‘Would it help? (그게 도움이 될까요?)’를 건조하게 되뇌면서도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도노반에게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스파이로 나온다. 스파이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적으로 그려낸 덕분에 둘의 관계성은 더 휴머니즘이 돋보였고 역사적 사실에서 스필버그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스필버그는 이렇듯 교차편집을 활용하고 인물의 휴머니즘을 강조하며 역사를 자기 나름대로 다시 썼다. 그 결과 역사적 사실은 재밌는 장르 영화의 탈을 쓰고 관객의 뇌리에 침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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