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를 만나러 가는 길, 오피스텔 옆 정원에 심어진 나무의 잎이 푸르르게 빛나고 있었다. 저 나무들은 긴 겨울을 이렇게 잘 버텨냈구나 싶어서 기특했다. 무슨 나무일까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니 계수나무였다. 계수나무는 도대체 이 세상에서 어떤 기능적 요소를 담당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크게 쓸모가 있는 나무는 아닌 것 같았다. 이 세상에서 계수나무가 사라진다고 해도 어떤 변화도 없을 것 같았다. 그 계수나무가 마치 나 같았다. 계수나무의 거친 나무줄기를 쓰다듬었다.
‘살아라. 꼭 살아남아라’
문득 계수나무의 수명이 궁금했다.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부러움과는 다른 의미의 감정이었다.
사하는 문득 나에게 회사가 궁금하다고 했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어 했었다.
“뭐, 나처럼 살겠지.”
다소 퉁명스러운 나의 대답에 사하는 되물었다.
“넌 어떻게 사는데?”
나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어보는 사하에게서 이 대화가 쉽사리 끝나지 않겠다고 느꼈다.
“단지 널 사랑하며 살고 있어. 또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
사하는 피식 웃었다.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할수록 뭔가 서운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만나왔다. 사하를 만난 지 1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 사하에게서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라는 말은 마치 ‘나에 대해 알고 싶다’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우리 회사에 가볼래?”
“응.”
사하는 기다렸다는 듯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사하와 함께 회사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모두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나조차 오랜만에 나가는 회사에서 사하는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 회사를 다녀본 적 없는 사하는 내가 아니라 회사와 회사원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더 궁금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 5분 거리의 제타웨이 출입구로 가고 있을 때, 출입구 앞에 서 있는 사하를 보았다. 사하가 뛰어와 나의 팔을 안았다.
“서프라이즈~”
오랜만에 보는 짓궂은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회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집 근처로 찾아온 사하가 너무 예뻤다. 내가 무작정 사하의 집 근처로 찾아갔던 날 사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날의 감정들이 재생되었다. 사하와 회사를 가는 동안 내가 이 세상에 마치 중요한 역할을 가진 사람으로 느껴졌다.
2구의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우리 회사는 상징적인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 1차 IMF 이전 세계경영 기업 이념으로 유명했던 그룹의 본사 건물로 지자체에서는 이 건물의 재건축을 허가하지 않았다. 초고층 빌딩 숲 사이에 네모 반듯한 작은 건물에 우리 회사가 있었다. 1층 보안기에 사하의 생체스캔을 등록하고 우리는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오, 멋지다. 빨리 사무실에 가보자.”
겨우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이동하는 동안 사하는 견학 나온 학생처럼 들떠있었다. ‘멋지다’는 표현에 괜히 으슥해졌다. 그 멋짐이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짧은 복도를 이동하여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사무실에 몇몇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또 몇몇은 업무인지 사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시끄러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충 빈자리에 앉아 가상화면을 켰다. 사하는 어느새 우리 근처로 다가온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멀리 창가에 앉아 헤드폰을 쓴 저 남자의 반려견 같은데 으레 있는 일인 듯 우리에게 와서 놀고 있는 반려견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부터 일해?”
사하는 걱정인지 미안함인지 아니면 다그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일은 잠시면 끝나. 30분?”
“옆에 있어도 돼?”
“응. 얼마 걸리지 않아.”
사실 오늘은 사하와 회사에 오기 위해 연차를 등록한 날이었으며 딱히 급한 업무도 없었다. 그래도 뭔가 사하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가상화면에 빅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데이터 질의 언어를 빠른 속도로 타이핑하였다. 평소에 AI가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보고서를 볼 뿐이지만, 사하에게 뭔가 내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어느새 호기심이 사라진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응, 이번 신제품의 분기별 판매량을 추정하고 있는 거야.”
나는 직접 이런 분석이 가능하다는 걸 으스대며 말했다.
“그런 걸 사람이 직접 해?”
“응. 보통은 AI가 하지만 사람이 신뢰성을 검증해야 하거든. 그리고 AI의 추정 로직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도 지속 모니터링 해야 하고. 그걸 알아야 나도 로직을 이해하고 AI가 빠트린 외부변수를 추가하거나 할 수 있으니까.”
사하에게 내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퍼포먼스는 정곡을 찔려 급급한 변명이 장황해졌다.
“응. 뭔가 대단해 보이네. 네가 AI 보다 위에 있는 것 같아.”
예상치 못했던 사하의 한 마디에 다시금 우쭐해졌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하하하”
원하던 것을 얻은 후에만 가질 수 있는 겸손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논의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아니 확인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회사라는 곳이 이렇게 넓은 공간을 낭비하고 정적인 곳일 줄은 몰랐어.”
속상한 감상이었다. 나를 비롯한 이곳의 동료들은 솔직하게 회사의 지속 생존, 즉 영생을 위한 간절함과 간절함을 넘어선 광기에 공감하지 않았다. 회사는 냉정하게 나에게 생존을 위한 ‘수단’ 그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에 뭔가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회사를 수단으로 대했기에 회사 또한 나를 도구로 대했던 것은 아닐까? 내 연차 때 역할을 알 수 없는 임원이라는 게임의 승자이자 광인들은 어떤 생각과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정말 그들은 목숨을 건 대가를 보상받은 걸까?
나는 반복적으로 해왔었던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지난주의 추정치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최근 늘어난 판매량이 더 높은 수요를 예측하게 하였다. 나는 빠르게 보고서를 업로드하였다. 연차 중에도 비정기 보고서를 등록한 나를 어쩌면 회사에서는 기특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다 끝났어. 이제 뭘 할까? 회사를 둘러봐도 되려나?”
흥미를 잃어버린 사하는 그래도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응. 그래도 돼”
우리는 회사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어딜 가도 마찬가지였다. 휑한 공간과 겨우 몇몇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아, 올라가면 카페테리아가 있어. 가볼래?”
“그러자.”
마지막 희망인 카페테리아에서 사하의 표정은 조금 밝아졌다.
“여긴 그래도 사람이 많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사하는 소곤소곤 말했다. 나도 몇 번 와보지 않았던 공간이라 어색했다. 한쪽 벽면에는 덴스홈의 역사와 그동안의 성장과장이 영상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사하는 창가 쪽으로 나를 데려갔다.
“서울역을 위에서 내려다보긴 처음이네.”
창 아래로 국제선 기차역 입구인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던 건물이 보였다. 우리 회사 건물처럼 초고층 건물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회사에 근무할 때 창 아래를 내려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창 밖으로는 주위의 초고층 빌딩들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그 빌딩들이 판옵티콘과 같은 위압감을 주지는 않았지만, 나의 바로 옆에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박탈감을 주었었다.
사하와 나는 회사를 나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사하가 생체인증을 하고 나가자 전광판에 문구가 나왔다.
<덴스홈을 방문해 주신 심사하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외부인 출입 처리 완료 문구가 꽤나 섬뜩하게 느껴졌다. ‘당신의 정보가 기록되었으며 보안상의 문제가 생길 때 당신은 용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으로 보였다. 사하와 함께여서 예민해진 걸까? 낯설리 없는 회사에서 생경함을 느꼈다.
과연 기업은 무엇일까? 대표인가, 주주인가, 구성원인가, 소비자인가, 상품이자 서비스인가, 직장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말인가? 각자의 명확한 역할로 구동되는 시계처럼 단순했던 인식이 하이어라키로 조직된 모호한 생명체로 느껴졌다.
“회사 지하에서 밥 먹고 갈까?
“그래. 재밌겠다. 가자.”
‘재밌겠다’라는 말이 엉뚱했다. 밥과 함께 문장이나 대화에서 나열되는 물리적 거리가 가장 짧은 단어는 ‘맛’이지 ‘재미’가 될 수 없다. 물론 뭘 먹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맛있겠다’라는 표현이 더 어색할 수 있을 테다. 그렇다면 ‘배고팠는데 잘됐어’ 같은 표현은 어땠을까? 이런 생각은 아마 나도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알터에 대한 편견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알터는 식욕이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 편견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게 특이점의 시대 이전 알터 중에서 과체중 알터를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알터는 기본적으로 현재 개발된 거의 모든 항체를 가지고 있으며 우성 유전자로만 생산된 완전체이다. 과체중이 열성이라 먹는 즐거움이 제거되어 있다면 과연 이것을 우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지하 아케이드에 들어서자 사하는 여기저기 살펴보기 바빴다. 회사에서 보다 어쩌면 더 생기 넘쳐 보였다.
“출근하면 여기서 밥 먹어?”
“응. 보통은 그렇고 건너 띌 때도 많고 남대문 시장에 가서 먹을 때도 있고.”
나는 지하 아케이드 식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훌륭한 환기 시스템은 식당가임에도 아무런 냄새가 없었다. 음식 냄새가 없는 식당가는 AI 로봇 반려견처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자체에서 문화유산으로 보전하고 있는 남대문 시장은 공기에서부터 맛이 느껴진다. 과일 냄새와 기름 냄새를 지나 찜 증기 냄새는 식욕을 자극하고 미각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우동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동 두 그릇을 주문했다.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우리 가게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리합니다’라는 자부심을 강요할 만큼 느리게 식사가 나왔다. 가다랑어포를 우려낸 맑은 국물에 윤기 가득한 우동면 그리고 향긋한 유자향의 단무지의 매우 단출한 메뉴였다.
“야! 너무 맛있겠다!”
사하의 반응에서 ‘귀엽다’ 또는 ‘예쁘다’가 아닌 의심이 싹텄다.
‘알터는 음식을 보면 으레 저렇게 표현하는 걸까?’
내가 한 그릇을 다 먹기도 전에 사하는 물티슈로 입을 닦았다. 1/5은 먹은 걸까? 어쩌면 새로 올 손님에게 다시 내어주어도 모를 만큼 양이 줄어있지 않았다.
“이 집 진짜 맛있다. 여기 아케이드는 맛집이 많나 봐.”
“응. 조이야.”
맥락이 없는 대답에 사하는 조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조이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가 키우던 앵무새야. 늘 한 줌도 안 되는 모이를 먹고 나면 뒤뚱뒤뚱 춤을 췄어. 너무 예쁜 아이였지.”
“조이는 어떻게 됐는데? 아직 살아있어? 아직 키우고 있는 거야?”
“음…… 알 수 없지. 살아 있길 바래. 어머니는 조이를 새장에서 키우지 않았어. 조이가 드나들 수 있는 작은 통로가 있었는데 조이는 밖으로 나갔다가도 어김없이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왔었어. 내가 어렸을 때 어느 날 조이가 더 이상 밥을 먹지 않고 춤도 추지 않았어. 그리고 밖으로 나간 조이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어.”
“아. 조이는 곧 죽을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응. 그런 거 같아. 우리에게 죽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
“아. 앵무새도 영물이구나.”
사하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오랫동안 잊고 지낸 조이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모이를 먹고 난 후 거실 바닥에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던 뒤뚱뒤뚱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내 마음 아래 구석에서 질투라는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었다.
사하의 영생이 나는 부러웠던 걸까?
사하가 네처였다면 더 좋았을까?
사하는 나를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질투는 사랑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흔한 감정의 하나일까?
내가 모자라고 조악하여 연인을 질투하는 것일까?
생각이 길어질수록 초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