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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찬우 Oct 10. 2024

적산가옥

 가을은 가진 것 이상을 다시 기대하게 하는 약빠른 계절이다. 봄에 가졌던 막연한 바람이 모진 여름의 치열함에 한계를 만났을 때, 가을은 다시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였다.


 나는 덴스홈의 신상품 출시를 위해 바쁜 시간을 보냈다. 기존의 8개에서 20개까지 스태킹 할 수 있도록 개선된 신상품은 쌓는 것만으로도 전기와 상수도 연결이 가능했다. 이번 신상품을 위해 덴스홈은 태평양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수거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가공한 신상품은 출시 전부터 언론의 호평과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아이러니하지만 덴스홈을 기대하는 사람과 호평을 한 언론 어느 누구도 덴스홈의 실 사용자는 아니다. 덴스홈의 진짜 고객은 사회보장기금으로 살아가는 속칭 장외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수급받은 돈은 다시 대부분 몇 개의 대기업으로 흘러간다. 대형 게임사, 대형 유통사 그리고 우리 회사도 포함이 된다. 많은 장외인들의 삶이 연명이라는 목적에만 종속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신상품 출시 TF에서의 4개월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여유와 생각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던 바쁜 일정과 업무는 성취감이라는 모호한 선물을 주었다. 이렇게 더 노력한다면 닿지 않을 거리의 영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나는 그렇게 영생을 확보한 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치열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 끝에 어떤 열매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호한 성취감이라는 연료가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왔던 나는 어느새 다시 의심 없이 달리고 있었다.




 사하는 개인 작업실을 구했다. 1백 년의 시간이 박제된 1구의 독특한 동네에 위치한 적산가옥이었다. 나는 회사와도 가까운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과거 조선은행 사택지였던 이 동네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소유한 일본 전통 가옥이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었다. 단독 주택 자체가 흔하지 않은 1구에 이 동네를 보존하고 있는 지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작업실에 왔던 날 나는 사하에게 물었다.


    “왜 이곳으로 정한 거야? 집에서 가까워서?”


    “아니. 이곳이 마음에 들었어.”


    “도대체 어떤 부분이?”


    “글쎄. 대학생 때 이 동네를 지나가며 이 집을 봤었는데 그때 이미 마음을 먹었던 거 같아. 언젠가 이 집을 갖겠다고.”


 ‘집을 갖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말이 권위적으로 들렸다. 비록 부모의 재력이었을지라도 재력은 삶에 넓은 물리적 공간을 제공할뿐더러 사고의 스케일을 확장시켜 주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금전적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왔다. 그리고 독립과 동시에 부모님은 내 명의의 거주지를 주셨다. 누군가는 내가 노력 없이 가지게 된 나의 것을 목표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대학생 때의 ‘저 집을 갖겠다’라는 명확한 목표가 어찌 보면 부러웠다. 부모의 재력 때문이 아니라 사하라는 사람 자체의 성질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하는 과정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왜 이 집이었냐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산가옥들은 개보수를 할 수 없어. 이 집에 사는 동안 100년 전에 지어진 집 그대로 살아야 해.”


    “100년 전에 싱크대가 있었어?”


    “야! 똥 멍청아. 그런 말이 아니라, 구조변경을 한다거나, 건물을 확장한다거나, 증축을 한다거나, 외부 도색이나 그런 걸 할 수 없다고.”


 이해는 갔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똥 멍청이’라는 말에 조금 심술이 났다.


    “넌 친일파냐?”


 어이가 없는 표정의 사하가 대답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너는 친미주의자신가요?”


 그 후로도 시종일관 진지함이라고는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사하는 동그란 2층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야. 어쩌면 무언가를 지켜내고 있는 것 자체가 소중할 수도 있겠고. 난 이 집을 영원히 지킬 거야.”


 ‘영원히’라는 말에서 느껴진 확신이 부러웠다. 나에게는 아직 막연한 ‘영원’이 사하에게는 얼마나 구체적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널 영원히 지킬 거야. 넌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거야?”


    “응”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나의 대답 때문이었을까.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하는 나를 쳐다보았다.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민하고 대답하라는 의미였을까? 사하는 다시 한번 더 물었다.


    “난 널 영원히 지킬 거야. 넌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거야?”


    “응”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내 심장 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리고 사하의 손을 잡았다. 한참을 손을 잡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일종의 신앙 같은 맹목적 결의를 느꼈다.


 영원한 것은 없고, 완전한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영원을 믿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사하와 영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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