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는 아누비스 프로젝트 시작으로 재소자들을 1차 가석방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1차 가석방 대상자에는 언론에 공개되었던 범죄자가 없었기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다. 정작 화재가 되고 있는 건 2차 가석방 대상자였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1차 가석방자들을 감시하고 적절한 2차 가석방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2차 가석방 대상자에는 언론에 공개되어 사람들이 기억하는 범죄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태오도 포함되어 있었다. 계엄령과 이번 입법의 핵심 인물 태오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범죄자 가석방 사건을 ‘아누비스의 은혜’라고 불렀는데 어쩌면 태오에게는 ‘아누비스의 특혜’가 아닌가 싶었다. 태오를 만나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는 태오가 아직도 오롯이 남아있기를 바랐다. 사하도 이 뉴스에 관심이 많았다.
“태오 씨, 나도 만나게 해 줄래?”
무심한 말투에도 그녀의 눈빛은 그러지 않았다. 태오와의 만남을 내가 허가해야 하는 묘한 상황이었다.
“그래. 같이 만나러 가자.”
반알터 테러리스트에게 알터인 사하를 소개해준다는 게 내심 내키지 않았다. 태오가 사하에게 무례하지는 않을까? 사하가 태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뭘까?
“근데 왜 만나려는 거야?”
“글쎄…… 딱히 이유는 없어.”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예술가라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다.
사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었다.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몸이 안 좋아?”
“별 거 아닐 거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많이 피곤하네……”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신궁으로 오르는 108 계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사하는 화상회의에서 참여 중인 사람들에게 자주 화내는 모습을 보였었다. 아마 그것 때문일 테다. 어느새 잠든 사하를 바라보았다.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야’
사하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지켜내야 할 소중한 사람이 있어 행복했다.
108 계단 공공 프로젝트 때문에 사하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108 계단 전체에 빛을 99.99% 흡수하는 검정 물질을 도포하여 계단을 사라지게 만드는 방향으로 합의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의 윤곽을 확인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계단을 사람들이 오르는 체험이 기획되고 있었다. 과거는 존재했고 지울 수 없다는 메시지와 프로젝트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하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왜 이 프로젝트에 여러 명의 아티스트와 기획자가 함께 참여하는지 자체가 의문이었다. n명의 전문가가 참여한다고 해서 n배의 성과가 나오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사하는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언젠가부터 부쩍 나빠진 시력으로 안경을 쓰는 모습이 보였다.
YK5008, 나를 반하게 했던 초록빛의 눈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게 슬펐다. 하지만 오른쪽 시력만 나빠지고 있는 게 일시적 스트레스 영향이라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점점 2층 계단을 올라가는 걸 힘들어하는 날이 잦아졌다. 단순 스트레스 탓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 차례 병원 방문을 권했지만 사하는 고집을 피웠다. 어쩌면 이미 사하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그녀를 지킬 차례다.’
나는 굳은 결의를 하였다. 내가 사하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원인을 알 수 있었다. 2040년대 후반 생산된 일부 알터에게서 미토콘드리아 질환이 집단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전대미문의 이 사건이 모든 미디어를 장악했고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적어도 사하와 나에게는 그랬다. 비록 2040년대 후반 일부 모델에서만 발생하였지만 사람들의 공포는 알터 전체로 확산되었으며 신앙 같았던 영생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쌓아 올린 어리석은 탑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되게 하였다. 물론 대체신체 자체의 기대 기한이 80여 년이긴 했지만 네처에게는 희귀병인 미토콘드리아 질환이 집단 발병하게 되면서 알터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내가 널 지킬 거야.”
나는 사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TV를 보고 있는 것 밖에 없었다. 미디어에서는 희귀 질환에 대해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알터에게 아직 알지 못하는 모계유전병이 더 있을 수 있다고도 하였다.
나는 어두운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비단 특정시기의 생산 모델에 국한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보도들은 더 큰 공포심을 조장하였다. 마치 이런 일을 기다렸던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이 두려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음날 초대기업의 수장 머스키가 집단 질환 알터의 전량 리콜을 선언하였기 때문이었다. 생명과 존속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는 머스키는 모든 알터의 존속을 보장할 충분한 펀딩과 의료지원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보도가 있었던 다음날 바로 대처한 신속함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집단 질환 가능성을 머스키는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하였다. 이후 집단 질환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알터들과 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단 하루였다. 사건의 3일 차 모든 언론은 리콜 일정을 포커스 하였었다. 사하는 알터 공식 인증 병원인 센트럴병원으로 일정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나는 마치 잘못을 한 아이처럼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지.”
몇 일간의 시간이 사하에게 얼마큼의 두려움이었을까 가늠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냉정 하려고 애쓰는 사하를 볼수록 가슴이 아팠다.
“약속을 지킬 수 있겠네. 너와의 약속.”
사하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나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더욱 나를 힘들게 하였다. 몇 일간의 시간 동안 그녀는 어떤 생각까지 했던 걸까? 나는 사하와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지만 사하는 ‘끝’이라는 상황을 생각했던 것 같았다. 배신감이었을까? 아니면 사하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책망하는 걸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사하가 눈물을 흘렸다.
“너무 무서웠어. 모든 게 다...”
사하의 목까지 수포가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