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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찬우 Oct 10. 2024

우리들의 여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새벽 울리지 않아야 할 전화벨 소리에 깨어났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온다는 것 자체가 좋은 소식 일리 없었다. 그 벨 소리는 사하의 전화였다.


    “무슨 일이야?”


    “나 어쩌면 잠시 연락이 안 될지도 몰라. 병원에 가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무슨 일...”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끊어진 전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힘없이 억지로 또렷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나를 더욱 걱정하게 만들었다. 사하는 분명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강도라도 들었던 걸까?'


 그럴 리 없었다. 보안이 철저한 1구의 사유지구에서 외부인 침입 범죄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디가 아픈 걸 꺼야’


 알터인 사하가 어떻게 아플 수 있지? 휴대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검색했지만 1구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도 나오지 않았다.


    ‘전화까지 한 거 보면 심각한 건 아닐 거야’


 나는 애써 나를 진정시켰다. 분명 기다리고 있으라 했었다. 사하는 약속을 지킬 것이다. 사하는 단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 없었다.


    ‘그녀를 믿을 수 있다’


 이 생각의 과정이 나를 힘들 게 했다. 힘없이 억지로 또렷하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런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해는 떠올랐다. 눈치도 없고 이기적인 존재 같았다. 무작정 1구의 병원 응급실에 전화하여 심사하 환자가 내원했는지 물었다. 관계를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가족이 아니라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가족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그저 그녀를 찾을 수 없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연락할 수 있을 때 제일 먼저 연락해 줘>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작정 택시를 타고 응급실이 있는 대형 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도착하여 억지로 지어낸 침착한 표정과 그렇지 못한 발걸음으로 혹시라도 사하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여기저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119 대원은 팔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흐르는 환자를 붕대로 지혈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세상을 다 잃은 할머니의 얼굴까지, 이 공간이 나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닐 거야. 사하는 강하다.’


 그렇게 되뇌며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병원에 가야 하나? 생각할 때였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사하였다.


    “사하야! 무슨 일이야! 어디야!”


 주위를 배려하지 못한 격앙된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까꿍”


 상황에 맞지 않는 이상한 한 마디에 긴장이 풀어지며 오히려 화가 났다.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나는 하늘에 감사했다. 그녀가 무사한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것 만으로 너무 감사했다. 눈물이 흘렀다.


    “어딘데? 어디가…… 아니 괜찮아?”


 나의 울먹한 목소리에서 사하도 나의 상태를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을 것 같았다.


    “길게 말하기 힘들어.”


 사하는 호흡을 쓰지 않고 마치 입에서만 내는듯한 소리로 이상하게 말했다. 


    “기흉 이래. 치료는 다 끝났어.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데.”


    “기흉? 그게 뭐야? 괜찮긴 한 거야?”


    “말하기 힘들어. 난 괜찮으니까 또 전화할게. 알았지?”


 사하는 나를 타이르듯 침착하게 또박또박 말했다.


    “응. 알았어.”


 감사함과 걱정이 등분되며 나를 괴롭혔다. 집으로 돌아가기 두려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다 응급실 빈 침상 앞에서 ‘심*하’라는 이름을 보았다. 사하는 이 병원에 있는 게 분명했다.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신경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심사하 보호잔데 환자 병실 어디로 옮겼죠?”


 간호사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귀찮다는 듯 차트를 보며 답했다.


    “2001호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세상은 간절함에도 항상 너그럽지 않았다. 간절함은 오히려 좌절감을 더 크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간절함으로 그녀를 찾아내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그녀에게로 인도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탔다. 20층 버튼을 서둘러 눌렀지만 켜지지 않았다. 연거푸 눌렀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가 카드키를 갖다 대곤 20층 버튼을 눌렀다. 일반 병동이 아닌 거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마치 스파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내렸다. 입구에서 또 카드키로 문을 열어야 했다. 나는 담담하게 할머니와 함께 20층 병동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001호 문에 노크를 하였다. 


    “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는 사하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문을 열어보았다. TV에서만 봤던 1인 병실이었다. 사하는 병상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한 인기척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까꿍”


 힘없는 소리로 사하가 말했다. 또 ‘까꿍’이라니...’ 진정되지 않던 가슴이 ‘까꿍’ 한 마디에 침착해졌다.


    “얼굴 봤으니까 됐어. 전화 기다릴게. 이 말하러 왔어. 나 간다.”


 사하는 말을 하기 힘든 상태인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가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멋진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뭔가 더 좋은 말을 했어야 했다. 어쨌든 괜찮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마음 아래 자리 잡은 질투라는 이름의 암세포마저 어느새 사랑으로 바뀌었다. 내 온몸을 잠식하고도 터질 듯 자라고 있었다. 어느 하나 무엇 하나 들어올 공간이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단지 사하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음 날 사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까궁”


    “까꿍”


 나도 똑같이 대답했다.


    “왜 오늘은 문병을 안 오냐고~”


 앞뒤 없는 말이 오히려 기뻤다. 


    “아, 지금 가려고.”


    “또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오지 말고 등록해 놨으니까 1층에서 카드 받아서 올라와.”


    “응. 알았어.”


 나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갔다.


 1구의 센트럴병원은 센트럴파크 옆에 있다. K의료의 상징과도 같은 이 건물의 특실에 사하가 있다니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부자인 걸까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영생을 쉽사리 줄 수 있는 사람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억지로 덮어두었다. 사하와의 만남에는 사랑만으로 충분하길 바랐다. 사랑이 목적이 될 수는 없지만 사랑에 목적이 있다면 스스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 같았다. 이미 충분을 초과한 사랑을 오롯이 지키고 싶었다.


 1층에서 카드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당당하게 카드키를 갖다 대고 20층 버튼을 눌렀다. 인정하긴 싫지만 모종의 우월감을 느꼈다. 그리고 20층에 내려 2001호의 문을 노크하였다. 


    “네.”


 사하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까꿍~!!”


 나는 밝게 인사했다. 어제 사하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실리콘 튜브와 장치는 이미 없었다. 사하도 예전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까꿍”


 이전 보다 다소 창백한 사하가 더 예뻐 보였다. 환자복을 입고 있어서 그랬을까? 필요 이상의 배려라는 경계가 사라진 나는 사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센트럴병원 특실에 입원하다니. 사하는 도대체 얼마나 부자인 거야?”


 센트럴병원 특실은 이런 질문이 조금도 무례가 아니게 하는 권위가 있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부자는 아니야. 우리 아빠도 의사였어. 여기 병원장 아저씨랑 친구야.”


 ‘병원장 아저씨’라는 말은 상당히 배타적인 표현이었다.


    “김광원 씨? 유명한 그 사람 말이야?”


    “응. 아빠 친구야. 아저씨가 힘 좀 썼지. 이런 걸 특혜라고 하지. 아주 달콤한.”


 장난기 가득한 사하의 표정에는 일말의 진지함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내가 자기를 대단한 재력가 집안의 자녀로 오해하고 있는 듯한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사하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의사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스스로 퇴직하셨고, 어머니는 레지던트를 끝내고 바로 그만두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럴 거면 왜 의대를 갔었는지 물었는데 그냥 공부를 잘해서 의대에 갔다고 했다. 사하의 아버지는 7구의 유명 병원의 과장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하와 만나왔던 그동안의 시간보다 어쩌면 오늘 사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하는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사하는 나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단지 내가 알터인 사하에게 원하지도 않았던 경계를 만들었던 것이었다. 과민한 경계가 사라지자 따뜻한 바람이 내 살갗에 와닿았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서 나가던 나는 2001호 병실에 처음 들어왔던 어제처럼 병상 앞에 우두커니 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사하에게 말했다.


    “널 100% 사랑하고 있어.”


 어떠한 반응을 기대하고 했던 말은 아니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마음이 의식의 허락 없이 말해버렸다. 그간 내가 사하에게 사랑을 말했을 때와 다른 수 초의 시간이 엄한 긴장감을 주었다.


    “나는 너를 200% 사랑하고 있어.”


 사뭇 진지하고 단단한 사하의 표정과는 상반된 표현이었지만 나는 안도를 느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2배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건가?”


 사하는 진지하고 단단한 표정을 유지하고 말했다.


    “음...... 그런 셈이지?”


 집으로 돌아가며 사랑을 측량할 수 있다면 단위가 무게인지, 부피인지, 밀도인지, 아니면 운동량인지 생각했다. 세기의 사랑이라고 하였던 이야기 속의 그것과 나의 사랑의 크기가 어떨지 궁금했다. 그렇게 길었던 2년의 겨울이 끝나서야 만나게 된 우리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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