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lourious Basterds, 2009 -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감독이다. 초창기 타란티노가 쓴 각본으로 제작된 <내추럴 본 킬러>와 <트루 로맨스>부터 가장 최근에 나온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까지 그가 만든 장편 영화는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다 봤다. 그리고 다소 팬심이 투영된 걸 수도 있겠지만, 그가 만든 영화 중 재미가 없다고 느꼈던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타란티노 영화가 왜 좋냐고 묻는다면 말 그대로 영화가 너무 재밌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영화를 보는 이유가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일종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이 쾌감이란 건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와, 이런 내용을 이렇게 연출했다고? 미친 거 아니야?’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뛰어난 상상력과 서사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예측을 불허하는 한 방을 보여주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감독으로 타란티노만 한 사람은 없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후 <바스터즈>로 표기)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타란티노가 어떤 ‘재미’를 선사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먼저 <바스터즈>는 영화를 보는 내내 서스펜스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 안에서 다른 전개를 가져가는 대체역사 장르로 볼 수 있는 <바스터즈>는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은 유대인 사냥꾼으로 악명 높은 ‘한스란다 대령(크리스토프 왈츠)’이 숨어있는 유대인들을 색출하는 내용이고 2장은 나치에 대적하는 ‘개떼들(바스터즈)’을 소개하는 내용, 3장은 색출에서 살아남은 ‘쇼산나(멜라니 로랑)’가 좋은 기회를 얻고 복수를 기획하는 내용, 4장은 개떼들과 ‘아치 히콕스 소위(마이클 패스벤더)’가 독일로 건너간 영국 첩자 ‘브리짓 본 해머스마크(다이앤 크루거)’와 접선하는 내용, 마지막 5장은 영화의 모든 인물이 ‘독일 영화의 밤’이라는 행사를 위해 영화관에 모이고 각자의 목적에 따라 행동하는 클라이맥스이다. 방금 소개한 각각의 장마다 끊이지 않는 서스펜스가 존재한다.
특히 1장과 4장에서 나타나는 서스펜스는 타란티노가 얼마나 재능 있는 감독인지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1장에서 대부분 장면은 정적인 대화들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한스란다 대령이 유대인 사냥꾼이고 그와 대화하는 농장 주인이 사실은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서서히 드러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강한 서스펜스를 느끼게 된다. 대화를 보여줄 때 카메라의 움직임이 마냥 정적이지만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보단 각본을 쓴 타란티노 감독의 인물들 간의 주고받는 완벽한 대사 구성이 서스펜스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별거 아닌 듯 툭툭 오고 가다가 슬슬 감추어진 것들이 드러나고 어느 순간 핵심에 다가서는 대사는 타란티노 영화의 큰 특징 중 하나이다. 4장 지하 술집 접선 장면에서도 이러한 장기는 여실히 드러난다. 진짜 독일군 장교 앞에서 독일군인 척 연기하는 아치 히콕스와 개떼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개떼들의 멤버를 소개하며 독일군을 심문하는 2장, 쇼산나와 한스란다가 재회하는 3장, 개떼들의 수장 ‘엘도레인(브래드 피트)’과 한스란다가 마주치는 5장에서도 이러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로 <바스터즈>는 뛰어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화끈하게 터져줄 때 제대로 터져주고 흔한 클리셰로 빠지지 않는 예상을 비껴가는 선택으로 장르 영화라는 틀 안에서 줄 수 있는 최상의 쾌감을 선보인다. 타란티노가 가장 크게 받는 비판 중 하나는 바로 영화 전반적으로 자자한 폭력성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아닌 타란티노 영화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피칠갑의 폭력이 스크린에 구현된다. 하지만 나는 이 폭력성이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 가장 큰 장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무거운 분위기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이 장르 영화라는 틀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 장 같은 것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폭력을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짜릿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폭력을 아름다운 것으로 미화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타란티노 영화의 장르적 쾌감 형성에는 음악도 큰 몫을 담당한다. 대중음악에도 능통한 타란티노의 기가 막힌 선곡 센스가 장면 장면 빛을 발한다.
<바스터즈>에서는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쇼산나가 ‘프레드릭 졸러(다니엘 브륄)’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예시로 들고 싶다. 대의를 앞두고 찾아온 졸러를 어쩔 수 없이 총으로 쏴버린 쇼산나는 남아있던 일말의 로맨스 감정 때문에 그에게 다가가다가 살아있던 졸러의 역습으로 총을 맞게 된다. 이때 쇼산나가 다가가기 전부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그동안 보고 있던 <바스터즈>의 느낌과 전혀 다른 마치 애절한 로맨스 영화를 보는 듯한 바이브가 형성된다. 그리고 쇼산나가 총에 맞을 때 음악의 애절함은 고조되고 쇼산나가 입은 붉은 드레스의 파편이 마치 장미꽃처럼 흩뿌려지며 비운의 커플 같은 모양새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연출과 음악, 그리고 주인공 쇼산나가 예상을 비껴가며 죽음을 맞이하는 서사가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내는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장르적 쾌감을 보여주는 예시는 더 있지만 딱 하나만 더 언급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바로 한스란다 대령이 뛰어난 사냥꾼의 자질로 엘도레인 소위를 잡은 후 그를 심문하는 장면이다. 크리스토프 왈츠라는 정말 연기의 천재이자 언어적으로도 능통한 훌륭한 배우를 통해 한스란다 대령이라는 캐릭터는 영화사에 남을 만한 끔찍한 악역의 모습을 러닝타임 내내 보여줬다. 그래서 그가 엘도레인을 잡았을 때, 우리는 그가 어떻게 엘도레인을 심문하고 극장에서 일어날 끔찍한 테러를 어떻게 막아내려 할지 긴장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하지만 한스란다는 엘도레인을 잔인하게 심문하지도 않고 테러를 막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엘도레인을 통해 귀화를 시도하고 전범이라는 딱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예상을 비껴가면서도 이를 통해 한스란다라는 캐릭터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끔찍한 빌런인지 새삼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바스터즈>는 최고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서 재미없는 클라이맥스는 없다고 자부하는데 <바스터즈>는 그중에서도 특히 훌륭하다. 타란티노의 클라이맥스는 보통 영화 내내 쌓아왔던 서스펜스를 한방에 터트리는 식으로 작동한다. 영화 전체로 봤을 때는 마지막에 해당하는 5장 영화관 시퀀스가 클라이맥스다. 하지만 그 앞장에서도 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쌓아온 서스펜스를 폭발시키는 클라이맥스들이 존재했다. 1장에선 유대인이 지하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한스란다가 유대인들이 알아듣는 프랑스어로 그들을 안심시킨 뒤 부하들을 불러 총질하는 장면이 그 역할을 했다(유대인이 알아들을까 봐 일부러 그전까지 영어로 대화한 한스란다의 빌드업도 돋보인다). 4장에선 특이한 억양 때문에 줄곧 의심받던 아치 히콕스가 결정적인 실수로 정체가 탄로 나는 바람에 벌어진 끔찍한 총격전이 쌓아온 서스펜스를 폭발하는 클라이맥스 역할을 해주었다.
5장의 클라이맥스는 쌓아온 서스펜스를 폭발하는 것과 더불어 대체역사 장르만이 할 수 있는 역사 수정으로 시원함을 선사한다. 바로 ‘히틀러’와 ‘괴벨스’를 포함한 나치 고위급 관계자들을 유대인들의 손으로 몰살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뇌리에 박힌 이미지인 불타는 스크린이 등장한다. ‘독일 영화의 밤’을 맞아 독일 전쟁 영웅인 프레드릭 졸러가 나오는 영화를 틀어주고 있다. 멋지게 적들을 처치한 후 ‘누가 독일에 내 메시지를 전하겠느냐?’라며 의기양양한 졸러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뒤이어 쇼산나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스크린에 등장하고 ‘나도 독일에 전할 메시지가 있다’라며 유대인의 울분을 담은 멘트를 날린 후 스크린 뒤에 비치되어있던 가연성 필름과 함께 활활 불타오르는 장면은 단연코 장르 영화적으로 최고의 클라이맥스라고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