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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찬우 Oct 14. 2024

폭우

 이후로 사하는 더 나빠졌다. 온몸의 경련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음식을 삼키기 힘들어했다. 나는 3개월의 휴직을 신청하고 사하의 곁을 지켰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녀의 곁을 지키는 것 밖에 없었다.


 사하와 나는 삶에서 첫 쉼표를 찍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는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 않았다.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책을 읽고, 식사를 하였다. 그렇게 하루가 채워졌다. 매일 무언가를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루에 한 번 나와 사하는 외출을 했다. 사하는 굳이 휠체어를 고집했다.


    “전동체어가 더 편할 텐데, 주문할까?”


 사하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꼭 휠체어야 해.”


    “왜?”


    “더 멀리 갈 필요도 없잖아. 그냥 매일 집 앞을 나갈 뿐인데...”


 나도 휠체어가 좋았다. 나를 동력으로 이동하는 사하와의 시간은 내가 보호자라는 사실을 공고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은 정말 우리가 함께 있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햇살이 눈부시고 새소리가 들렸었던 거구나. 바람도 불고.”


    “아이고, 좀 쉬더니 아주 낭만주의자가 되셨네.”


 사하는 비웃으며 말했다.


    “글쎄. 점심시간에 밖을 나간 적도 많았지만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야. 그때는 새소리를 듣지 못했거든.”


    “듣지 않았던 건 아니고?”


    “그러게... 왜 안 들렸었지?”


    “너의 욕심이 모든 감각을 막아서?”


    “어떤 욕심?”


    “그건 너에게 물어봐야지...”


 나는 휠체어를 밀며 생각했다. 과연 어떤 욕심이었을까? 돈, 영생, 성과, 지위 어쩌면 사랑도 모두 소유를 위한 욕심이었던 걸까?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하의 수술을 하루하루 기다리며 지낼 뿐이었다. 


    “새소리는 들리는데 새는 어디 있는 거지?”


    “조이가 널 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잊고 지낸 조이가 다시 생각났다. 조이는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그렇게 사하와 나는 하루하루를 함께 채워나갔다. 그리고 무척이나 찬 바람이 불었던 그날부터 우리는 밖을 나가지 않았다.


 사하는 심한 근육통으로 힘들어했으며 시력과 청력이 떨어졌다. 조금만 있으면 사하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도 그녀를 지키는 지금의 시간이 힘들었다. 얼굴까지 올라온 수포와 잃어가는 시력을 지키려 부릅뜬 두 눈이 나를 아프게 하였다. 


    “그냥 편하게 눈감고 있어.”


    “싫어. 아픈 나를 기억하게 하기 싫어.”


 사라의 모든 말에 투정이 늘어갔다.


    “난 괜찮아. 너의 곁을 지키고 있어서 행복해.”


    “너도 걱정 마. 네가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모습이 지금은 아닐 테니까. 그런 비운의 주인공이 될 마음은 없으니까.”


 이제 다음 주면 사하는 또 대체신체로 이식이 될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었다.


    ‘그래. 이제 다 왔어.’


 점점 어린아이 같이 구는 사하가 예뻤다. 가끔 엉뚱한 소리도 하곤 했다. 그렇게 며칠을 더 기다리면 되었다.




 어느덧 겨울이 다시 왔다. 지긋지긋했던 겨울, 그 겨울이 다시금 반가웠다. 봄이 다시 오면 우리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내일이면 사하는 완전하게 나에게 돌아올 것이었다. 지독하게 많은 비가 쏟아졌다. 


    ‘이 또한 내일이면 끝이다’


 다시 돌아올 사하에게 무엇을 준비해 둘까 생각했다.


    “드디어 내일이네.”


    “뭐, 처음도 아닌데...”


    “그때가 생각이나?”


 나는 배려 없이 물었다. 버닝게이트 차량 화재로 생명이 끝이 났을 때 그녀는 알터가 되었다. 그녀가 알터 수술직전을 기억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기억하지... 다... 너무 고통스러웠고 눈을 뜰 수 없었어. 요란했던 병원의 소리를 잊을 수 없지.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태어났지만 말이야.”


    “그랬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 다른 알터들도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하잖아. 너무 걱정하지 말자. 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내가 서있을 거야.”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고맙긴 한데 내가 눈을 떴을 땐 수술실일 거야. 거긴 네가 들어올 수 없어.”


    “그렇긴 하지만...”


    “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넌 어떨 거 같아?”


    “그런 말 하지 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창 밖의 빗소리만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던 그때 나는 분위기라도 바꿀 요량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


    “그대의 폭우 같은 한마디에...”


    “산딸기처럼 잊혀지다.”


 사하는 눈을 감은 채 내 말에 바로 이어 말했다.


순간 심장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뇌는 미친 속도로 이 말의 다른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런 대답을 하면 안 되었다. 그런 대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실 뒤편에는 반 아이들이 백일장 행사에 썼던 글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그중에는 선생님이 썼던 시가 한편 있었다. 나는 그 시가 좋았다. 매일 그 시를 이유 없이 소리 내어 읽었었고 그 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시는                    


그대의 폭우 같은 한마디에

난,

산딸기처럼 잊혀지다.


로 끝이 났었다. 등단을 했을 리가 없는 선생님이 썼던 그 시의 그 구절을 똑같이 대답할 가능성이 있을까? 언어도단의 나는 방황하는 눈빛으로 사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너?”


 당황하는 사하의 표정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움직이기 힘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처음 보는 나약한 여자의 얼굴이었다. 힘없는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다.


    “네가 아는 심사하. 그리고 심도이.”


 그 말을 하고 그녀는 얼굴을 떨구었다. 얼굴까지 올라온 수포 사이를 따라 눈물이 흘렀다.

‘심도이’

나는 그를 알고 있다.


 중학교 2학년, 3학년 두 해 동안 같은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종종 나에게 와서 엉뚱한 말을 걸던 아이였다. 항상 나의 근처에 앉아 있어서 그 아이를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3학년 때 그 아이는 사라졌었다. 졸업을 했을 때 그 아이는 확실히 없었다. 이유도 모르고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사라졌었다. 그렇게 사라졌어도 내 기억의 한편도 차지하지 못했던 그런 아이였다. 

나의 뇌는 바빠졌다. 오랫동안 접근 하지 않아 하마 깊숙이 묵혀뒀던 기억을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잊었던 기억의 편린들이 먼지를 털어내고 하나 둘 되살아났다.


 스콜이 왔던 어느 날, 자기는 부모님이 데리러 오기로 했다며 자기의 예쁜 우산을 주었다. 내일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그냥 가지라고 했었던 거 같다. 집에 그 우산을 쓰고 갔었는데 처음 보는 우산을 엄마는 꽤나 마음에 들어 했었다.


    “어디서 이런 예쁜 우산을 산 거니? 별일이네?”


    “아, 그거 우리 반 애가 쓰고 가라고 준 거야.”


    “남자애가 멋지네. 이런 우산을 가지고 다니고... 내일 꼭 챙겨가서 돌려줘.”


    “그냥 가지라고 하던데?”


    “그러면 안돼. 딱 봐도 비싸 보이는데, 이런 걸 그냥 받으면 안 되지.”


 괜히 나를 경솔한 사람으로 나무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삼삼오오 반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을 때면 어디선가 나타나 한 마디씩 끼어들고는 사라졌던 기억, 그리고 노트에 낙서를 하고 있는 걸 지나가다가 한참을 보고 있으니까 ‘잘 그리냐?’라며 나에게 배시시 물어보던 기억들이 순서 없이 떠올랐다.


 그 아이는 달려드는 사자를 그리고 있었다. 사자의 얼굴과 갈퀴 그리고 앞다리 근육의 표현이 신기했다. 대충이라도 그리기 힘들 것 같은 사자를 뭔가를 보지도 않고 슥슥 삭삭 그리고 있던 게 생각났다.


 그 아이가 사하라니... 난 오랫동안 멈춰 서있었다. 마치 초침을 잃은 시계처럼 우리는 움직임이 없었다.


    “나, 내려가 있을게.”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마치 도망치듯 발소리도 없는 걸음으로 그렇게 내려왔다.


‘심도이’


 아래층 식탁 의자에 앉아 기억을 더듬는 노력을 멈추고 어떻게 우리가 만났었는지 생각했다. 사하와 나는 우연히 카페에서 만났었다. 우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우연이 아니었던 거 같다. 어쩌면 사하는 늘 나의 곁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무서운 감정은 아니었다.


    도대체 왜 나였을까?

    정말 나의 곁을 맴돌았던 걸까?


 올라가서 하나하나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일은 사하의 수술이 있는 날이다. 나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혹여 놀랄까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문을 열었더니 사하는 내가 내려갔을 때 그대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나를 쳐다보지 못하는 사하에게 말했다.


    “빨리 자. 내일 중요한 날이잖아. 난 집으로 돌아갈게.”


 그러고는 내려와 버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인 양 냉정하게 말하고 내려왔다. ‘돌아가 있을게’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도 나의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내일은 사하의 부모님이 사하를 데리러 올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내일 꼭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그렇게 나쁜 선택을 한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변호했다. 하지만 난 돌아갈 집이 없었다. 3구의 나의 오피스텔은 이미 렌트 중이었다. 갈 곳이 없었던 나는 부모님의 집으로 갔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폭우는 염치없는 복선이었던 것 마냥 나를 조롱했다. 그냥 비라도 맞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연락도 없이 한밤중에 찾아온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라는 표정이었다. 그게 고마웠다. 


    “씻고 들어가서 자. 늦었네.”


 마치 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에겐 늘 내가 돌아갈 집이 있었다는 걸 잊고 살았다. 몇 년 만에 돌아온 내 방의 침대에 누워 잠에 들 수 없었다. 방 밖에서는 약간이 인기척이 들렸다. 어느 밤 불쑥 찾아온 아들이 걱정되는 걸까? 엄마도 잠에 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누워있었다. 심지어 뒤척이는 소리마저 엄마가 걱정할까 싶어 나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겨우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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