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왔을 때, 반알터테러는 잊히고 있었다. 알터차별금지법 강화를 위한 입법이 예고되어 있었지만 입법은 의외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골자는 알터 차별 금지를 강화하는 목적인 것 같았지만 알터 차별 행위에 대한 형량이 강화되었을 뿐 생각하지 못했던 입법이 진행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종신형 재소자의 대체신체 구매 불가 조항이었다. 몇 차례 종신형 재소자의 대체신체 구매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었다. 종신형 재소자의 대체신체 구매 불가는 사실상 사형을 의미했다.
두 번째는 개인사찰드론의 범죄자 감시 목적 사용 승인이었다. 반알터테러 때 개인사찰드론의 위용을 모두 체감하였었다. 아누비스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승인 건은 일반인에 대한 사찰은 불가능하고 오직 가석방 범죄인에게만 한정하여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법안이었다. 개인사찰드론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량은 어마어마했다. 개인사찰드론은 24시간 범죄자들을 추적하며 AI가 실시간으로 범죄 징후를 판단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실질적 사형수가 된 종신형 재소자와 일부 흉악범들을 제외한 많은 재소자들이 가석방으로 출소가 예정되었고 이 사건은 연일 언론을 장악했다. 아누비스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는 가석방자들의 재범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지만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현재의 경찰 인력이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가석방자들의 집단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석방자들과 같은 구역에 거주해야 하는 두려움을 빙자한 불쾌함이었다.
2040년 24대 신재화 대통령은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생명 연장의 선택을 제한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신재화 독트린이라 불리는 이 선언의 핵심은 ‘살 권리’였다.
과거의 ‘살 권리’는 ‘어떻게’, ‘어디에서’가 핵심이었지만, ‘언제까지’라는 다른 관점이 생겼다. 정부는 이 선언을 통해 대체신체 기업을 지원하였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물론 ‘언제까지’라는 관점이 주요 골자이긴 했지만 당시 사회적 문제였던 ‘어디에서’ 또한 해결방안이 절실한 사안이었다.
당시 집단주거지구에서 ‘사회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의 입주를 거부하는 문제가 있었다. 사회신용등급은 과거 금융권에서 채무의 변제 능력을 수치화 한 신용점수에다가 자산규모, 교육 수준 및 사회 기여도와 범죄 이력까지 모두 계산 한 등급이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타인이 사회신용등급을 조회할 수는 없었지만, 브로커를 통해서는 쉽사리 알아낼 수 있었다.
언제까지 살 권리와 어디에서 살 권리 모두 결국 ‘돈’이 문제였다. 결국 돈이 권리이자 생명인 것이다. 대체신체를 구매할 수 있는 금전적 능력은 최소 1등급은 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보장기금을 통해 대체신체를 지원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나 같은 셀러리맨을 국가에서 지원할 리는 없었다. 정부는 그렇게 살려져야 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력 또한 가지고 있다. 딱히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 1등급이 되던지 아니면 지금을 만족하며 살던지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였다. 이것이 자유라는 이름의 관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