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의 생경한 느낌, 내가 자랐던 이 집에서 잠을 깬 나는 잠시 낯선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꿈이라는 것에 감사했다. 그 감사함도 잠시, 어젯밤의 일들이 쓰나미처럼 내 앞으로 다가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하나씩 천천히 다시 생각했다. 현실성이 없었던 어제의 일마저 꿈의 일부 같았다. 모든 건 현실이었다. 냉정하게 나는 나에게 물었다.
‘지금 나는 무얼 원하냐고’
꿈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나에게 꿈을 통해 말했을 테다.
‘그저 사하가 보고 싶다’
나는 사하가 그동안 나 몰래 유지했던 강한 긴장의 끈을 놓은 그 순간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어제 난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어떤 말, 어떤 행동을 어젯밤에 했어야 했을까 라는 질문에는 아직도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도망치진 않았어야 했다. 그저 겁이 많고 비겁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분명 사하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던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리 비대해진 사랑의 크기도 두 사람이 만나 만들어진 두 개의 사랑은 각자의 것이었다. 그 두 사랑이 많이 닮아 있길 바랐다. 폭우 같았던 어젯밤의 일이 두 사랑에 생채기를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생채기가 두 개의 사랑을 접붙였다. 내 안의 뜨거운 확신 의심이 사라진 나를 위로하였다.
방 밖으로 나왔다. 간장에 생선이 졸여지고 있는 냄새, 어릴 적 자주 맡았던 그 냄새였다. 생선을 싫어하던 나에게 엄마는 말린 굴비 살을 간장에 조려 주었었다. 그 냄새가 내가 집에 와있다는 걸 다시 알려주었다.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은 나에게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흰쌀밥과 굴비 조림을 주었다. 1년 만에 늦은 밤 불쑥 찾아온 나에게 아무 말이 없으셨다. 엄마와 나 마주 앉아 식사를 하였다. 지긋이 내 얼굴을 바라보던 엄마가 말했다.
“생각이 정리가 됐나 보네. 네 마음이 시키는 그곳으로 가. 그러면 돼.”
엄마는 어제 나에게서 뭘 봤던 걸까? 잔뜩 겁먹은 나의 갈등을 봤던 걸까?
“응.”
우리는 또 그렇게 아무 말하지 않고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또 올게. 엄마.”
“다음엔 웃는 얼굴 보고 싶네.”
엄마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응.”
나는 사하의 집, 아니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사하가 깨어날 거다. 지금 병원을 찾아간다고 해도 사하를 만날 수 없기에 난 지금의 초조함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다.
‘집을 치우자’
막상 깨끗한 집은 억지로 치워낼 곳이 없었다. 1층 작업실을 2층으로 옮길까 생각했지만 주방 옆 침실은 말이 안 됐다. 창가를 등진 큰 2인용 소파를 빼내었다. 소파의 뒷면이 보기 싫진 않을까 걱정하며 빼내었다. 낡은 소파의 뒷면은 오히려 새것처럼 깨끗했다. 사하가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처럼 아무도 보지 못했던 깨끗한 배면이었다.
나는 소파를 창밖을 바라볼 수 있게 두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았다. 새소리가 들렸다. 창 밖에 나무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쓸모는 알 수 없는 나무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창 밖을 바라보고 생각했다.
‘여기가 내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