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Out, 2017 - 조던 필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종주의(레이시즘)는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서 예부터 오늘까지 살아남아 있는 이데올로기다. 그동안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며 인권이 신장하였다곤 하나 재작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만 보더라도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일부 사람들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이데올로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보통 백인우월주의로 대변되는 인종주의지만 미국에서 그동안 약자로 자리 잡은 건 황인도 히스패닉도 아닌 흑인들이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에 맞선 영화들도 주로 흑인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정글 피버>, <말콤X> 등의 영화로 이름을 알린 ‘스파이크 리’ 같은 감독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 12년>처럼 역사책보다도 끔찍하게 노예제의 폐해를 보여준 영화도 있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인종주의를 넘어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히든 피겨스> 같은 영화도 있다. 그리고 <히든 피겨스>가 북미에서 개봉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이 등장했다.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겟 아웃>으로 처음 메가폰을 잡은 조던 필 감독은 백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흑인 혼혈이다. 그런 그가 만든 <겟 아웃>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 담론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표현 양식이 다르다. 조던 필 감독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기 위해 미스터리, 공포 장르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데올로기 자체가 영화 속에서 가장 큰 공포감을 전달하는 하나의 틀로서 작용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종차별에 경종을 울리는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수많은 영화 틈에서 <겟 아웃>은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을 보유하게 된다.
<겟 아웃>은 백인 여자 친구인 ‘로즈(앨리슨 윌리엄스)’의 집에 방문하게 되는 흑인 남자 친구 ‘크리스(다니엘 칼루야)’의 이야기다. 흑인 남자 친구를 경험해본 적 없는 백인 가정에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영화는 시작부터 불편한 긴장감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로즈의 부모님은 첫인상만 보면 차별 없이 개방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집 안의 관리인 ‘월터’ 그리고 하녀 ‘조지나’가 모두 흑인이라는 점과 다소 공격적인 로즈의 동생 ‘제레미’의 등장으로 미스터리와 긴장감이 증폭된다. 그리고 다음 날 노년의 백인 부부들이 모이는 수상한 파티가 열리고 백인들은 하나 같이 크리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파티에서 만난 유일한 젊은 흑인 ‘로건’은 스타일부터 말투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이에 크리스는 이상하고 신기한 마음에 친구인 ‘로드’를 보여주려고 사진을 찍는다. 이때 실수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갑자기 로건은 코피를 흘리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Get Out’을 남발하며 크리스에게 달려든다.
이 장면까지 영화는 차근차근 미스터리와 긴장감 그리고 복선을 쌓아간다. 이 복선은 영화 말미에 이르러 일제히 드러나며 영화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신경학과 최면에 능한 로즈의 부모는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해 돈 많고 늙은 백인들의 정신을 젊고 건강한 흑인의 육체로 옮기는 끔찍한 일을 하고 있던 것이다. 딸인 로즈는 사랑인 척 꼬셔 건강한 흑인 남자를 데려오고 무술을 배운 아들 제러미는 영화 초반에 나오듯 납치를 통해 계속 흑인 남자를 부모에게로 데려왔다. 그리고 파티에 온 백인들이 다 바이어였고 이번에 나온 물건이 크리스였다. 같은 흑인임에도 어딘가 이상했던 월터, 조지나, 로건은 전부 이 시술을 통해 나온 산물이었다. 즉 그들의 육체엔 늙은 백인(로즈의 조부모 포함)의 정신이 깃들어있었다.
영화의 초반에 부모님 집으로 향하던 로즈와 크리스는 사슴 한 마리를 친다. 이 에피소드를 들은 로즈의 아버지 ‘딘(브래들리 휫포드)’은 사슴을 로드킬 한 게 잘한 일이라 말한다. 자신은 사슴이 싫다면서 사슴은 쥐처럼 생태계를 파괴하는 존재일 뿐이라 죽어 마땅하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딘에게 깔린 이데올로기의 복선을 유추할 수 있다. 여기서 쥐와 사슴에 대비되는 게 바로 흑인이다. 우생학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딘에게 흑인은 사슴이나 쥐와 다른 바 없는 존재였다. 대신 그들의 뛰어난 신체적 능력만큼은 인정했고 이런 육체에 고결한 백인의 정신이 합쳐지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딘은 또 여행을 좋아한다며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항상 기념품을 챙긴다고 말한다. 이 대사도 복선으로 생각해보면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기념품을 챙기는 것은 늙은 백인이 젊은 흑인의 육체에 들어가고 마치 전리품(기념품)처럼 그의 육체를 챙긴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영화는 이처럼 초반부에 딘이라는 캐릭터가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지녔는지 은유적으로 암시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크리스는 벽에 걸려있던 박제된 사슴의 뿔로 딘을 찔러 죽인다. 그토록 자신이 하찮게 여긴 생물들의 조합에 상징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크리스는 공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데올로기를 하나씩 부순다. 딘부터 시작해 로즈까지 단순한 차별을 넘어 그의 존재 자체를 착취하려 한 이들에게 응징을 가한다. 반대로 인종적인 우월함을 넘어 인간의 유한성 이상의 신적 존재가 되려 한 이들은 좌절당한다. 영화는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불로불사라는 세속적이고 허망한 욕망과 연결하며 그 위험성을 강조하는 한편, 결말을 통해 나름의 정의를 구현한다. 그리고 크리스가 그런 것처럼 영화를 보는 우리도 우리 안에 잠재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Get out’ 해야 한다. 이것이 대립과 착취로 가득한 공포의 이데올로기 세계에서 조던 필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