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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현 Mar 10. 2022

포스트 히어로 장르의 관점에서 본<로건>

Logan, 2017 - 제임스 맨골드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건’은 마블 코믹스의 ‘엑스맨 시리즈’에서 ‘울버린(Wolverine)’으로 더 익숙한 히어로의 다른 이름이다. 영화 제목에 전면적으로 내세워진 이름을 보면 이 영화는 마치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들이 세상을 구하는 슈퍼히어로 장르일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초인적인 힘을 가진 영웅은 보이지 않고 각종 병으로 인해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늙은 영웅의 초라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장르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영화의 시대상은 가까운 미래다. 전성기의 위상은 온데간데없는 로건은 이제 치유능력을 많이 상실했고 자신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아다만티움 클로를 꺼내는 것조차 버겁다. 마찬가지로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뇌를 보유한 뮤턴트 엑스맨들의 수장 ‘찰스 자비에’는 퇴행성 뇌 질환을 앓고 있고 간헐적인 발작으로 주위 사람들을 큰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세상엔 20년이 넘게 새로운 뮤턴트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위험한 찰스를 숨기기 위해 로건이 선택한 장소는 어느 황량한 폐공장에 버려진 커다란 물탱크이다. 이 장소가 전해주는 삭막하고 황량한 느낌은 한때 슈퍼히어로였던 인물들의 초라한 모습과 유비된다. 이들의 삶에 변화가 생긴 건 명맥이 끊긴 줄 알았던 어린 뮤턴트가 나타나면서부터다. 그 뮤턴트는 바로 로건과 똑같이 아다만티움 클로를 사용하는 ‘로라’다. 로라는 뮤턴트를 만들어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악덕 기업에서 탄생한 실험체다. 그녀는 로건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태어났기에 로건과 부녀관계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영화가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장르였다면 이 모든 과정을 단순한 세대교체처럼 해석할 수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처럼 오래 활약해온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마지막 임무를 숭고하게 마치고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로건>이 이런 세대교체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히어로 시대 그 이후를 이야기하고 싶은 포스트 히어로 장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로라를 비롯한 실험체들을 대하는 영화의 태도에 있다. 로라는 실험실에서 함께 고생한 친구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자신은 꼭 실험 뮤턴트들의 희망의 땅인 ‘에덴(Eden)’에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건은 이 에덴은 만화에서나 나오는 곳이며 실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에덴은 실존하는 곳이었고 그곳은 도망친 어린 뮤턴트, 즉 희망의 다음 세대들이 자리 잡은 공간이었다.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사회화를 받지 않고 사람을 죽이기 위한 특수 능력을 부여받은 상태다. 영화의 말미에 실험을 주도한 ‘라이스’ 박사와 용병들이 아이들을 잡으러 온다. 잔혹한 로라를 보면 알겠지만, 이 아이들은 한낱 인간들이 잡으려 한다고 잡을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들지도 않고 설상 괜찮은 능력이 있다고 해도 로라를 제외하곤 일부러 아이들의 능력을 전면에 부각하려 하지 않는 느낌이 든다. 로라를 제외한 아이들이 자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건 작중 로건의 꽁무니만 쫓던 빌런 ‘도널드 피어스’를 잔혹하게 죽일 때뿐이다. 여기에서 나는 포스트 히어로 장르 영화라는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강한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부여하고 그들의 능력과 개성을 부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 아이들이 로건과 찰스가 해온 히어로라는 삶을 대신 이어 살아갈 다음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자기 딸,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구시대의 히어로의 숭고한 퇴장을 다루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로건>은 그동안 고생해온 영웅의 마지막 퇴장을 보여주며 히어로 시대의 종결을 다룬다고 느껴졌다. 후속작을 통해 세상을 지키는 히어로들의 명맥을 이어오는 마블과 디씨 코믹스 기반의 여타 슈퍼 히어로 장르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추가로 <로건>에는 웨스턴 장르의 향도 강하게 첨가되어있다.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에 멕시칸(히스패닉) 사람들을 포용하는 태도, 남성적 집단으로 볼 수 있는 대기업인 ‘알칼리 트랜시젠’의 횡포를 저지하는 것 등을 보면 <로건>은 수정주의 웨스턴의 경향을 띤다고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황무지와 황혼빛을 연상시키는 영화의 배경이 나오기도 하고 클라이맥스의 결투 씬에서 로건이 아다만티움 클로가 아닌 총을 사용하는 모습도 웨스턴 장르의 관습적인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 디제시스 안에 50년대 웨스턴 영화인 <셰인>이 직접 인용되기도 한다. 로라가 호텔에서 보던 <셰인> 속 대사는 마지막 로건의 장례식 때 로라의 입을 통해 다시금 영화에 등장한다. “사람은 본성대로 사는 거야, 조이. 그 틀을 깨뜨릴 순 없어. 사람을 죽이면 고통 속에 살게 돼. 되돌릴 방법은 없어. 그게 옳든 그르든 낙인이 되어 지워지지 않지. 이제 어머니한테 가서 괜찮을 거라고 전하렴. 이제 이 계곡에 총성은 없을 거라고” 이 대사는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로건의 인생과 잘 어울리고 앞서 이야기한 포스트 히어로 장르의 관점과도 잘 어울린다. 이제 이 계곡에 총성은 없을 거라는 말은 더 이상 맞서 싸울 필요가 없는 히어로 시대의 종말과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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