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었던 어제 혼자 브리즈 아트페어와 화랑미술제를 다녀왔더니, 아내는 티브이로 넷플릭스의 인기 콘텐츠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었다. 집에서 식사를 하며 잠깐 같이 보게 되었는데 극 중 할머니가 된 문소리배우가 딸에게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그건 그제야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한 극 중 문소리배우의 행복한 선택이었다.
예전에 죽음을 앞둔 분들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질문은 '죽음을 앞두고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가'였다. 가장 많은 대답이 '가족과 함께 여행 한번 가지 못했던 것'이었고 다음으로 많았던 대답이 '나를 위해 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본 게 첫 직장에서 대리 진급을 할 때였으니까 15년 정도 전이었던 것 같다. 그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셨던 분들이 시한부들을 제외하면 70대 이상의 분들이 많았으니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오셨을 것 같다. 지금의 젊은이들의 삶을 과연 풍족의 시대였다고 내가 감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셨던 분들보다는 대체로 여유롭다고 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왜 자신을 위해 살지 못했다고 회고했을까. 아마도 영상의 맥락은 자신은 가난으로 교육의 기회도 제공받지 못했으며,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았던 시간에 대한 회고였다. 40대인 나는 죽음을 앞두고 어떤 후회를 하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나도 나를 위해 살지 못했다고 후회하게 될까?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취미라는 게 삶에 꼭 필요한가라고 한다면 당신의 대답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어쩌면 필수조건은 아닌 것 같다. 많지는 않지만 가끔 회사에서 인생의 100%를 회사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취미도 없는 것 같고 트렌드를 소비하는 걸 보지도 못했다. 그저 먹고, 자고, 일 밖에 하지 않아 보였지만 그들은 엄청난 성취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오직 회사에서의 승진이 삶의 동인이라면 뭐 어쩌겠는가. 그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로 충분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다.
다시 돌아가,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은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행위가 물론 전문 음식칼럼니스트도 있으니 전문적이진 않지만 즐기기 위한 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닌 것도 비슷하다. 취미라기보다는 여가활동이 맞는 표현 같다. 자기를 위해 살지 못한 걸 후회한 그 시절의 노인들도 분명 아침드라마를 보고, 주말에는 전국노래자랑을 보지 않았을까?
'폭싹 속았수다'의 문소리 배우가 극 중에서 새로운 취미를 가지게 된 걸 말할 때의 그 행복한 표정이 바로 취미라는 것이 우리 삶에서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된다. 당신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의 취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 아트 컬렉팅
- 락밴드 : 일렉기타와 보컬 파트로 전 직장 동료들과 10년째 이어가고 있음
- 브런치 글쓰기 : 가끔 글 배설 같기도 하다
정도를 하고 있다.
젊은 시절 다른 취미도 많았었는데, 등산에 미쳤던 적도 있고, 달리기에 빠졌던 적, 목공예를 배우겠다고 목공방을 다녔던 일, 옷 만들기를 해보고 싶어서 패션 디자인 학원을 다녔던 일, 그리고 디제잉을 해보고 싶어서 네이버 카페를 만들고 디제잉을 배우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모도 하고 디제잉도 하고 했던 기억이 있다.
수능을 치고, 대학을 합격하자마자 기타를 사러 갔었으니 가장 오래된 취미는 기타 연주겠지만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취미는 미술전시를 보는 일이었다. 그 취미 생활이 결국 아트컬렉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면 내가 아트 컬렉팅이라는 취미를 통해 얻게 되었던 건 무엇인지 공유해보고 싶다.
1) 사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항상 즐겁다. 공통된 주제가 있으니 MBTI의 I성향이라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아트 컬렉팅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대부분은 다른 컬렉터 분들이고, 작가, 전시 기획자들이 있다. 물론 내가 그들과 친구 같은 관계로 지내지는 않지만 언제든 편하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전시나 페어에서 만나게 되면 커피도 마시고 식사도 할 수 있다. 가끔은 전시도 같이 다니기도 하고 같이 여행도 다닌 적도 있다. 페어장에 가거나 하면 나의 SNS를 팔로우하고 있는 분이 먼저 아는 척을 하기도 하고, 나도 팔로우하고 있는 분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도 한다.
나는 40대 직장인이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드물고, 오히려 대인관계는 직장 중심으로 축소만 될 뿐이었다. 새로운 취미는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2) 간지
사람들에게 취미로 아트 컬렉팅을 한다고 하면 다들 생경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내 주변에 아트 컬렉팅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겠지만 사실 한국에 미술품을 구매하는 인구수는 많지 않다. 당신이 강남구에 거주하고 미술품 구매를 비용처리하는 자영업자나 의료인이 아니라면 사실 그렇게 주변에 아트 컬렉터가 많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트 컬렉팅은 취미로 말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대외적 평판이 좋긴 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취미를 설명하면서 문화적 우월감을 뽐낼 수 있다. 물론 겉멋으로 이 시장에 진입한 사람 중에 꾸준히 아트 컬렉팅을 이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아트 컬렉터들은 미술시장이 불황이든, 활황이든 꾸준히 아트 컬렉팅을 이어간다. 어떤 미술계 인플루언서분이 SNS에서 '덕질은 소비를 대나무처럼 만든다'라고 했었다. 대나무가 줄기외 곁가지가 많지 않은 것처럼 덕질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소비를 덕질에만 집중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 메거진의 이름처럼 용돈모아 그림 사는 남자이다. 우리 집의 경제권을 모두 아내가 일임하고 있지만 나는 최대한 용돈을 아껴서 아트 컬렉팅에 소비한다. 물론 용돈만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많은 부분 아내에게 금융지원을 요청하지만 모아둔 용돈으로 구매할 때는 아내의 승인이 없어도 된다.
3) 다양한 기회와 경험
KBS 2TV 전현무 씨가 진행했던 아트 예능 '노머니 노아트'가 방영되기 전 인스타그램 DM으로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이 왔었다. 공개촬영이 아닌 방송현장에 가본 적이 없어서 승낙했고, 티브이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작가님께서 지속 출연 요청을 주셔서 운 좋게 야간 녹화가 있는 날은 모두 출연했던 것 같다. 이 방송을 통해서 초대받은 컬렉터들과의 인연은 아직까지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DM으로 미술 관련 업체의 UI/UX를 맡게 된 업체에서 인터뷰 요청도 있었다. 인터뷰 비용이 꽤나 괜찮았다. 나야 부담 없이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접하게 되는 미술과 컬렉팅 관련된 정보와 SITE별 참고사항들을 정리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대가를 받았다. 물론 경제적 이득보다는 그 또한 하나의 새로운 경험으로 가치가 있었다.
4) 컬렉션
모든 수집활동은 결국 수집품을 남기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내가 컬렉팅 한 컬렉션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배워가는 중이고 많이 부족하지만 나의 컬렉션은 결국 점점 나의 취향을 보여주며, 나를 닮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개개인의 성향 차이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실존으로 증빙할 수 없는 행위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를 타는 능력이 남을 테고, 기타를 치면 어디서든 기타만 있으면 연주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남는다. 그런데 다시 맛집 방문으로 돌아간다면, 맛집 방문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그걸 먹고 싼 똥으로 증빙할 수도 없고 결국 식사 전 찍은 사진으로 증빙해야 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 전 그렇게 사진을 찍어대는 걸까? 차라리 그렇게라도 남겨두길 바란다.
친한 형중에 한 분은 호러/좀비 영화의 마니아이다. DVD를 수집해서 시청하는 게 아니니 아무런 실존을 증빙할 수 없지만 그분은 꾸준히 시청한 영화들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다. 아카이빙은 디지털이든 피지컬이든 상관이 없다. 그분에게는 그 블로그가 자신의 컬렉션일 것이다.
요약하면, 컬렉팅을 통해 나에게 남은 건 사람과 컬렉션이다. 그 과정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지금의 시간들이 내가 죽음을 앞두었을 때 후회라는 것을 줄여주지 않을까 생각한다.